“중단 없는 변화와 개혁…하지만 내실 있게”
“장기판에서 ‘졸(卒)’은 앞으로만 전진한다. 변화나 개혁은 졸처럼 해야 한다.”지난달 9일 취임한 홍찬선 머니투데이 편집국장은 2011년부터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하다 올해 2월 귀국했다. 다섯 달만의 국장 발령에 취임 한 달여를 정신없이 보냈다. 항상 손에서 떼지 않던 책 읽기도 포기했다. 기자들과 면담을 거듭하며 조직의 운영 방향을 잡기 위해 고심했다. 결론은 ‘변화’와 ‘내실’이다.“머니투데이가 그동안 외적 변화를 일구었다면, 이
해직기자, 국회의원 그리고 방통위원장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4선 의원을 지낸 이경재 위원장은 사법부를 제외한 ‘권력의 4부’를 두루 섭렵했다. 가장 애정이 가는 쪽을 물으니 기자 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지금 언론탄압 이야기가 나오지만 예전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압을 받았다”며 “격세지감으로 언론자유가 많이 신장됐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그때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단식 투쟁을 1단으로 ‘모 재야 인사의 식사 문제’라는 식으로 기사를 써야 했다”고 척박
“수신료 인상·재송신 입법 꼭 해결…종편, 옹호도 적대도 안한다”
국정원 보도 논란 있지만 정부 개입 전혀 없어미래부와 충돌 아니라 생산적 토론하자는 것KBS 수신료 올리면 다른 매체 숨통 트일 것기협, 성숙한 민주주의 키우는 언론 파수병되길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말한 그대로만 써 달라”는 요구를 덧붙였다. 가마솥더위로 전국이 들끓던 지난 12일, 작은 선풍기 하나가 힘겹게 돌아가던 위원장 집무실에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더위는 견딜만하다&rdqu
“상명하복의 폐쇄적 구조, 무력감 컸다”
“너무 무료했다.”지난달 31일자로 KBS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김경래 기자의 첫 마디였다. 아마도 수십 번은 들었을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2001년 KBS 공채27기로 입사해 ‘미디어 포커스’팀, 네트워크부, 경제부 등을 거친 김 기자는 이달 중순부터 ‘뉴스타파’로 출근한다. 선배인 김용진, 최경영 기자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언젠가부터 KBS에서 뉴스를 만드는 게 너무 재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정치적 상황 탓도 있지만 천편일률적
“이념과 정파 떠나 공정·공평한 관점 최우선”
“호시우보(虎視牛步). 호랑이처럼 날카롭게 보고 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한다. 당장의 급진적인 실험보다는 경향신문의 본질을 추구하며 점진적으로 나아가겠다.”지난달 21일 취임한 경향신문 조호연 편집국장은 “막중한 자리인 만큼 고독한 결단의 순간이 많다”며 “매순간 긴장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2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만난 조 국장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신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부활, 소통과 신뢰 회복부터 시작하겠다”
조일수 기자가 제36대 KBS 기자협회장에 취임했다. 조 기자는 지난 8~10일 치러진 기자협회장 선거에서 94.5%의 찬성률로 당선돼 1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조 신임 회장은 1995년 KBS 공채 22기로 입사해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보도제작국 등을 두루 거친 중견급 기자다. “KBS가 평온한 시절이었다면 후배들의 몫이었을” 기자협회장직을 선뜻 받아든 것은 그가 기자생활을 하며 가졌던 부채감과 책임의식 때문이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념적으로 휘둘리는 데서 느낀
“18년간 80개국 500개 도시 여행…취재수첩만 100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말처럼 인쇄매체에서 형식은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동아일보 조성하 여행전문기자(부국장급)는 인문, 역사, 지리학이 녹아있는 지금 신문의 여행섹션형태를 도입한 최초의 기자로 불린다.1989년 여행자율화 조치 이후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당시 동아일보는 여행면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여행 그거 뭐 아무나 갔다 와서 쓰면 되지”라는 인식이 팽배할 무렵, 자동차 지붕에 스키를 실을 수 있는 루프박스를 달고 다닌 조 기자를 눈 여겨 본 선배 최명호 기자가
산업부 출입 10년…‘에너지 독립국’ 열정 가득
“이 위에 올라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다.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하지만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교사용 탁자에 올라서며 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다양한 시각을 일깨운 한마디. 산업부만 10년, 내일신문 이재호 기자가 강조하는 ‘에너지’를 보는 시각이다.지난달 ‘에너지 정치경제학’을 출간한 내일신문 이재호 기자는 지난 2003년부터 10년간 산업부를…
