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10시 넘어서였을 거예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전화가 왔어요. ‘이 부장님, 내가 할 말이 좀 있어요. 내가 많이 억울해요. 지금 만날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정치부 시절부터 알고 지냈는데, 참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였어요. 술자리라고 했더니 꼭 할 말이 있으니 내일 새벽에 전화 받으라고 하더군요. ‘녹음도 하고, 다들 내 돈은 편하게 믿고 썼으니까….’”
2015년 4월9일 새벽 이기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은 전날 밤 마신 술을 깨기 위해 찬물에 머리를 한참 담갔다. 5시40분 휴대전화가 울렸다. 성 전 회장이었다. “일어났느냐, 녹음준비는 했느냐”는 확인 전화였다. 6시5분쯤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통화는 48분간 이어졌다.
이 부장은 ‘허태열 7억’을 듣는 순간 술이 확 깼다. 성 전 회장은 허태열을 시작으로 김기춘·홍문종·이완구·홍준표·이병기 순서로 검은돈 이야기를 풀어 갔다.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현직 국무총리, 친박 실세 등 박근혜 정부 유력 인사 6명을 거명했다. 2015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성완종 리스트’는 그렇게 나왔다.
◇TV에 뜬 속보, 검사의 전화
성 전 회장은 전화 인터뷰 중간중간 “내가 희생되더라도” “죽는 한이 있어도” “이런 기업인이 나 하나로 끝났으면”이라고 했다. 이 부장은 그 말뜻을 회사에 출근해서야 알았다. TV에 성 전 회장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고 경찰이 수색 중이라는 속보가 떴다. 가슴이 마구 떨렸다.
회사에 성 전 회장과 통화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가슴이 벌렁거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검사였다. 성 전 회장과 전화한 마지막 통화자로 나온다며 무슨 얘기 했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하자 그 검사는 혼자 쌍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해외 자원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성 전 회장을 수사하고 있었다. 성 전 회장은 9500억원의 분식회계와 회삿돈 250억원 횡령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였다. 4월9일 오전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던 그는 오후 북한산 형제봉 인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충남 서산에서 홀로 상경해 갖은 고생 끝에 기업을 일으켰다. 1990년 서산장학재단을 만들고, 2000년부터 충청 출신 인사 3500명으로 구성된 사단법인 충청포럼 회장을 맡았다. 여러 번 정계 입문을 시도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2014년 6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경남기업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자 경영권과 지분까지 포기했다.
경향신문은 4월10일자 1면 <성완종 “김기춘 10만달러·허태열 7억줬다>를 시작으로 성 전 회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순차적으로 공개했다. 그날 오전 10시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옷에서 박근혜 정부 실세 8명의 이름과 돈 액수가 적힌 메모지가 발견됐다고 뒤늦게 공개했다. 이 메모에는 ‘허태열 7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김기춘 10만불, 이병기, 이완구’란 글자와 ‘김기춘 10만불’이란 글자 옆에 ‘2006.9.26日 독일 벨기에 조선일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뇌물 리스트 부인한 권력 실세들
‘성완종 메모’에는 성 전 회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거명한 6명에 더해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로 추정되는 부산시장이 등장한다. 이완구와 홍준표를 제외하고 모두 2007년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과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핵심 직책을 맡은 인사들이었다.
경향신문은 4월10일 첫 보도부터 4월15일까지 성 전 회장 인터뷰를 하나씩 내보냈다. 유족 동의를 얻어 유튜브 계정을 통해 고인의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 일부도 공개했다.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성 전 회장이 권력 실세들에게 돈 준 정황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2006년 9월 김기춘 전 실장이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 ▲2007년에 허태열 전 실장을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7억원을 서너 차례 나눠서 현금으로 줬다 ▲2011년 홍준표가 대표 경선에 나왔을 때 그 캠프에 있는 측근을 통해 1억원을 전달했다 ▲(2012년) 대선 때 홍문종 본부장에게 2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줬다 ▲지난번(2013년 4월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 때 선거사무소 가서 이 양반(이완구 국무총리)한테 30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왔다.
성 전 회장의 마지막 인터뷰는 이 메모가 박근혜 정부 실세들에게 건넨 ‘불법 정치자금 또는 뇌물 리스트’라는 걸 증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스트에 언급된 8명은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4월1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 출석한 이완구 국무총리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검찰은 4월12일 특별수사팀을 출범하고 경향신문에 전화 인터뷰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 제출을 요청했다. 경향신문은 4월14일 밤 성 전 회장 유족과 녹음파일 제출에 관해 논의했다. 유족 측은 진실규명을 위해 검찰에 제출하고, 인터뷰 전문을 경향신문에 싣는 데도 동의했다. 다만 고인의 육성 녹음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은 반대했다.
