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체제'라는 올가미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  
 
  ▲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  
 
1953년 7월 27일, 3년간 수백만의 인명을 앗아가고 온 국토를 잿더미로 만든 6.25전쟁이 휴전되었다.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첫 절차이었다. 그런데 한반도의 휴전은 평화로 연결되지 못한 채 5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반세기를 넘긴 지금 언론은 체니 미부통령이 이례적으로 휴전 기념행사에 나와 북한을 호되게 비난했다는 소식은 전했지만, 휴전이 이제는 “휴전체제”, 즉 일시적 절차가 아닌 정착된 질서로 자리 잡아버린 모순과 낭패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총성은 멎었으되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 휴전선 양쪽에서는 그 긴 세월을 하루같이 피아간에 중무장하고 총은 쏘지 않되 방아쇠에 손을 댄 채 총부리는 여전히 상대방에게 견주고 있는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로 대치하고 있었다. 실로 기약 없는 군사정체상태였다.



군사정체상태에서는 군사가 정치에 우월하게 마련이었다. 남한의 경우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장기간 혹독한 독재를 자행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배경으로 휴전체제란 군사정체상태가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군은 아직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잠재적 정치세력으로 남아있다. 미국의 부단한 군사위협 속에 날이 지새는 북한의 경우는 정부조직, 지휘체계, 선군정치, 그리고 인권실태 등에 군사우월현상이 더욱 뚜렷하다.



보다 한심한 것은 휴전체제하에서 한국은 군사는 물론 외교와 정치도 미국의 군사정책에 따른 기속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최근에도 미 국방장관이 한미군사동맹 격하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에 한국의 조야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정치발전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 실시된 한국의 대북햇볕정책도 부시행정부가 돌연한 대북강경정책선회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면서 큰 애로에 봉착하고 있다. 남한이 아무리 북을 향한 바람을 멈춰도 미국의 대북강풍이 몰아치면 북한은 외투를 벗을 수 없는 것이 한반도정세의 생리이다. 그런 점에서 휴전 체제는 우리에게 씌어 진 올가미라 해서 마땅하다.



그런데 왜 휴전체제를 여태 떨쳐버리지 못했는가? 한때는 한국인들 자신이 휴전체제유지가 안보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미국의 반대 때문이었다. 6.25전쟁은 남북의 내전으로 시작됐지만 그 휴전은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협정으로 성립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주한미군의 계속유지를 위해 휴전상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를 거부해왔다. 미국은 클린턴행정부 말기에 일시 한반도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할 결심을 한 적이 있었지만 부시행정부는 곧 이를 뒤집어 버렸다.



한국은 휴전체제의 희생자이지만 그 당사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을 제치고 북한과 교섭하여 휴전체제를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북한이 남한을 군사적 대화상대로 인정하기를 꺼리는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 9월 19일의 제4차 6자회담 공동선언 제 4항은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과 아울러 6자가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 방안을 모색할 것을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은 물론 이 경우의 “직접관련 당사국”이다. 마침내 한국이 휴전체제의 종식을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씌어 진 휴전체제의 올가미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이제는 온 국민과 더불어 언론이 이 문제를 파고 들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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