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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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방송인)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8.12.02 10:35:16
#1. 벌써 올해의 끝 자락인 12월이다. 엊그제 첫눈이 오던 날 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도 첫눈이 주는 설렘이 좋았던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한참을 눈을 바라보다가 눈발 사이로 전봇대 꼭대기에 앉아 눈을 맞으며 전깃줄을 묵묵히 손보는 어떤 중년의 남성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며칠 전 영하의 추위에 입김이 씩씩 나는데, 하수관을 묻는 아저씨들이 밤이 늦었는데도 일을 끝내지 못해 살얼음이 언 땅을 파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코끝이 찡해졌다.
두 모습을 잇달아 보고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이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지….” 서른 막 넘겨 요절하신 아버지. 폐병에 걸려 각혈을 하며, 아무 일도 못하고, 반지하 방에 누워계시거나 볕이 좋은 날 집 앞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 있던 무기력한 모습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시골서 서울로 올라와서 마땅한 기술이 없어 공사판 막노동으로 전전하셨던 아버지. 혼자서 울면서 까칠한 수염을 내 얼굴에 부비면서 “아버지 죽으면 어떻게 살래.” 못난 모습을 보이신 꼴찌! 우리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2. 11월엔 매년 수능시험이 있다. 그래서 수능이 끝나는 날엔 걱정된다.
혹시라도 수능시험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을까봐.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매년 있다. 그래서 좋지 않은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듣게 된다. 방송을 통해서라도 매년 그날엔 대학 가는 것이 인생 전부가 아니라는 걸 얘기해 주고 싶어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진다.
“여기 우리 PD도 4수 끝에 MBC 들어와서 PD 됐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성적,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인데 지금 시사프로 진행하잖아요. 학교 1등이 사회 1등이 아니라니까요. 오늘 시험 보신 분들은 그래도 행운인 겁니다. 그마저도 보고 싶어도 못 보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게 남들에게는 부러운 거라는 거! 인생 사는데 아무 문제 아니니 힘내세요!”
#3. 나는 매주 금요일 저녁 OBS에 가서 주철환 사장과 ‘문화전쟁’이란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이제 1년 된 OBS가 잘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초창기 OBS 구성원들은 몇 년 동안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방송한 번 제대로 만들어 보자고 다부진 마음하나 가지고 여기까지 걸어온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가슴에 피눈물이 맺혔으리라 생각하지만, 겉으론 표를 내지 않는다. 아직은 시청률도 낮고, 소문도 잘 안 났다. 꼴찌로 시작한 방송이라 시청률이 낮으면 분위기도 침체하고 의기소침할 만도 한데, 늘 방송국 분위기가 밝다.
생방송을 준비하는 그날 초저녁부터 열두 시까지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하나같이 밝은 얼굴로 온 힘을 다해 녹화 한다.
스튜디오 안은 얼마나 일에 열중을 하는지 때론 경건하기까지 하다. 자정 넘어 생방송이 모두 끝나고, 조명도 꺼지고, 세트도 철수하는 그 시간, 화장을 지우고 스튜디오 밖을 나설 때 희미한 새벽녘 빛을 등 뒤로 받으며, 담배를 피우는 한 남자! 그 PD의 모습을 보면서 아! 저 남자가 잘 됐으면 좋겠다 싶었다.
사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과 안 먹어본 사람의 인생의 맛은 그 차이가 크다. 시련을 견디고, 이겨나가고, 성취할 때, 그때가 맛있고 재미있는 것이다. 내년엔 꼴찌가 더 많아질 테니, 꼴찌에게 힘을 실어줬음 좋겠다. 꼴찌가 소외감 안 들게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꼴찌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안아 줄 수 있게 꼴찌들 기사 좀 많이 써줬음 좋겠다.
가수 한돌씨의 ‘꼴찌가 더 힘들다’라는 노랫말이 마음에 많이 남는 날이다.
“ 지금도 달리고 있지, 하지만 꼴찌인 것을~ 그래도 내가 가는 이 길을 가야되겠지~ 1등을 하는 것보다, 꼴찌가 더욱 힘들다아~ 바쁘게 달려가는 친구들아 손잡고 같이 가보자, ~ 어설픈 1등보다, 자랑스러운 꼴찌가 좋다,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을 꺼야.”
언론다시보기 / 방송인 김미화(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