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강력하고 의미 있는 여론면을 위해
윤국한 재미언론인 | 입력
2006.06.28 12: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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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국한 재미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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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설 와중에 나온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애쉬턴 카터 전 국방 차관보의 북한 미사일 기지 선제폭격론은 미국 내 열띤 찬반론을 촉발했다. 두 전직 고위 관리가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칼럼에서 편 주장에 대해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와 의회는 곧바로 의미 있는 의견들을 제시했다. 칼럼이 나온 바로 다음 날에는 잭 프리처드 전 국무부 대북 협상 전담대사의 반론이 같은 신문에 실렸다.
오랫동안 미국의 신문과 방송을 접하면서 부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이들의 여론 형성 기능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신문들은 여론면을 통해 늘 주요 정치, 경제 및 사회 현안에 대한 건강하고 활발한 토론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과는 대비된다.
미국 언론의 여론면에는 무엇보다 사실에 근거한 논리와 분석, 그리고 강력한 주장이 있다. 행정부와 의회 등에서 주요 현안을 직접 다뤘거나 다루고 있는 당사자들이 심심찮게 기고하는 주요 신문들의 여론면에는 특히 분석과 주장 외에 뉴스가 있다. 우리 언론이 미국 신문의 칼럼도 종종 번역해 소개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들 칼럼은 행정부와 의회의 정책입안 및 입법 과정, 그리고 여론의 동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페리 전 장관은 지난 1998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위기상황 당시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돼 대북 협상을 전담했던 인물이다. 그런 만큼 8년이 지난 시점에 재연된 유사 상황에 대한 그의 견해는 주목 받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신문의 여론면을 통해 주요 이슈가 형성되고 논의가 전개되는 사례는 잦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해 중앙정보국 요원의 신분을 발설한 것이 문제가 된 이른바 `리크 게이트’가 그랬고, 또 `리크 게이트’를 촉발한 계기가 된 것도 이 요원의 남편인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주재 대사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이었다.
미국 신문들에는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과 전현직 고위 행정부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고문을 자주 싣는다. 클린턴 대통령이나 부시 대통령도 현직에 있으면서 기고를 할 정도로 신문의 여론면이 갖는 영향력은 크다. 이들에게 특정 정치적 성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에 앞서 사실관계를 중시하고 논리적 분석에 따른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에 기고문은 종종 미국사회 주요 정치경제 및 사회적 담론의 출발점이 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의 `언론과의 만남’이나 의 `이번 주’ 등에는 매주 현안에 가장 정통한 행정부 관리나 국회의원, 전문가가 출연해 상황을 정리하면서 건강한 토론의 기반을 제시한다.
미국 언론의 여론면을 보면서 우리 언론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가령 한-미 동맹관계가 위기라는 지적을 놓고 논란이 오래지만 현직 뿐 아니라 그 많은 전직 외무장관, 주미대사들은 다 어디 갔는지 우리 언론에서는 제대로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주요 현안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우리 언론의 여론면을 통해 제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안에 정통한 적임자가 사실을 근거로 건강한 토론의 기초를 제시하기 보다는 현장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각자의 정치성향대로 주장만 늘어놓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여론면이 좀처럼 힘있는 여론형성의 시발점이 되지 못한다.
마침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주 한 강연에서 참여정부가 인기 없는 이유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밝혔다. 우리 언론이 논란이 무성한 이 주제에 대해 이 실장의 기고를 받는 형식으로 화두를 던졌다면 좋았겠다 싶지만 그런 기획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라도 이 실장의 발언에 대해 차분하게 사실관계를 적시하면서 반박 또는 공감하는 글들을 실어 논의를 이끌면 어떨까. 파당적 이해관계에 따른 하나마나 한 정치적 주장은 배제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