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나체위 알몸 초밥 (naked susi)
여성의 나체 위에 회를 얹어 먹는 알몸 초밥(naked susi) 시식 장면이 지난달 한 케이블TV를 통해 방송된 뒤 부정적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성의 상품화를 부추겨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갓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비난도 거셌다. 방송프로그램을 심의할 방송심의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제작진은 재방송 영상은 모자이크 처리하고 인터넷 다시보기는 아예 등록하지 않기로 하는 등 신속한 사과조치를 취하며 사태진화에 나섰다.그런데 이 같은 선정성 논란은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케이블 TV만의 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언론
환율 덕을 보았다지만 어쨌든 국민소득 2만 달러가 열렸다. 소득이 올라가면 당연히 삶의 수준과 질도 높아져야 한다. 과연 그럴까?우리나라 사람들의 외모는 한참 세련되어졌다. 이제 매무새만으로는 그 사람의 직업과 소득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좋게 말해 개성의 표현이지,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돈벌이를 위해 ‘외모가 권력이다’를 외치는 언론과 기업의 작당은 우리 사회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먼저 겉모습을 가꾸는 데에 신경을 쓰도록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람
동아일보의 이상한 변신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고, 인수인계를 거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요즘, 동아일보에 관한 말들이 많다. 새 정부와 코드 맞추기 보도가 너무 노골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새 정부 들어 사뭇 달라진 보도태도와 논조를 보이고 있는 이웃의 조선일보와 비교하여 “역시 동아스럽다”라고 사람들이 수군대고 있다. 자사의 정치부장 출신인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최시중 방통위원장 후보와 같은 새 정부와의 투터운 인맥, 그리고 고려대를 끈으로 하는 동아일보와 이명박 후보와의 인연 등을 고려하면 인지상정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선
융합시대의 균형있는 보도를 기대한다
디지털 융합시대는 소위 다채널과 다플랫폼, 수많은 사업자의 존재가능성으로 인해 미디어의 보도, 정보전달의 행태가 각 공급 주체만의 몫으로 남겨지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도상의 불균형을 다양한 사상 시장의 자유로 주장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시장논리로 보면 외적인 다양성이 확보되기 때문에 내적인 다양성이나 균형은 필요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융합의 결과, 오히려 집중이 더욱 심화될 것을 우려하고, 어떻게 하면 융합상황에서도 내용의 다양성, 보이스의 다양성을 확보할 것인가에 정책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
언론, 왜 과거사위 폐지 관심없나
집권당이 된 한나라당은 지난 1월 21일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심사위원회,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지원위원회, 삼청교육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노근리사건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 등 9개 과거사 위원회의 폐지를 담은 법률 재, 개정안을 제출했다.이에 따라 해당 위원회는 임기가 끝나면 자동 폐지된다. 하지만 활동시한이 끝나기 전에도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은 제약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앞으로 관련 부처가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다. 또 확보된 예산이 있는 올
‘정통’언론, 표피적이고 경박한 보도 벗어나야
‘경·박·단·소’ 전자제품의 경향을 나타내던 이 용어가 이 시대 우리 사회 언론이 추구하는 뉴스가치의 특징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가볍고 표피적이고 순간적이며 사소한 것들이 뉴스라는 이름으로 미디어에 오르내린다. 아니,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 두텁고 복잡하며 깊이있는 것들을 밀쳐내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적 흥미 혹은 신기함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뉴스의 하위 범주를 구성했던 것들이 이제는 버젓이 중심 자리를 꿰차고 있는 형편이다.‘인포테인먼트’라는 낯
숭례문 화재와 희생양 찾기 보도
국가적 재난은 당장은 위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한 사회가 단결하고 화합을 이루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을 잘못 다루면 더 큰 재앙을 불러 일으켜 사회를 파멸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졸지에 당한 숭례문 화재는 일종의 국가적 재난이다. 우리는 이 재난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차라리 전기누전이나 번개와 같은 천재에 의해 숭례문이 소실됐다면 지금쯤 우리 사회는 단합의 계기를 모색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불행하게도 숭례문은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의 못된 심사에 의해 황당하게 타버렸다. 방화범을 중죄로…
