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의 대안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아미티지 보고서와 한·미 FTA

한·미 FTA 협상이 오는 24일 이전에 타결될 것 같다. 19일부터 워싱턴에서 수석대표-통상장관으로 이어지는 최종 고위급 회담을 갖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무역구제와 자동차, 의약품 분야를 맞바꾸는 빅딜, 농산물과 섬유분야의 ‘이익 균형’을 이루겠다는 스몰 딜의 결과는 모두 앞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 불평등성으로 말하자면 병자수호조약이나 소파(외국군지위에 관한 행정협정) 정도가 비견될 수 있을까?

한·미 FTA의 외교안보적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 2월에 발표된 아미티지 보고서가 밝히고 있듯이 미국에 “아시아는 미국의 이익을 가장 잘 반영하는 안정과 번영의 세계질서로 가는 관건(key)”이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 “미 일 동맹”인데 부제가 “2020년까지 아시아 올바로 가게 하기”(getting asia right)이다. 다소 과도한 주장이라고 생각했는지 보고서는 “‘아시아 올바로 가게 하기’는 미국의 가치를 이 지역에 강요하는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 이 지역의 지도자들이 자국의 성공을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의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여기서 환경 조성 사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미국과의 FTA이다. 하여 이 보고서에서는 일본이 미국과 FTA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가히 아시아에 제2의 ‘자본의 문명화’(맑스)가 밀어 닥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제국주의가 대포와 총으로 ‘자본의 문명화’를 이뤘다면 이제 미국은 군사동맹과 FTA를 앞세워 미래의 보물단지, 아시아에 진군하고 있다.

한·미 FTA가 이 전략 속에 끼어 들었다. 미국으로서는 뜻 밖에 아시아의 교두보를 얻는 셈이다. 이제 새천년에 미국이 새로 채택한 통상전략, ‘경쟁적 자유주의’(competitive liberalism)가 한·미 FTA를 지렛대로 해서 작동하게 된다. 다른 나라가 뒤이어 미국과 FTA를 맺는다면 미국은 아시아에서도 허브와 스포크(hub and spokes) 전략을 관철시키게 된다. 자본의 문명화는 달성된다.

이제 동아시아에 공동체를 형성하는 꿈은 사라진다. 적어도 아시아가 독자의 사회경제체제를 형성하여 미국 및 EU와 3자 정립함으로써 최대의 이익과 동시에 세계의 안정을 도모할 길은 사라지고 만다.


한·미 FTA의 대안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 대안을 생각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는 방법에 FTA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아시아는 특히 역내 국가간 경제력 격차, 사회문화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두 나라 간의 경쟁 조건에 초점을 맞추는 미국식 FTA 방식은 약한 나라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기 마련이다.

대안은 동아시아 전체의 공공재인 네트워크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여 물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신뢰 등)을 동시에 쌓아나가는 것이다. 대륙 철도, 석유 및 가스 파이프라인, 아시아 고속도로의 건설, 정보 인프라망, IT 표준 제정 등이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각 나라간의 각종 격차를 줄일 수 있다면 그 때부터 아시아형 FTA(언어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를 개발해야 한다) 논의가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이 새로운 FTA 유형은 철저히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며 동시에 역내 민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내용이 확보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미국이나 중국, 어느 쪽이 아시아의 패권을 잡는 것도 원하지 않는 나라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러시아, 아세안, 인도가 바로 그들이고 상대적으로 자본과 기술에서 우위를 보이는 한국이 이들과 할 수 있는 협력사업은 대단히 많다. 즉 아시아의 종축을 먼저 형성하면서 강대국들과는 아시아의 인프라망을 건설하는 작업을 함께 하는 한편, 아시아의 민중들이 고루 이익을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FTA를 설계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 물론 한·미 FTA부터 중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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