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성 불면증' 시달리는 민주공화국 시민들을 위하여
워터게이트 사건이란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고용한 이들이 그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D.C에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 민주당 선거본부에 불법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 했던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을 말한다. 그러나 사건 발생 초기만 하더라도 미국 언론은 물론 누구도 이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초기에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고, 당시 국민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분노를 야기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이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통령의 권위
한시적 오보
사무실에 들어서면 부랴부랴 컴퓨터부터 켠다. 출근 체크하고 난 후 그룹웨어에 접속해 오늘자 뉴브(뉴스브리핑을 이렇게 부른다)를 살펴본다. 취합된 기사들은 위원회 관련, 유관기관 동향, 미디어 일반, 언론법제 등으로 잘 분류되어 있다. 위원회 관련 카테고리에서 누가, 어떤 매체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는 기사를 접한다. 사건 접수 담당 부서에 메신저로 뉴브에 뜬 사건에 관해 묻는다. 웬걸, 사건이 아직 접수되지 않았단다. 그렇다면 방금 본 기사는 오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위원회에서 근무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접하는…
계엄의 밤과 언론
기자님 계엄의 밤, 현장에서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목격하며 엄청난 공포와 불안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해요. 그곳에서 현장을 지키며 사실을 지켜낸 기자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 드립니다.아이구, 박사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다가 울컥,,) 정말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정권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미치광이일 줄이야...ㅠ 마음과 의지, 잘 다잡아보겠습니다! 계엄의 밤, 국회의사당에 있었던 젊은 기자 한 분과 주고받은 메시지다. 계엄이 해제되고 열흘 뒤쯤 기자를 만나 그 밤에 너무 무서웠겠다고, 그
집회서 케이팝 부르며 응원봉 흔드는 게 낯선가?
여성들 많으니 집회 나오라. 팟캐스트 매불쇼에 출연한 박구용 전남대 교수가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2030 남성들에게 준다던 정보였다.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의 조속한 퇴진을 촉구하기 위해 집회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한순간 남성들의 눈요깃거리로 전락한 장면이었다. 여성은 한 명의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더라도 이렇게 때때로 누군가의 성적 쾌락을 위한 물건으로 소환된다. 광장은 누구에게나 늘 열려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처럼 그 안에서 누군가는 배제돼 왔다. 이런 사실을 여성들은 너무나도 잘 알지만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
내란 사태 해결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언론 보도의 책임
3일 내란 사태로 인해 발생한 헌정 파괴적 상황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제까지 길러온 힘이 계엄 해제에 성공할 수 있게 했다. 뉴스를 보자마자 국회 앞으로 달려간 시민들의 힘이었고 3일 이후 매일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열망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만든 위헌 세력의 내란죄에 대한 수사는 시작도 못 했고 헌정질서는 아직 정상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 상황에서 다방면으로 취재하고 종합하여 보도하는 언론인들의 노고가 있다는 것, 평소라면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시간 내에 취재와 편집이 이루어지고 있
"문제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독점이야"
올해를 정리하는 글을 쓰다 보니 여전히 알고리즘에 관한 논쟁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년부터 이루어진 포털 뉴스 편향성 논쟁은 올해에도 이어졌다. 포털 뉴스가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실태점검에 이어 사실조사로 전환했다.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은 네이버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다음 뉴스가 콘텐츠 제휴 언론사만 기본 검색에서 노출되도록 기본값을 변경한 논란도 있었다. 올해 5월에는 검색제휴 언론사가 법원에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알고리즘에 관한 논쟁을 보며 드는 생각은 정말 알고리즘이 문제인가?라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가
데자뷔(deja vu)란 프랑스어는 이미 본이란 뜻으로 처음 경험하는 일인데도 과거에 이미 같은 것을 경험한 것 같은 착각을 일컫는 말이다.공영방송 KBS 구성원들이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2일 KBS 양대 노조와 사내 10개 직능단체가 약 500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선 응답자 3292명 중 88%(2896명)가 사장이 퇴진해야 한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4%가 퇴진의 주된 사유로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하락을 꼽았다.얼핏 보면 2024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보이
언론의 신뢰와 커뮤니케이션 비용