◇인터뷰 녹음파일 ‘절도 사건’
경향신문은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하기 전 디지털포렌식(증거보전) 작업을 했다. 4월15일 오전 서초동의 한 모바일 분석업체에 이기수 부장과 경향신문 전산팀 직원,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김인성씨, 분석업체 사장 등이 모였다. 김씨는 며칠 전부터 녹음파일 보안 작업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경향신문은 이에 응했다. 김씨는 자신의 컴퓨터로 녹음파일 원본 추출 작업을 벌였다.
그런데, 그날 밤 9시 ‘JTBC 뉴스룸 2부’에서 성 전 회장의 육성을 자막과 함께 21분 정도 보도했다. 그 시점에 성 전 회장의 유족이 JTBC 보도국에 전화를 걸어 “고인의 육성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 방송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고, 박래용 편집국장도 “유족 동의가 없고, 타 언론사 취재 일지를 훔쳐 보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항의했지만, JTBC는 그대로 보도했다.
이 녹음파일은 김인성씨가 JTBC 기자에게 넘겼다. JTBC가 성 전 회장의 녹음파일을 공개하던 그날 밤 9시15분쯤 김씨는 이기수 부장과 통화에서 “(녹음파일 전문이) 내일 경향신문에 전재된 후 활용하라고 했다. 유족 동의도 구하지 않고 원칙 없이 사용할 줄 몰랐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사실상 훔친 녹음파일을 JTBC는 입수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보도해 취재윤리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경향신문은 녹음파일 전문을 4월16일자에 보도했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가 수사의 단서일 뿐 유력한 증거일 수는 없다며 비자금 장부를 찾기 위해 성 전 회장의 측근들에 대한 수사와 증거인멸 수사에 집중했다. 이완구 총리는 4월20일 중남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수사팀은 5월8일 홍준표 경남지사, 5월14일 이완구 전 총리, 6월8일 홍문종 의원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7월2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팀을 꾸린 지 82일 만이었다.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를 불법 정치자금 3000만원과 1억원을 각각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메모에 나오는 허태열 전 비서실장, 이병기 비서실장,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을,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해선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거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를 댔다. 구속자는 성 전 회장의 측근 임직원 2명뿐이었다.
◇초라하게 끝난 검찰 수사
언론은 ‘총체적 부실 수사’ ‘면죄부 수사’라고 비판했다. 리스트에 적힌 8명 중 6명이 처벌을 받지 않은 데다 그중 5명은 서면조사만 받았다. 성 전 회장이 돈을 줬다고 말한 인물들과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도 하지 않았다. 반면 리스트에 등장하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에 대해 15시간의 강도 높은 소환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노씨가 2007년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을 도와준 대가로 5억원의 경제적 이익을 받은 혐의가 있으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했다. 성완종으로 시작해서 노건평으로 끝났다는 ‘기성전평(起成轉平)’이란 말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래서 죽은 권력에만 칼을 대고 살아 있는 권력은 적당히 넘어간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에 넘겨진 이완구 전 총리는 2016년 1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홍준표 지사는 같은 해 9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 전 총리와 홍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성 전 회장의 경향신문 인터뷰 녹취록과 자필 메모를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이완구 사건), 금품 전달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검찰 증거가 미흡했다(홍준표 사건)는 게 이유였다. 대법원은 2017년 12월22일 두 사람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성 전 회장은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했나 나중에 아실 것이니 잘 다뤄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진실과 진실의 고백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그가 죽음으로 고발한 권력 실세들의 검은돈 의혹은 검찰의 부실수사와 항소심 재판부·대법원의 ‘물음표’ 판결로 끝났다. ‘성완종 최후의 인터뷰 및 성완종 리스트 파문’ 보도는 그해 한국기자상과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
“도쿄지검이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날리듯이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이뤄지고, 사법부가 제대로 단죄했다면 권력 비리 의혹 사건에 한 획을 그었을텐데 아쉬워요. 김건희도 그렇고 지금도 검은돈을 발본색원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이기수 편집인은 지난 사건의 의미를 그렇게 돌아봤다.
※이 기사는 2015년 4월9일 새벽 성완종 전 회장과 생전 마지막 인터뷰를 했던 이기수 경향신문 편집인 겸 논설주간(당시 정책사회부장)을 7월17일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듣고 ‘성완종 리스트’ 관련 언론 기사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