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규제 논의 어떻게 볼 것인가?




  현대원 교수  
 
  ▲ 현대원 교수  
 
수 만원의 휴대폰 이용료로 인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한 중학생의 죽음으로 다시 불거지는 청소년 유해 콘텐츠 논란이 본격화되면서 근본적인 해법 마련을 위한 움직임들이 거세게 일고 있다. 관련 학회 차원의 연구 모임이 구체화되고 전문가 토론회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공통적인 목소리는 교과서적이기는 하나 자율규제의 틀 마련과 이의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실천으로 모아지고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의 사법적 규제는 최후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반면 청소년에 대한 음란물 규제는 광범위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현실적 상황은 모든 이들이 가야한다고 믿고 있는 길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최근에 성인콘텐츠의 유해성 논란에 휩싸인 이동통신 3사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콘텐츠 사전 심의를 요청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현재까지 양립해 온 민간 주도의 자율규제와 정부 주도의 타율규제 시스템이 새로운 대결 구도로 치닫게 된 것이다. 정부기관에 의한 사전심의의 위헌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가 문제의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선 급변하는 방송·통신 융합 환경과 테크놀로지 발달에 힘입은 신규 미디어들의 등장은 물리적으로 정부 차원의 사전 규제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인콘텐츠에 대한 심의 그 자체만으로 면죄부를 얻으려는 문제 해결 방법과 문제 인식 태도가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업계의 진정한 책임 의식과 이용자 보호를 통한 건강한 성장을 추구하려는 윤리 의식을 회복하고, 이를 자율적으로 행하려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또 다른 사회적 희생들을 무책임하게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



다양한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무수히 많은 콘텐츠들은 그 성격 면에서 이미 과거의 콘텐츠와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 즉, 이러한 콘텐츠들은 개방성, 국제성, 문화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급격히 발전하는 관련 기술들과 함께 콘텐츠의 불법 유통과 유해 콘텐츠에 대한 무분별한 확산을 가중시켰다. 이는 기존의 법적 규제 시스템의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일 뿐 아니라, 유무선 인터넷상의 불법 콘텐츠의 대부분이 기존의 법적 규제의 바깥에 놓여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입법 조치를 강행하는 것은 인터넷상의 표현물에 대한 과도한 규제절차를 제시하게 됨으로써, 관련 산업 발전의 저해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가 수반될 수도 있다. 동시에 규제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입법이 추진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자율규제는 기존의 법적 규제 시스템 안에서 효과적으로 다룰 수 없는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자율규제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인터넷감시재단인 IWF(Internet Watch Foundation)나 업계의 자율적인 행동강령을 중시하는 독일의 FSM의 성공 사례를 보면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자율규제 장치들이 기존의 법적 규제 시스템과 긴밀하게 상호협력하고, 사업자들의 합의에 기반한 행동강령이 준수되면서 콘텐츠 제공자와 이용자들 간의 사적 계약이 성실하게 이행된다면, 또 다른 입법 조치 없이도 인터넷 공간 안에서의 자율규제 장치가 작동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업자와 정부, 그리고 이용자들이 함께 하는 주체들의 합의와 실천 의지 그리고 적극적 참여를 통해 자율규제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가야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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