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MMS 시험방송, 파장과 해법
2006 독일 월드컵 개막과 함께 전격적으로 허용된 지상파 TV 4사의 멀티모드서비스(MMS)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MMS란 영상압축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 HD 방송을 위해 각 방송사에게 할당된 주파수대역을 HD급과 SD급 채널, 오디오 채널과 데이터 방송 등으로 분할 서비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상파 MMS 시험방송은 논의 과정과 정책 일관성 그리고 시청자 복지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먼저 지상파 MMS는 충분한 여론수렴 없이 졸속으로 처리됐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방송위원회는 지난 5월…
자율규제 논의 어떻게 볼 것인가?
수 만원의 휴대폰 이용료로 인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한 중학생의 죽음으로 다시 불거지는 청소년 유해 콘텐츠 논란이 본격화되면서 근본적인 해법 마련을 위한 움직임들이 거세게 일고 있다. 관련 학회 차원의 연구 모임이 구체화되고 전문가 토론회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공통적인 목소리는 교과서적이기는 하나 자율규제의 틀 마련과 이의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실천으로 모아지고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의 사법적 규제는 최후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반면 청소년에 대한 음란물 규제는 광범위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많은…
균형 잡힌 국제보도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게임문화를 가진 나라로 전문가들이 묘사하는 한국에서는 당국이 전자게임 중독이라는 전염병에 놀라고 있다.” 5월27일자 워싱턴포스트는 1면에 3단 크기로 ‘한국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인터넷 게임 몰입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한국은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발달한 나라라면서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 더 많은 게임중독 사례를 보지만 사회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은 한국을 문제의 진원지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이보다 앞서 5월 25일자 뉴욕타임스는 대전에서 탈북 여성들을…
공영방송 비판, 이대로 좋은가?
공영방송인 KBS와 MBC 비판에 늘 따라붙는 말 중의 하나가 ‘상업주의’다. 타당한 비판이다. KBS와 MBC가 그런 비판에 수긍해 상업주의를 포기할 리는 없겠지만, 만의 하나 그런 시도를 하려 한다면, 나는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왜 그런가?상업주의를 포기하면 시청률이 떨어지고 수입이 줄 게 틀림없다. 그러면 일부 언론은 KBS와 MBC의 ‘위기’를 선언할 게다.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말도 나올 게다.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아 시청률이 바닥을 기고 있다는 말도 들어야 하고, ‘방만한 경영’으로 ‘흥청망청’ 했다는 비난도 감수
KBS 때리기의 진실
조선, 중앙, 동아 등 이른바 보수언론들의 공영방송 KBS 때리기가 도를 넘어설 정도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이 신문들은 평소 애용하고 있는 언론 관련 필진들을 총동원할 뿐만 아니라, KBS에 유감을 지닌 채 퇴사한 전직임원들을 용케도 찾아내어 아낌없이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 정당과의 커넥션 속에서 KBS에 대한 공격 자료를 요긴하게 제공했고, 이도 모자라 공공연하게 자사 비판을 부르짖고 있는 현직 간부의 눈부신 활약(?)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필진이 화려하고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뉴욕타임즈, 골프 등 접대규정서 배우자
6년 전 워싱턴특파원으로 처음 부임했을 당시 서울과 워싱턴의 취재환경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취재를 위해 공직자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취재원을 만나 식사나 차를 같이 할 경우 거의 예외없이 기자가 비용을 내는 점이었다.정치부에 오래 근무하면서 정치인들과의 잦은 식사와 술 자리, 골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대접받는 데 익숙했던 내게 취재원의 식사 비용을 내는 것은 부담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다. 서울에서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
정치적 독립성? 정치적 책임성!
