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의 교훈
10년여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방송계에 계시는 많은 분들로부터 방송산업의 미래가 어떨 것인가에 대한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돌하게도 그분들이 들었던 답은 방송산업의 몰락이 임박했다는 다소 듣기 거북한 말이었었다. 2000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제는 ‘변하지 않으면’ 몰락할 수밖에 없으며, 다매체 다채널 환경에 맞게 미디어 자산관리의 개념을 도입하고 양방향적이고 개인화된 미디어 소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이 급변하고 이론적인 얘기려니 하고 애써 위안했던 예견들이 하
총리 골프 파문과 언론의 역할
이른바 삼일절 골프 파문으로 시작된 이해찬 총리의 부적절한 처신이 1주일 이상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실세 총리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일국의 국무총리를 낙마시킬 만큼, 이번 사건의 파장은 매우 컸고 국민들의 실망감 역시 깊었다. 부산일보의 특종에서 비롯된 이번 사건은 동아일보를 필두로 중앙일간지와 방송이 집중적으로 취재 보도하는 과정을 통해 권력 감시자로서 언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사실 지금까지 이해찬 총리가 보여준 국정수행능력은 대통령도 감탄할 만큼 탁월
스크린쿼터와 언론인 습속
“대중은 ‘영화 대박’을 축하했지만, 대박의 주인공들이 제작자건 감독이건 스타건 국내적 다양성과 상생을 위해 무슨 기여를 했다는 말을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최근 스크린쿼터제 논란과 관련, ‘씨네 21’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한 말이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씨는 ‘한겨레’에 쓴 글에서 위와 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다”며 톱스타들이 매우 낮은 보수를 받고 비상업적인 영화에 출연한 사례를 몇가지 열거했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오해다. 내 주장은 대중이 영화인들의 투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대중의 인식과
언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미국의 2면에는 거의 매일 10건 안팎의 정정 기사가 통상 4단 크기로 실린다. 정정 보도의 대부분은 기사 작성이나 편집상의 착오로 잘못 표기된 사람 이름이나 단위, 수치 등을 바로 잡는 것이니 고급정론지로서 당연한 일이다. 주목할 것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상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정정 보도를 내는 점이다.이 신문은 자신들이 바로 잡는 표현상의 문제를 뉘앙스(nuance)란 단어로 표기하면서, 인식의 혼란을 줄 수 있어 분명히 한다며 특정 문장의 의미를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기사의 정확성
방송통신 구조개편위원회에 바란다
방송통신 구조개편을 위해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논의가 재가동된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다. 지난해 봄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전력이 있어서인지 반응들이 제각각이다. 늦었지만 잘되어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이번에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그간에 방송통신 융합의 핵심적인 두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여러 사안들을 놓고 심각한 갈등과 대립적 관계를 심화시킴으로써 학계와 산업계, 국회 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른바 윔블던 시즌이라고 불리는 2004년 6월 말에 런던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영국의 방송정책과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 주요 기관을 방문하던 중, DTI(한국의 정보통신부)에서 미팅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DCMS(한국의 문화관광부) 관계자도 참석하여 주요 사안에 대해 함께 설명해주었다. 두 부처의 공무원이 자리를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화기애애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회의 분의기 속에서 필자는 큰 감동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방송통신 분야를 관장하고 있는 정부부처 또는 위원회에서 이러한 상생의 모습, 배려의 문화를 발견하기란
독설의 정치학
독설은 제도적 권력이 없는 아웃사이더의 무기다. 모든 경우에 차분한 대화를 요구하는 건 기존 언로(言路)에서 제도적 권력에 따른 주목의 위계질서를 외면하는 순진한 발상이거나 보수적 음모다. 이게 독설의 가치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아닐까? 그런데 노무현 정권에선 대통령·장차관·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들이 앞 다투어 ‘독설의 향연’에 참여해 왔으니,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우선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간 지배 엘리트 계급은 한통속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국민이 보는 앞에선 여야(與野)간 정언(政言)간 제법 싸우는 척 하
말보다는 실천이다
황우석 파동 이후 일부 신문과 방송이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그동안의 관련 보도에 대해 자성했다.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의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서둘러 반성문을 쓴 언론도 있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특별히 여론 오도에 큰 몫을 한 주류 언론가운데는 원론적인 수준의 비판론을 제기하거나 아예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각 사의 자성 내용이 어떤 것이든 간에 대부분 언론은 이번 파동을 계기로 또 한 차례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황우석 사태에 책임 큰 언론이란 제목의 한국일보 사설은 이번 파동에서 드러난 우리…
