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언론의 싸움


   
 
  ▲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  
 
노무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부터 대통령 후보를 거쳐 대통령이 되어 4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 줄곧 언론과의 싸움을 벌여왔다. 지난 23일에는 신년연설에서 군사독재가 무너진 이후 언론이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해 시민과 정부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지적한 후 특권과 반칙의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이 시대의 역사적 과제라면서 언론이 사주의 언론이 아니라 시민의 언론이 될 때까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언론은 대통령이 실정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군주적 언론관과 무절제한 언사로 위헌적인 신종 언론탄압을 시도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그런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의 언론은 원래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하고 이승만 독재에 맞서 4·19 민주혁명을 이끌어낸 자랑스런 전통을 지닌 언론이었다. 그런데 1961년 박정희의 반란으로 불법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이 지조 높은 언론인들을 추방하는 한편 사주들과 간부들을 공갈, 매수 또는 이권 등으로 굴복, 변절 또는 회유시키면서, 독재의 시중을 들고 돈 재미를 알고 정치와 외세의 풍향에 영합하는 언론으로 변모되어 갔던 것이다.

이들은 1997년 대선에서 그간 군사독재에 맞서 싸워온 민주화세력이 정권교체를 시도할 때 위기를 느끼고 군사독재후계세력을 적극 지원했지만 결국 고배를 들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야당이 된 유신잔재세력과 연계되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변신하여 대통령과 여당을 헐뜯는 역할을 전담함으로써 그들을 살찌워준 군사독재의 은혜에 보답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2002년 대선에서는 초장부터 유신잔재 측 후보의 대세론이 지배적이었다. 아마도 그해에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학생 참살사건이 일어나 반미바람이 불지 않았더라면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예상대로 취임 초부터 언론과 각을 세웠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은 노무현 흠집내기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임기의 5분의 1밖에 안 남은 지금 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땅에 떨어지고 여당 대선주자들의 인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 미국의 언론도 벌써부터 한국의 다음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지는 아직 몰라도 개혁세력의 집권이 10년으로 끝날 것만은 확실하다고 관측하고 있다. 언론과의 싸움에서 노 대통령은 여지없이 밀리고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노 대통령의 언론관에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공격목표는 자신들의 기득권만 주장하고 비판만 일삼는 특정 보수언론으로 한정돼야 했는데, 그는 막연하게 언론전체를 공격대상으로 삼으면서 상대를 불필요하게 키우고 또 결속시켜 버렸다. 그것이 첫째 과오였다.

둘째 노 대통령은 언론의 잘못을 지적함에 있어서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용어를 마구 사용함으로써 일반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내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언론으로부터 말꼬리를 잡혀 역공을 당하는 실수를 번번이 범하였다.

셋째로 가장 큰 과오는 언론공격에 대통령이 직접 나선 일이었다. 언론자유의 핵심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인데 아무리 타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정치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대통령이 직접 언론공격에 나선 것은 세련된 방식이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정치권력의 직접작용이 아니라 언론자체의 자성이나 시민사회의 자발적 운동으로 언론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고차원의 방식을 고안하고 실시했더라면 매우 좋았을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바람처럼 한국의 언론이 보수적 정치권력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시민의 권력으로 발전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싸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싸움은 결국 양쪽을 모두 추하게 만들 뿐이다.

노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1년밖에 안 남았다. 그는 자신의 언론개혁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만약 1년 후 일부 보수언론이 뒷받침해서 당선된 후임자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물러가게 된다면 그것이 그 보수언론에게 굴복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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