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논쟁과 공론의 상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7.01.17 16:03:45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발의 계획을 발표하면서 정치권과 언론계에 한차례 풍랑이 일고 있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발표를 연상케 할 정도의 기밀 속에서 깜짝 발표가 있었지만,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언론보도를 통해 조사된 국민여론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노대통령 정책을 지지해온 일부 진보적 신문들조차 이 사안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노대통령의 ‘개헌의제구축’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파급력이 큰 ‘개헌’이라는 의제가 불과 이삼일 만에 주요 신문의 1면 기사에서 조차 밀려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대통령 의제의 심각한 신뢰 손상’과 ‘청와대의 여론고립’을 느낀다. 이는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개헌 제의에 대해 대다수 언론보도들은 제안 시기의 부적절성과 정략적 의도라는데 초점을 맞추어 비판했다. 그리고 야당이 명시적으로 반대한다는 이유에서 대다수 언론들이 제안의 실현가능성을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다수 언론의 개헌보도는 ‘부적절한 시기의 무모한 정략적 시도’라는 3가지 차원으로 틀 지웠다.
사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의 정책제안은 모두 ‘정략적 목표’를 근저에 깔고 있다. 과거의 대통령도 그러했고 현재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도 그러하긴 마찬가지이다. 개헌의제를 다루는 언론 역시 정략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이야기한, “노무현이라서 안 된다는 것”이라는 불만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여론의 조건을 무시하거나 여론을 잘못 정의내림으로써 우리가 ‘공론이 상실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스스로 정치과정에서 숙의와 공론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해 왔지만, 자신이 공론의 리더쉽을 발휘할 수 없는 시점에 와서야 개헌의제를 던졌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반전이나 면피의 카드로 개헌의제를 해석한다.
여론과정은 정치지도자 한 사람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정치지도자는 여론과정의 한 부품이다. 정치인에 의해 의제가 제기되고 이것이 미디어의제로 발전되어, 사회의제로 파급되기 위해서는 보다 복잡한 함수가 존재한다. 의제수용의 조건 값이 있는 것이다. ‘정치인 또는 정당’, ‘미디어’, 그리고 ‘국민 또는 수용자’라는 세 주체들은 상호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상호 의존적이고 한편으로는 경쟁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의제 공표자가 미디어나 국민을 대상으로 의제 미확산의 책임을 묻는 것은 정치과정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여론과정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으로 의제구축을 시도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언론이 의제를 다루는 방식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제안된 개헌논쟁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진화된 측면이 있다. 그 불을 끄는 데 동원된 소화기는 ‘여론조사’이다. 발표된 언론사 여론조사결과는 야당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조사문항이나 발표방식을 보면, 언론사들의 특정 의도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헌 내용의 찬반 여부를 묻지 않거나 찬성하는 의견을 애써 무시하는 보도가 다수였다.
더 나아가 여론조사에서 말하는 여론은 단순한 개인의견을 경험적 수치로 합산한 것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개인의 의견은 항상 불확실하다. 정보가 없고 타자와의 대화를 거치지 않은 여론은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다수 여론이 반드시 좋은 여론은 아니다. 특히 정치사안이 발전하는 초기단계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는 대다수 응답자들이 부정확한 정보와 관련된 담론에 참여할 기회가 적은 조건에서 답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여론조사결과는 ‘예단의 도구’가 아니라 초기 참조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벌써부터 정치가와 언론간의 정략적 담론 속에 ‘공론 또는 숙의가 없는 왜곡된 여론과정’이 선거과정을 훼손시킬까 우려스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