“데이터의 힘 믿는다면 전문 취재 인력 투자해야”
2011년 기자들의 웹 정보 활용에 관한 연구로 문헌정보학 박사 학위를 따고 동아일보를 퇴사한 권혜진 기자는 KBS 탐사보도팀을 이끌다 쫓겨나 울산에서 은둔 중이던 김용진 기자와 조우했다. 두 ‘선수’들은 “한국의 ‘프로퍼블리카’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 결실은 ‘뉴스타파’로 맺어졌다. 권 기자는 자문위원으로 시작해 올 초 리서치팀 디렉터 겸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장을 맡으며 ‘뉴스타파 2기’에 본격 승선했다. 뉴스타파가
“미래를 향해 초심으로 복귀…‘자부심 주는 언론’ 되겠다”
‘깊이있는 진보언론’의 등장이었다. 스페셜리스트들의 장문 심층 인터뷰, 현안에 대한 거시적인 분석,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결합한 새로운 시도 등으로 21세기의 들머리에 탄생을 알린 프레시안은 한국 언론계에 신선한 충격을 일으켰다. 황우석 사태를 비롯한 우리 사회 혼돈의 현장에서 이 청년 진보언론은 ‘작지만 멀리 비추는 등대’였다. 그 프레시안이 또다른 실험에 돌입했다.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출범이 그것이다. 창간의 산파 중 한 사람이었던 박인규 프레시안 협동조합 이
‘수험생’처럼 공부하며 쓴 강력 범죄의 산 기록
지난 2011년 서울신문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법과학 리포트 ‘범죄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가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수년간 굵직한 사건 현장을 누빈 13년차 베테랑 기자가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자, 일선 형사들의 자문, 치밀한 수사기록 분석을 바탕으로 쓴 과학수사 이야기다. 연재 당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며 인터넷 상에서 누적 조회 수 4000만 건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책은 마치 추리소설을 보는 것처럼 술술 읽힌다. 택시 바퀴에 튄 흙
“장윤정씨에게 사과…그러나 밋밋한 방송은 싫다”
장씨 ‘힐링캠프’ 발언후 반론 차원 섭외“가족 사이 멀게 한 듯해 반성·사과한다”생방송 어려움 많지만 편집은 왜곡 우려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쾌도난마)는 언론계에서 ‘문제적 프로그램’으로 손꼽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법정 제재 4회, 지난해 선거방송심의위원회 활동기간 동안 6회(법정제재 5회, 행정지도 1회) 등 총 10회의 제재를 받았다. 박종진 앵커는 “내가 쓰는 언어는 터프하고 정제하지 않은 언어”라고…
‘사각의 링’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하다
“복싱의 신비함이란 어떤 고통이 와도 참고 견딘다는 것이다.”권투의 매력에 빠져 사각 링 위에 올라선 기자들이 있다. 지난 5월 현직기자로서 처음 프로복서 라이선스를 획득한 머니투데이 강경래 기자와 두달만에 15kg를 감량하고 복서가 된 매일경제 김대영 기자다. 이들은 권투라는 출발선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당당히 이겨냈다.현직 기자 첫 프로복서인 강경래 기자는 지난달 24일 한국권투위원회(KBC)가 주관하는 프로테스트에서 심판 전원일치로 프로 라이선스를 따냈다. 자신보다 13살이 젊은 선
“미디어산업 혁신 경험 공유하겠다”
“유료화가 신문 산업의 생존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토마스 브루너가드 세계신문협회(WAN-IFRA) 신임 회장은 5일 태국 방콕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다양한 매체·시장·지역 상황에 따라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유료화할지 결정해 여러 가지 수익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부르너가드 회장은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스탐펜 그룹의 최고경영자(CEO)로 현재 25개 신문과 30여
직원 3명으로 시작…100억원 매출 중견 언론사로
헬스조선 임호준 대표는 기자들의 ‘인생 이모작’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직원 3명으로 2006년 창간한 헬스조선은 이제 매출 100억원대 직원 수 70여명에 달하는 기업으로 우뚝 성장하며 신문의 신규 수익구조 창출의 대표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지난 1991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1995년부터 건강-의학전문기자로 일하다 2006년 헬스조선을 창간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만 7년5개월째 대표로 일하고 있다. 헬스조선 창간은 수익다각화와 더불어 임 대표 본인의 도전 차원에서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