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좋아하는 '전문가'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 | 입력
2006.07.19 13: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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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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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에게 있어서 취재원은 소중한 존재다. 취재원들 목록이 곧 기자의 경력과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누가 정보를 많이, 빠르게 얻느냐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혈연과 지연, 학연을 통해 인맥을 많이 쌓은 기자가 능력 있는 언론인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된다.
기자들은 인맥을 쌓으며 취재원을 ‘관리’하는데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접대를 하고, 접대를 받으며 명함첩을 두둑하게 만들어간다. 명함첩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높은 직위나 명예, 학벌이나 훈장, 또는 부를 가지고 있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기자들이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기자들은 명함이 없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언론에는 명함이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이도, 문제를 지적하는 이도,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이도 이들이다. 해석도, 대안도 이들의 입을 통해 나온다. 나머지 사람들은 통계자료로서만, 뉴스 도입부의 배경으로만, ‘익명’의 개인으로서만 존재한다. 언론이 왜 쉽게 사회 권력층의 대변인이 되는지, 왜 주변부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떤 보도든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을 ‘전문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다름 아닌 언론이다. 문제는 소위 그 ‘전문가’들이 실제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이 자신의 제한된 삶의 경험이나 현재의 지위,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지식을 전달하는 무결한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일례로 언론이 ‘전문가’에게만 의지하며 인간의 본능이자 기본 윤리로서 모성과 가화만사성을 칭송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제도로서 보장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더 이상 어머니라는 위치 속에 자신을 가두어두지 않으려 하고 있다. 가족관계에 대해, 출산에 대해, 사람들의 가치관이 달라졌음을 뒤늦게 파악한 것은 언론이다. 물론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언론이 더 많다.
이주노동자들은 언론이 자신들의 사안을 다룰 때조차도 오로지 한국인들만 상대하자 별도로 이주노동자방송국을 만들었다. 동성애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언론에 ‘전문가’로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바로 그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동성애 바로알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금도 언론은 사학법과 학교폭력의 문제를 다루면서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는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할 때도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놓여있는 정치인들의 견해부터 찾아 듣는다.
‘전문가’를 좋아하는 언론일수록 무식하다. ‘전문가’ 타이틀을 직위나 명예, 학벌이나 훈장, 또는 부를 소유한 이들에게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언론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제한된 삶의 경험이나 현재의 지위,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정보,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할 것이라고 간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저널리즘의 원칙인 ‘공정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