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상식에 근거한 무죄 판결, 완성된 결과는 아니죠"

주진우 시사IN 기자 1심 승소 이끈 이재정 변호사


   
 
   
 
지난 24일 새벽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주진우 시사IN 기자와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의 1심 무죄 선고가 나던 순간이었다.

이번 무죄 판결 뒤에는 민변에서 활동하는 8명의 변호인단이 있었다. 그중 수많은 소송에 시달리는 주 기자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이가 이재정 변호사다.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동화 사무실에서 만난 이 변호사는 “국민들의 상식에 부합했고 배심원들이 충분히 숙고한 무게 있는 판결”이라며 “자칫 묻혀질 사건이 국민에 의해 환기됐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2~23일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허위 사실로 특정 후보와 가족을 낙선, 비방하려 했다는 검찰 주장이 아닌 “공직자에 대한 검증 차원”이자 “언론의 사명”이라는 주 기자 측 손을 들어줬다. 박근혜 대통령 5촌 조카 살인사건에 의문을 제기한 시사IN 기사에는 6명이 무죄, 3명이 유죄를, 같은 내용의 나꼼수 방송에는 5명이 무죄, 4명이 유죄를 평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에는 8명이 무죄, 1명이 유죄로 판단했다.

이 변호사는 선고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무죄 판결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를 예측하기는 힘들었다. “주 기자가 취재를 시작했을 때 의문점부터 출발했다”는 이 변호사는 법정에서 박 대통령 5촌 조카 살인사건에 대한 각종 의혹을 상세히 설명했다. 살해 및 자살 동기, 약 복용 등 불분명한 사실은 물론 관련자들의 알리바이, 범행도구 지문 채취, CCTV 확인 등 기초적인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을 꼬집었다. 무죄 의견이 압도적이었던 사자명예훼손 혐의는 “왜곡된 언론 보도를 바로잡는 역사적인 평가”라는 사실로 설득했다.

이번 판결은 국민참여재판의 힘이 컸다는 평이다. 하지만 지난 7월 당시 판결에 유리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에서 신청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주 기자가 알리려 했던 보도가 국민적 공감대에서 논의되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실제 22일 오전 배심원 선정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검찰은 나꼼수 방송을 알거나 막연한 호감이 있는 사람을 모두 제외했다. 이 변호사는 “배심원들 한분 한분이 마냥 호의 또는 적대감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며 “제로부터 시작해 드러나는 증거를 제대로 보겠다고 작정한 배심원들이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선고 후 일부 언론에서 감성 판결이라고 보도한 데 “국민을 우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규제 위주의 현행 선거법이 환기되기를 기대했다. “정치의 계절이 되면 국민들은 입이 주눅들고 자기 검열을 하죠. 법관들은 규제 중심으로 법을 해석하는데 참여재판은 국민들이 원점에서 판단해주지 않을까 싶었죠. 국민들 상식에 근거한 이번 판결을 사법기관이 반추해보길 바래요.”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다”는 이 변호사. 무죄가 승리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미 검찰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 이 변호사는 “저돌적인 주 기자는 물론 누구라도 사법 절차 안에 있으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수사를 받고 재판정까지 오는 긴 시간 동안 할 수 없었던 일을 보상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검열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주 기자 사례 등을 봤을 때 이 같은 번거로운 형사절차를 겪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이 변호사는 “경험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스스로 검열하도록 하는 것이 문제”라며 “지금도 앞으로도 언론 자유에 사정없이 이런 거름망을 들이댈 검찰의 변하지 않는 태도가 염려 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항소심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또 지난 16일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500만원 배상 판결이 나온 민사 재판도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 3월 대법원에서 배심원 평결에 실질적인 구속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죠. 배심원 평결은 1심에만 한정될 것이 아니라 항소심에서 더 무겁고 신중하게 봐야 해요. 배심원들이 고심해 내린 결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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