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 다 쏟아내야죠"
[기자 파워 블로거]조선일보 최보윤 기자의 'L.O.V.E actually'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2009.02.11 15:19:57
2005년 영국 특파원 시절 프리미어리그 취재로 인기 폭발
새 부서 적응 등 공백 아닌 공백기…영화 등 대중문화 재충전조선일보 최보윤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 ‘L.O.V.E actually’(blog.chosun.com/bbo13130) 머리말에 “요즘 뜸했는데, 이젠 좀더 자주, 많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썼다. 페이지뷰 3백만 돌파를 축하하는 인사말치고는 겸손해 보인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그는 올 들어 4개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지난해 게시물수는 14개. ‘뭐 이 정도면 블로그 한 것도 아니네’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웬만한 블로거에 명함도 못 내미는 게시물 수라서 그렇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최 기자의 블로그는 지난해 조선닷컴 기자블로그 톱 10에 올랐다. 게시물 당 페이지뷰는 1만1백26개로 사내에서 가장 높았다. 게시물 수는 적었지만 읽히는 기사를 제일 많이 쓴 셈이다. 특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열성팬에게 그의 블로그는 사랑방으로 통한다.
최 기자가 블로그를 개설한 것은 지난 2004년. 그해 8월 조선닷컴을 통해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했던 조선일보는 기자들에게 블로그 활동을 장려했고, 그의 블로그도 그런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 기자들이 그렇듯 처음 블로그에 데면데면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예쁜 것들이 있으면 퍼다 올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랬던 블로거가 조금씩 채워진 것은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시작됐던 2005년 초. 당시 그는 축구담당 기자로 우즈베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원정경기를 취재하면서 지면에 다 싣지 못했던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 낙후된 경기장 시설, 선수 뒷이야기 등에 대해 이것저것 썼는데 누리꾼들은 신기해했다.
그렇게 누리꾼들과 소통한 그의 블로그는 그해 7월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면서 본격화됐다. 박지성이 영국에서 기지개를 켜던 무렵 회사는 영국에 단기 특파원을 보내기로 했고, 그는 운 좋게도 뽑혔다. 2006 독일 월드컵을 고려해 회사는 축구담당을 보내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고, 두 사람 중 그가 낙점을 받았다. 선배 기자가 연수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까닭이었다. 입사 3년차의 신참이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현장에서 취재하게 된 것이다.
낯선 타국, 영국에서 블로그는 그의 친구이자 애인이었다. 영국에 머문 1년 동안 매주 2~3번씩 글을 올렸다. 회사 동기가 ‘벽 보고 이야기할 것을 블로그에 글 쓰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핀잔을 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죄다 이야기하듯 그는 영국에서 보고 느낀 것을 신나게 썼다. 관중이 내지르는 거대한 함성, 알렉스 퍼거슨 등 세계적 명장의 모습,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선수의 활약상은 단골 소재였다. 박지성이 동료들과 라면을 끓여먹었다거나 이영표가 다니는 교회 등 한국인 3인방의 사생활도 다뤘다.
“혼자만 알고 있으니 너무 답답한 거 있죠.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느낀 것들은 생생한데 들어줄 사람은 없고 답답했어요.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랄까, 그랬지요.” 때마침 한국에 프리미어리그 열풍이 불면서 그의 블로그는 누리꾼들의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당시 영국 현지를 취재하는 한국 기자가 없었던 터라 그는 프리미어리그 소식을 사실상 독점했다. 경기 이외에 다양한 소식에 목말라하던 누리꾼들은 그가 전하는 생생한 현지 소식에 사로잡혔다.
특히 현장사진이 풍부했던 그의 글들은 포털사이트 ‘다음’ 유럽축구 토론방 등으로 퍼 날라졌다. 댓글도 수백개씩 달리고 메일도 폭주했다. 하루 1백통을 넘게 받을 때도 있었다. ‘잘 읽고 있다’, ‘추운데 고생한다’, ‘조선일보 재밌구나’ 등 격려성 글이 많았다. 하지만 악플도 적지 않았다. ‘여자 주제에 무슨 얼어죽을 축구야’, ‘언제 내가 알려달랬어?’, ‘그냥 입 다물고 있어라’ 등 인신공격성 악담에 욕지거리도 했다. 수준 낮은 얘기는 안 쓰는 편이 낫다고 훈계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뭐하는 짓인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는 사실 축구에 문외한이었다. 2003년 6월 수습을 끝내고 체육부로 발령 받아 축구를 담당하면서 하나둘씩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영국에 있을 때 독하게 공부했다. 축구서적, 전문잡지 등을 틈나는 대로 보고 현장을 지켰다. 아는 것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것이 이 분야였다. 조금만 어설퍼도 단박에 알아차린다. 초등학생 마니아들도 상당한 현실에서 실력만이 말해주는 구조였다. 그때의 남다른 공부 때문일까. 2006년 9월 귀국 후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등 책 3권을 펴냈다.
스포츠부를 떠나면서 그의 블로그는 한동안 공백기였다. 새로운 부서에 적응해야 했고, 축구를 맡지 않게 된 까닭에 축구 얘기를 쓰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가끔 프리미어리그 소식 등을 올리면서 건재를 과시했지만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는 3백만 돌파를 기점으로 재충전에 나섰다. 영화를 2년 넘게 담당하면서 이력이 붙었다. 영화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쓰겠다는 말도 이런 자신감에서다.
“기사는 짜인 틀에 갇혀 있죠. 또 분량이 넘어가면 잘라내야 하고…. 하지만 블로그는 달라요. 편하게 쓸 수 있어요. 중구난방 떠들어대며 즐거워할 수도 있고요. 잠시 숨을 골랐지만 앞으로 주저리주저리 얘기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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