명예훼손 판결을 보면 사회적 승인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그에 대한 사회적 승인을 훼손하기 때문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맥락에서다.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승인해 준다는 건 어떤 말이나 행동, 일을 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기본적으로 사회적 승인이 없으면 신뢰를 전제로 하는 일들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워낙 엉터리 전화 사기가 횡행하다 보니 모르는 번호가 찍히면 전화를
트럼프에게 무엇을 내줄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
언론의 중요한 기능은 이미 벌어진 잘못의 진상을 밝혀, 다시금 비슷한 잘못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다. 특정한 문제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막는 것이다.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을 어떻게 취재하느냐고, 도대체 어떤 팩트를 건져내야 그런 예방적 저널리즘을 실천할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현장에서 터져 나올 듯하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사건사고는 표면적이지만, 그 이면에 계속 비슷한 문제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있고, 그것을 저널리즘 문법에 맞게 표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할 뿐이다. 대개는…
방통위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법원이 지난 10월부터 2인으로 구성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결이 위법하다는 판단을 계속 내놓고 있다. 특히 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도 매우 유용하다.법원의 판단을 이해하기 위해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방통위는 대통령이 추천한 2인에다 국회가 추천한 3명(여당 1명, 야당 2명)을 더해 총 5명의 상임위원으로 이루어진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5명의 상임위원에게 분산해 놓은 구조다.행정과 관련해 이런 결정구조를 가진 조직을 합의제 행정기관이라고 부른다.…
풍자, 스스로 성역이 되어선 곤란하다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다는 말이 이번에도 등장했다. SNL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와 국정감사장을 찾은 뉴진스 멤버 팜하니를 패러디했다가 논란이 일자 나온 말이다. 또다시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19일,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시즌6 김의성 편에서 논란은 시작됐다. 이날 방송에서 김의성씨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정인섭 사장으로 분했다. 정인섭 사장이 국회 환노위에 출석한 이유는 뭔가. 올해만 노동자 5명이 사망한 중대재해 사업장의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정인섭 사장이 본인의 뒷좌
딥페이크 성범죄 보도와 장기적 책무
8월부터 딥페이크 성범죄, 즉 성폭력특별법 제14조의 2항 허위영상물등의 반포죄가 온라인 공간에서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여성 청소년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집중 보도되기 시작했다. 현행법이 딥페이크 성범죄의 경우 유포되었을 때에만 처벌하고 있어,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 범죄 예방도 어려워진다는 여론에 따라 법 개정 역시 이루어졌다. 그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제기된 것이 처벌 조항의 개정이었기에,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정부에서도 관련 법안에 대한 의결이 이루어지면서 딥페이크
"그래서 기자를 하고 싶은 학생 없나요?"
전공생 진로 탐색 특강을 위해 기자 출신의 강사분을 초청한 적이 있다. 다양한 직종을 경험하셔서 그런지 전공 분야 전반의 직무와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짧은 특강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수줍어하는 학생들을 대신해 내가 던진 질문이 있었다. 만약 자제분이 미디어 관련 전공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잠시 당황하던 그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미 아이들한테 아빠는 공대 가는 거 아니면 등록금 대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이번 학기에 담당하는 수업 중 하나는 저학년을 위한 개론 수업이
'먹을 수 있는 여자'
먹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의 주인공 메리언 매켈핀은 먹는 것을 거부한다. 거의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정상인 메리언은 갓 대학을 졸업하고 설문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 전 전도유망한 변호사이자 괜찮은 외모의 남성 피터로부터 당신만큼 현명한 여자는 없다며 청혼을 받았다. 그러나 피터의 청혼 이후,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메리언이 노력하면 할수록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였다. 하지만 달
'익명 사회' 길목서 벌어지는 신상공개 논란
살인 사건 피의자 신상 공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아파트 흡연장에서 만난 주민을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의 신상은 공개됐지만 일본도로 주민을 살해한 30대 남성은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도 살해 피의자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서울경찰청은 피의자가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이 있고, 피해자의 유족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봤다.피의자 신상공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일본도 살해 사건 기사에는 범행 동기가 공익이라며 범죄를 옹호하는 댓글이 달려 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