바야흐로 인사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의 울음소리에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듯이, 연일 자신이 속한 조직을 공격하는 KBS 감사의 속 보이는 고군분투 속에서 그리고 그의 언행을 연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보수신문들의 행태 속에서 인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상투적이면서도 당위적인 인사기준을 제시하는 각종 칼럼들 속에서 방송계 인사를 바라보는 이상론과 현실론의 괴리를 거듭 감지할 수 있다.주지하다시피, 다가오는 5월에는 우리 방송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책을 담당하게 될 방송위
골프 마피아
이른바 ‘3·1절 골프 파동’이 벌어졌을 때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띄었다. 언론은 이 전 총리의 골프 시점과 상대의 부적절성만을 물고 늘어졌을 뿐 골프 자체는 문제삼지 않았다. 이 전 총리가 누군가? 그는 92년부터 환경운동에 몰두해 환경사회정책연구소와 라는 책자를 만들었고, 민주당 환경특위 위원장도 맡았다. 그는 그런 맹렬한 활동 덕분에 93년 한국환경기자클럽에서 주는 ‘올해의 환경인상’, 94년엔 환경운동연합이 주는 ‘녹색정치인상’을 받지 않았던가. 왜 언론은 이 전 총리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캐고 들면서 그 사실은 전혀…
WBC의 교훈
10년여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방송계에 계시는 많은 분들로부터 방송산업의 미래가 어떨 것인가에 대한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돌하게도 그분들이 들었던 답은 방송산업의 몰락이 임박했다는 다소 듣기 거북한 말이었었다. 2000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제는 ‘변하지 않으면’ 몰락할 수밖에 없으며, 다매체 다채널 환경에 맞게 미디어 자산관리의 개념을 도입하고 양방향적이고 개인화된 미디어 소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이 급변하고 이론적인 얘기려니 하고 애써 위안했던 예견들이 하
총리 골프 파문과 언론의 역할
이른바 삼일절 골프 파문으로 시작된 이해찬 총리의 부적절한 처신이 1주일 이상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실세 총리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일국의 국무총리를 낙마시킬 만큼, 이번 사건의 파장은 매우 컸고 국민들의 실망감 역시 깊었다. 부산일보의 특종에서 비롯된 이번 사건은 동아일보를 필두로 중앙일간지와 방송이 집중적으로 취재 보도하는 과정을 통해 권력 감시자로서 언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사실 지금까지 이해찬 총리가 보여준 국정수행능력은 대통령도 감탄할 만큼 탁월
스크린쿼터와 언론인 습속
“대중은 ‘영화 대박’을 축하했지만, 대박의 주인공들이 제작자건 감독이건 스타건 국내적 다양성과 상생을 위해 무슨 기여를 했다는 말을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최근 스크린쿼터제 논란과 관련, ‘씨네 21’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한 말이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씨는 ‘한겨레’에 쓴 글에서 위와 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다”며 톱스타들이 매우 낮은 보수를 받고 비상업적인 영화에 출연한 사례를 몇가지 열거했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오해다. 내 주장은 대중이 영화인들의 투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대중의 인식과
언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미국의 2면에는 거의 매일 10건 안팎의 정정 기사가 통상 4단 크기로 실린다. 정정 보도의 대부분은 기사 작성이나 편집상의 착오로 잘못 표기된 사람 이름이나 단위, 수치 등을 바로 잡는 것이니 고급정론지로서 당연한 일이다. 주목할 것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상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정정 보도를 내는 점이다.이 신문은 자신들이 바로 잡는 표현상의 문제를 뉘앙스(nuance)란 단어로 표기하면서, 인식의 혼란을 줄 수 있어 분명히 한다며 특정 문장의 의미를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기사의 정확성
방송통신 구조개편위원회에 바란다
방송통신 구조개편을 위해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논의가 재가동된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다. 지난해 봄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전력이 있어서인지 반응들이 제각각이다. 늦었지만 잘되어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이번에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그간에 방송통신 융합의 핵심적인 두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여러 사안들을 놓고 심각한 갈등과 대립적 관계를 심화시킴으로써 학계와 산업계, 국회 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른바 윔블던 시즌이라고 불리는 2004년 6월 말에 런던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영국의 방송정책과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 주요 기관을 방문하던 중, DTI(한국의 정보통신부)에서 미팅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DCMS(한국의 문화관광부) 관계자도 참석하여 주요 사안에 대해 함께 설명해주었다. 두 부처의 공무원이 자리를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화기애애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회의 분의기 속에서 필자는 큰 감동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방송통신 분야를 관장하고 있는 정부부처 또는 위원회에서 이러한 상생의 모습, 배려의 문화를 발견하기란
독설의 정치학
독설은 제도적 권력이 없는 아웃사이더의 무기다. 모든 경우에 차분한 대화를 요구하는 건 기존 언로(言路)에서 제도적 권력에 따른 주목의 위계질서를 외면하는 순진한 발상이거나 보수적 음모다. 이게 독설의 가치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아닐까? 그런데 노무현 정권에선 대통령·장차관·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들이 앞 다투어 ‘독설의 향연’에 참여해 왔으니,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우선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간 지배 엘리트 계급은 한통속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국민이 보는 앞에선 여야(與野)간 정언(政言)간 제법 싸우는 척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