‘언론보도’ 속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지난달 30일 시속 3㎞의 저속 이동시에는 1백Mbps 이상, 시속 1백20㎞의 고속 이동 중에도 30Mbps의 속도로 다양한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시스템인 ‘3GPP LTE’를 개발, 세계 최초로 시연에 성공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는 3.5세대 이동통신방식으로 불리는 HSDPA에 비해 데이터 전송률이 7배 이상 빠른 것이다. 유선에서 1백Mbps이상의 서비스가 가능한 환경이 무선에서도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1백Mbps라면 A4 용지 약 9천장의 정보를 1초에 보내는 꼴이다. 이른바 속도
나훈아씨가 언론에 던진 훈계
잘못된 언론보도의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가수 나훈아 씨를 두고 일부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기백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반면 언론의 관점에서는 가수 나씨가 허리끈을 풀고 바지춤을 내리기까지 한 기자회견장의 행동은 도전이자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나씨 보도를 연일 전개한 해당 언론사와 기자는 얼굴을 들기 힘들 정도로 ‘훈계’를 들어서이다. 물론 아직 나씨를 둘러싼 소문이 완전히 해명됐다고 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언론이 진실보도의 사명을 다했다면 사회적 파장이 이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 개월 전부터 나씨
권력 교체기의 우리 언론
요즘 우리 언론은 매우 바쁘다. 부처 통폐합을 코앞에 둔 공무원 속내에야 비할까마는, 언론 환경을 둘러싼 각종 법안의 변경, 폐기 혹은 신설을 둘러싸고 저마다 눈치와 계산이 한창이다. 상이한 세계관을 표방하는 권력 교체를 앞두고 언론사마다 걱정 또는 기대의 폭과 깊이가 다를 테지만, 방송사는 방송사대로, 신문사는 신문사대로 분주한 모습이다. 바쁘기는 학계도 마찬가지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나름의 특수를 누린다. 지난 연말부터 각종 언론 정책 세미나가 계속되고, 한가하던 세미나장에는 기자와 카메라들이 북적대고 있다. 누가 어떤 얘기를…
새 정부 언론정책과 민주주의
학계에는 신참 박사(fresh doctor) 신드롬이란 것이 있다. 박사 학위를 따는 때에서는 풀이 죽어 선배 박사들에게 고개를 숙이다가 막상 학위를 받은 다음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한 학자인양 행세를 한다. 나이든 학자들은 구악이고 그들의 논문들은 낡아빠져서 못쓴다. 신참박사들은 전통과 과거와 단절을 한다. 그리고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숙제를 내주며 괴롭힌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진보 정부 10년 이후 보수 정부로 인수인계되는 과정은 당연히 변화와 혁신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언론, 신문 분야도…
미디어 행태, 새로워져야 한다
지난 2001년 대선이 끝나고 인터넷의 승리라는 표현이 있었다. 어떻게 조직 선거, 정당 정치가 있는 국가에서 인터넷에 의한 온라인상의 선거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외국의 전문가들은 의아해 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매스미디어인 신문, 방송과의 대결에서 인터넷이 이겼다고 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 12월의 대선은 신문의 승리라고 한다. 어떻게 세계적인 인터넷 보급국가에서, 취약한 정당 정치의 국가에서 온라인상의 선거운동이 주도했다는 이야기는 없을까에 대해 외국인들은 궁금해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신문은 취약한…
萬人의 언론을 기대한다
대통령 선거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은 여전히 남아 있다. BBK 특검과 삼성 특검 같은 대형 시한폭탄이 꺼지지 않은 채 째깍거리면서 대회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데다가 총선을 앞두고 기싸움이 한창인 정치권의 후폭풍도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여기에 이번 선거에 개입한 지식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언론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 여론은 높은 편이다. 사실 제17대 대선은 시작도 전에 여론조사에 의해 미리 승부가 끝나버렸지만 결정적 고비 때마다 언론의 특정 후보 감싸기가
사교육 권장하는 언론
하기 어려운 얘기를 꺼내야겠다. 자식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예외 없이 시달리고 있을 사교육 문제다. 사교육. 굳이 말하자면 학원과 과외의 동의어 정도 되겠다. 내가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사교육 자체가 아니다. 사교육을 담아내는 언론의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게는 고 1 딸과 중 1 아들이 있다. 교육에 대한 전문지식은 부족하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인생을 준비하는 교육을 어떤 식으로 받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은 가지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정신 나간’ 학부모들 사이에서 함께
“한국기자들이여, 검사와 판사를 구별하자”
한국언론의 사회 감시기능은 종종 찬탄할만하나, 어떤 때는 꽤 착잡한 기분이 든다. 번거로운 말을 접어두고 한번 짚어보자.과연 우리 기자들은 한국 검사와 한국 판사의 직분을 제대로 구별하는 것일까? 양쪽 모두 ‘사법시험, 사법연수원’을 거치니 ‘다 같은 사법기관’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아닐까? 얼마전 수습기자 강의에서 ‘검사가 사법부에 속한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언론보도에서는 ‘검사 권한’으로 ‘구속’하여 ‘사법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