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의 교훈
현대원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입력
2006.03.29 12: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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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원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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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여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방송계에 계시는 많은 분들로부터 방송산업의 미래가 어떨 것인가에 대한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돌하게도 그분들이 들었던 답은 방송산업의 몰락이 임박했다는 다소 듣기 거북한 말이었었다. 2000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제는 ‘변하지 않으면’ 몰락할 수밖에 없으며, 다매체 다채널 환경에 맞게 미디어 자산관리의 개념을 도입하고 양방향적이고 개인화된 미디어 소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이 급변하고 이론적인 얘기려니 하고 애써 위안했던 예견들이 하나 둘씩 현실로 다가오면서 이제는 “몰락”에 대해 상당히 진지해 하는 분들을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 물론 그러한 예견들 중에는 DMB의 출현을 통해서 퍼스널 미디어로 진화하는 방송의 미래를 직접 체험하게 되는 일도 포함된다.
더욱 피부에 와 닿는 사건은 역시 최근에 전 국민을 뜨겁게 달구었던 세계야구올림픽이라 불리우는 WBC가 아닌가 한다. 처음으로 많은 국민들은 역사적 사건을 TV가 아닌 대안적 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경험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손안의 DMB 폰을 통해서, 그리고 어떤 이들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말이다. 인터넷으로 WBC를 중계한 한 인터넷 포털은 수백만명의 이용자들에게 TV에 뒤지지 않는 생동감과 현실적 기대효용을 충족시켰으며, 이를 계기고 포털의 트랙픽 증가와 가입자 증가를 포함한 상당한 간접 효과를 얻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제 방송산업 종사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이번 WBC 중계를 계기로 동일한 콘텐츠에 대한 다플랫폼 이용 환경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체득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됐으며, 이러한 학습효과는 앞으로도 더욱 확장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즉 실시간 편성에 TV 앞 동시 시청이라는 매스미디어의 신화가 깨져나가고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와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다플랫폼화 전략이 이제는 필수적이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이제 시작의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올해 DMB에 이어 와이브로 서비스와 IP-TV 등의 신규 서비스가 연이어 상용화되는 환경에서 결국은 소비자 즉 이용자들이 스스로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매체 선택권과 프로그램 편성권을 능동적으로 행사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승자는 평범하게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이용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생존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