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논란, 언론은 자유로운가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논문 표절시비에 이어 고려대 이필상 총장의 제자 지도논문 표절의혹이 불거지면서 학자들의 연구윤리 문제가 다시금 대두됐다. 학계에선 이들을 감싸거나 동정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유는 표절이 ‘관행’이라는 것이다. 도마 위에 오른 당사자들도 ‘당시엔 문제되지 않을 행위’였다고 변명했다.

연구자는 자신이 연구한 것에 대해 기록하여 세상에 내놓는 것이 본업이며, 이렇게 해서 생산된 논문들이 연구자의 기본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저작권은 학계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권리이며, 표절은 연구자들이 절대 해서는 안될 행위다. 학자들 사이에 표절이 ‘관행’처럼 자리잡아 용인되는 사회에선, 학자들의 존재 이유부터 물을 일이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표절행위는 타인의 시간과 노력과 창조, 그리고 지위와 생계까지 앗아갈 수 있기에 ‘저작인권’ 침해로 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특히 제자의 연구성과가 곧 교수의 실적이 되어버리는 관계 속에서, 표절 문제가 계급과 권력의 문제와 서로 긴밀한 연관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절이 ‘관행’처럼 자리잡아 사회악이 되고 있는 분야가 또 있으니, 다름 아닌 언론이다. 몇 해 전 한 주간신문에서 일할 때, 제주도 잠수(해녀)들의 사회를 집중 취재하여 해상여성문화로서의 해녀의 위치를 조명하는 보도를 했다가, 얼마 후 모 일간지에 내 기사가 요약짜깁기 되어 실린 것을 발견했다. 항의하자, 해당 매체에선 ‘받아쓰기가 신문의 관행’이라는 변명을 했다.

당시 저작권 관련 전문변호사를 만나 이 문제를 상의했더니, 그는 일간지들 사이에 표절이 관행처럼 번져있다며 심지어 취재하는 동안에도 서로의 모니터를 보고 베끼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만약 원작자가 표절을 문제 삼으면, 언론사 측에서 달려와 말로 사과하고 술 한 잔 사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얘기도 들려줬다.

언론의 표절은 다른 매체의 기사를 베끼면서도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경우부터, 발굴기사의 주제와 내용, 취재한 대상까지 베끼는 경우, 기사와 인터뷰 등의 문장을 거의 똑같이 따오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스꽝스럽게도 이전에 자기 매체가 보도한 기사를 베끼는 ‘자기표절’도 있다.

언론의 표절도 권력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주류매체가 비주류매체를 표절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비주류매체가 발굴한 기획기사를 표절해도 이를 파악하는 사람이 적고, 자신의 매체가 먼저 발굴한 기사인양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보력이 많은 주류매체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발굴한 비주류매체의 기사를 표절하는 행위는 ‘날강도’라는 표현밖에 달리 쓸 말이 없다.

저작활동을 하는 이들이 표절에 관한 개념도, 규정도 없이 ‘관행’이란 방패를 업은 채 연구자로서, 기자로서 행세하며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은, 학계와 언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끼치는 해악이 크다. 고려대에선 부랴부랴 표절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표절에 관한 한, 별로 나을 바 없는 언론계도 자체 점검을 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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