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라에서 이룬 꿈…이제 시작입니다"

코리아헤럴드 줄리 킴 잭슨 기자 "19살때 첫 한국 여행 잊지 못해"


   
 
  ▲ 줄리 킴 잭슨 기자  
 
코리아헤럴드의 유일한 외국인 취재기자, 한국계 미국인 줄리 킴 잭슨(Julie Kim Jackson) 기자는 매일이 고군분투의 연속이다. 한국인 어머니 밑에서 3살 때부터 한국어를 배웠고 한국식 교육을 받았지만, 한국 생활 5년째 접어든 지금도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아리랑TV에서 인턴, 조연출PD 생활을 거쳐 지난해 9월 코리아헤럴드에 입사한 잭슨 기자는 현재 문화부에서 음악과 여행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수많은 케이팝 스타들을 만났고 제주도, 백령도, 평창, 순천 등 곳곳에 숨겨진 절경을 찾아다녔다.

“특히 백령도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이잖아요. 주민들은 북한 사투리를 쓰는 것 같더군요. 제가 한국인이었다면 ‘여긴 어릴 때 가봤어, 한국이 다 똑같지 뭐’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저에게는 한국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멋져요. 이것이 외국인 기자의 장점 아닐까요?”

잭슨 기자에게 ‘왜 하필 한국이었느냐’고 묻자 “한국이 정말 좋아서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어보였다. 미군 아버지 덕에 독일에서 6년, 터키에서 4년을 생활하며 글로벌 마인드를 키웠지만 한국은 19살 때 어머니와 처음 여행 온 것이 다였다. 그때 기억을 잊지 못한 잭슨 기자는 알래스카 주립대 재학 당시 해외 특파원의 꿈을 안고 고려대 편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소위 ‘멘붕’에 빠지기를 부지기수. 유학생이나 교환학생이 아닌 탓에 한국 학생과 똑같은 수업을 받는 고충도 컸다. 졸업 후 직업을 구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구직 사이트는 절차가 까다로워 가입하지 못했고, 7년 전 올라온 인터넷 게시글에서 아리랑TV 이메일 주소를 구해 무작정 이력서를 보냈다. 면접 전화를 받고나서도 담당자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이 때문에 한국 생활 초반에는 한국어 울렁증으로 큰 슬럼프를 겪었다.

입사 후에는 문화적 장벽에 부딪혔다. 아리랑TV에서도, 코리아헤럴드에서도 동료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선후배 문화가 없는 미국에서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보낸 잭슨 기자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웠다”고 말한다. 반말 등의 실수를 할까봐 염려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배들이 저를 배려해 영어로 이야기를 하시면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요즘에는 이것저것 물어보는 저 때문에 선배들이 힘드실 거예요.”

취재 과정도 남들과는 다르다. 멤버 수가 많은 아이돌을 취재하게 되면 각 멤버들에게 번호를 매기거나 ‘빨간 옷’, ‘금발 머리’ 등 눈에 띄는 특징으로 구분한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아무리 유명한 가수라도 이들의 경력이나 히트곡을 검색해보는 등 사전취재는 필수다. 또 그를 처음 본 취재원들은 ‘영어로 얘기해야 하나’라며 당황하기도 한다. “편하게 한국어로 말하시면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직은 영어가 더 수월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어머니를 더 이해하게 됐다. 미국에서 30년을 산 어머니가 왜 영어에 적응을 못했는지, 이제는 알 수 있겠다는 말이다.

“왠지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자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한국인들도 못하는 경험을 하고 있잖아요.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지만 언젠가는 제 전공을 살려 정치 기사도 써보고 싶어요. 한번 끝까지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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