융합미디어 시대와 더블 컨버전스
미디어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21세기의 미디어 산업을 논함에 있어 항상 화두로 등장하는 컨버전스(Convergence)는 놀랍게도 그렇게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에서 시작된 문자 혁명은 알파벳과 파피루스의 컨버전스를 통해 지식 저장을 가능하게 했고, 뒤이은 인쇄혁명은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와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의 컨버전스를 통해 15세기 중반부터 정보의 대중적 확산의 기초를 마련한다.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19세기 중반, 보다 발달된 종이와 증기기관을 이용한 대량 인쇄기술, 그리고 최초의 유선통신 수단인…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자기 연출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캐나다 출신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에 따르면,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연극배우일 따름이다. 무대 앞에서 난치병 환자들의 구세주로 명성을 떨치고 수백 억 원의 국고를 아낌없이 지원받았던 황우석 박사는 커튼 뒤에서 초조감을 떨쳐내지 못한 채 줄기세포 조작에 여념에 없던, 표리부동한 생명공학 전공 배우에 불과했다.마침내 화려했던 연극이 끝났다. ‘상식의 저항’을 무릅쓰고 힘들게 취재했지만, 매국노라는 비난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MBC 제작팀의 명예는 2005년을 빛
일사불란(一絲不亂)을 증오하자
이번 ‘황우석 파동’ 또는 ‘PD수첩 파동’의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 애국심에 투철한 우리 언론은 국제관계에서의 국익 관점에서 접근했다. 일리 있는 답이지만, 그걸 가장 큰 교훈으로 삼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이와 유사한 사태의 재발시 우리는 또다시 내부적인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황우석 파동’은 한국사회에 신뢰의 씨가 말랐음을 웅변해 주었다. 그 웅변은 언론매체들 사이의 대리전쟁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직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 상황에서도 각 신문은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여론 오도하는 주류 언론
지난달 12일 제럴드 섀튼 교수가 황우석 교수와의 결별을 선언한 이후 한 달 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은 과학적 논란에 대한 접근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여기에는 이른바 `주류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류 언론은 네티즌에 영합하는데 급급했을 뿐더러 근거 없는 기사와 자의적 해석을 보태는 등으로 건강한 여론 형성에 오히려 부정적 역할을 했다. 과학연구에 대한 논란은 검증을 통해 밝혀야 하는 것이고, 또 과학은 늘 이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단련되고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대부분 언론은 아예 무시하는 듯했다.특히 에 대해 광고
지상파DMB의 조속한 전국망 확대를 바라며
지난 수주일 동안 진행된 방송통신 융합과 디지털 콘텐츠 산업, 그리고 이동 멀티미디어 방송을 주제로 한 몇 차례의 국제 컨퍼런스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 표준이 단연 화두로 떠올랐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선도하고자 하는”이 맞는 표현이다. 부산 APEC에서 성공적으로 선을 보인 이동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인 와이브로(WiBro)와 함께 지난 12월 1일 본 방송에 돌입한 지상파DMB가 바로 대표적인 한국의 기술표준들이다. 그런데 그런 기술들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여유도 없이 컨퍼런스에 참여한 여러 해외 전문가들의…
경인민방 선정, 현상과 본질
경기, 인천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지상파 방송사를 선정하기 위한 허가 추천 작업이 마무리됐다. 신청 마감일인 11월 24일, 방송위원회는 모두 5곳의 컨소시엄, 즉 Good TV, KIBS, 나라방송(NBC), 경인열린방송(KTB), TVK의 신청서류를 차례로 접수했다. 지난 해 12월 21일, 투자의향서 미비와 재정건전성 확보방안 미흡 등의 이유로 경인방송(iTV)이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을 거부당한 지 1년 여 만에 경인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방송사 탄생이 마침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사실 경인방송 재허가 추천 거부는 우리나
당파성과 개입성
그간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언론의 과도한 당파성을 지적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당파성이 곧잘 개입성과 혼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과도한 당파성을 자제해야 한다는 선의의 거리두기 원칙이 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회피하게 함으로써 신문의 사회적 영향력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문제마저 낳고 있다. 한국언론의 주요 특성으로 거론되는 ‘발표 저널리즘’은 한국언론이 사회적 개입에 소극적이며 주로 유력 취재원의 발표에 의존하는 취재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는 주로 취재비용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가장 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