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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끊어진 국도’로 세상과 첫 소통
누적방문자 1천여만명…하루 40만 찾을 때도
2006년 여름, 수마가 할퀴고 간 한계령 1박2일간의 산행은 그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그해 7월30일, 여름휴가차 찾은 강원도 인제와 양양을 잇는 44번 국도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도로 곳곳이 찢기고 집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길이 끊어진 곳, 인적은 찾기 힘들었다. 걸으면서 고개를 뒤로 돌린 적이 몇 번이었던지,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실감했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전에 만들어놓았던 블로그가 떠올랐다. ‘끊어진 국도 44호, 걸어서 한계령까지’라는 글 세 편을 수십 장의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렸다. 중앙일보 노태운 기자의 블로그 ‘발가는대로’ (http://blog.joins.com/n127)가 세상과 처음으로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필명 ‘발가는대로’처럼 디카를 친구삼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을 블로그에 썼다.
일주일에 3~4건씩 꾸준하게 올리면서 조인스닷컴이 그를 주목했고, 노출 빈도를 늘려줬다. 2007년 말까지 45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그의 블로그를 찾았다. 그런 블로그가 질적 전환을 한 것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2008년 1월 개인적인 일로 부산에 갔다가 해운대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찍은 사진이 대박을 터뜨린 것.
그 사진은 부산 해운대에 짓고 있던 57억원짜리 아파트 조감도를 찍은 것이었다. 국내 아파트 분양 사상 최고가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그 아파트였다. ‘해운대 ‘57억 아파트’ 누가 샀나’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포털사이트 ‘다음’이 그 게시물을 메인화면 사진 박스에 노출하면서 그날 하루에만 40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찾았다.
그 조회 기록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20년 가까이 글로 먹고 사는 기자로 살았지만 편집만 했던 까닭에 글을 써본 경험이 없던 그였다. 제목 뽑는 일을 본업으로 하던 그가 글을 썼고, 그 글에 누리꾼들이 열광했다는 사실에 고무됐다. “난다는 기분이 이럴까 싶었어요. 보통 하루 2백~3백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하루에 40만명이라니….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그 사건은 그에게 큰 자극이 됐다. 이후 부동산과 관련한 글들을 계속 올렸다. 부동산은 그가 신입기자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였다. 전 직장인 매일경제에서 부동산 편집을 하면서 짬짬이 공부했던 까닭에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식견은 전문기자 못지않았다. 편집기자라 기사는 쓸 수 없었지만 부동산 관련 내용을 취재부서에 여러 차례 제보했다. 기사를 쓴 기자와 공동으로 사내 1급 특종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올린 글들은 빅히트를 쳤다. ‘해운대 ‘57억 아파트’ 30대가 잡았다’(방문자 50만명), ‘유인촌 끝내 숨기고 싶었던 것’(62만명), ‘처참하게 잘려나간 백두대간 모습’(1백14만명), ‘경유차 산 게 정말 후회된다’(68만명) ‘김은혜 부대변인 남편 빌딩이 말썽’(56만명) ‘4500㏄ 타는 총리부터 기름 아껴쓰라’(57만명) 등 대박 행진이 이어졌다. 1월19일 현재 그의 블로그 방문자 수는 1천1백20만여명에 달한다.
기자들은 블로그를 하면서 크게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고 그는 말했다. 악플과 아이템 부족인데, 이겨내느냐 여부가 블로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한다. 그는 아이템 문제의 경우 글쓰기 영역을 부동산, 교육, 기름값 등으로 확장하면서 해결했다. 하지만 악플은 견디기 힘들었다. 지난해 6월 초, 김해 봉화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땅값이 1년 새 49배 올랐다는 게시물을 올린 후 한동안 악플에 시달렸다.
하루 1천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99%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방명록과 쪽지, 개인 이메일에까지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욕 먹어가면서까지 쓸 필요가 있나’하는 자괴감과 함께 마음의 상처를 적잖이 받았다.
며칠 후 연합뉴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땅값 1년 새 49배’라는 기사를 띄웠다. 그가 썼던 내용을 그대로 요약한 것이었다. 머니투데이, 조선닷컴, 세계일보 등도 똑같은 내용의 기사를 잇달아 올렸다.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 기사화된 경우는 그 외에도 여러 번 있었다. 국회 국정감사장이나 상임위 질의 과정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특히 기름값 문제에 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많은 글을 올렸고 인정도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휘발유 가격이 ℓ당 1천9백원대에 육박한 이후 1년이 되도록 기름값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휘발유에서 시작한 기름값에 대한 천착은 경유, LPG 영역으로 진화했다. 그는 철저한 현장주의자다. 직접 차를 몰고 주유소를 돌아다니며 가격을 확인하고 종사자들을 만난다. 또 한국석유공사 홈페이지, 관세청 홈페이지 등을 뒤져가면서 자료를 분석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주는 ‘2008 블로거기자상’ 우수상을 받았다. 기름값 문제에 대한 기성언론과 일반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블로그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20년 동안 앉아만 있었어요. 그런데 움직이니까 보이더라고요. 블로그를 하면서 더 보게 되고,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산을 가더라도 풀 한포기, 돌 하나 무심히 지나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는 블로그를 한 뒤부터 술 먹는 양이 줄어 집사람이 좋아한다고 꼭 써주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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