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폐쇄라는 한국 언론 사상 초유의 사태는 2013년 6월 한국일보에서 일어났다. 한국일보 대주주 장재구 회장은 6월15일 오후 6시20분쯤 사장과 부사장, 일부 편집국 간부와 용역업체 직원 20여명을 대동하고 서울 중구 한진빌딩 15층 편집국을 찾았다. 그날은 신문을 제작하지 않는 토요일이라 편집국에는 당직 기자와 편집국 간부 1명이 있었다.
장 회장 쪽은 기자 2명에게 ‘근로 제공 확약서’라는 문서를 제시한 뒤 “이 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편집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강제로 편집국 밖으로 쫓아냈다. 근로확약서는 “본인은 회사의 사규를 준수하고 회사에서 임명한 편집국장(직무대행 포함) 및 부서장의 지휘에 따라 근로를 제공할 것임을 확약한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퇴거 요구 등 회사의 지시에 즉시 따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몇몇 기자들이 달려왔지만 15층 편집국 출입문은 열리지 않았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입문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사측은 또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전산시스템인 기사 집배신도 폐쇄했다. 기자들이 아이디를 입력하면 ‘퇴사한 사람입니다. 로그인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고 접속이 되지 않았다. 사측이 인정하지 않은 기자들은 기사 작성이 불가능해졌다.
200억원대 배임혐의 장재구 회장 고발
신문사 회장이 기자들을 쫓아내고 편집국을 봉쇄한 ‘한국일보 사태’는 노조가 4월29일 장 회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노조는 고발 사유로 “한국일보 중학동 사옥 매각 사태의 위법 책임”을 들었다. 장 회장은 2006년 한국일보 정상화를 위해 중학동 사옥을 매각하면서 신축건물 상층부 2000평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얻었다. 그러나 장 회장은 사옥을 매입한 건설회사로부터 200억원을 빌리는 과정에서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했고 중학동 사옥 입주는 무산됐다. 노조는 “장 회장이 한국일보에 200억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며 “장 회장은 2011년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자 개인 자산을 팔아 200억원을 한국일보에 돌려놓고 본인은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 고발은 장 회장에 대한 직접적인 퇴진 요구였고, 상당수 편집국 간부들도 구성원들의 뜻에 동조했다. 장 회장은 5월1일 자신의 경영권 행사에 부정적인 이영성 편집국장을 경질하고 신임 편집국장 등 편집국 간부를 새로 임명했다. 노조는 장 회장의 인사를 전면 거부하고 이 국장 보직 해임에 대한 찬반투표를 5월3~6일 진행했다. 편집국 재적 인원 193명 중 167명이 참여(투표율 86.5%)해 165명(98.8%)이 보직 해임에 반대했다.
전무후무한 ‘한 지붕 두 편집국’
이영성 국장은 개표 이후 “이번 인사는 △‘5일 전 사전 통보’라는 절차를 어겼으며 △보복 인사를 금지한 법원 판례에도 어긋나고 △국장 지명, 임명 동의 후 부장단 인사를 한다는 관례도 깨뜨린 상식 밖의 불법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인사 조처를 거부하며 신문 제작을 계속했다. 장 회장이 지명한 하종오 편집국장 후보자는 기자들의 임명동의투표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별도의 공간에서 업무를 했다. 이에 따라 ‘한 지붕 두 편집국’이라는 전무후무한 체제가 만들어졌다.
사측은 이영성 국장에 대해 5월22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임 결정을 내렸다. 5월29일엔 이계성 논설위원을 편집국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이계성 국장 직대는 장 회장과 노조 사이 중재자 역할에 나섰지만, 중재 불발로 6월10일 자진 사퇴했다. 기자들은 편집국장 해임 사태 속에서도 창간 59주년을 맞아 6월8일자와 10일자에 창간 기획 기사를 싣는 등 한달여간 정상적으로 신문을 제작해왔다.
하지만 사측이 편집국을 폐쇄하면서 기자들의 이름은 한국일보 지면에서 사라졌다. 사측은 6월16일 박진열 사장 명의 알림에서 “지난달 초부터 회사의 인사 발령에 불만을 품은 일부 편집국 전직 간부와 노조의 반발로 40일 넘게 신문 제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간 일부 편집국 전직 간부와 노조원들이 점거해 오던 편집국을 되찾고, 언론사 본연의 임무인 신문 제작을 바로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날로 임명동의투표가 부결된 하종오 논설위원을 다시 편집국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파행 제작된 ‘짝퉁 한국일보’
사측은 6월17일자부터 기자들을 배제한 채 신문 제작에 나섰다. 편집국장 직무대행과 보직 부장 7명, 정치부 기자 5명 등 14명이 제작했다. 대부분 지면은 연합뉴스 등 통신사 기사들로 채워졌다. 사측은 서울경제신문이 입주한 서대문구 미근동 임광빌딩 8층에 별도의 편집실을 꾸려 지면을 제작했다. 평소보다 8면 감면한 24면 분량의 신문을 만들었는데, 계열사인 서울경제 기사를 바이라인만 바꾸거나 스포츠한국 기사를 그대로 싣기도 했다. 논설위원들이 사설 집필을 거부하면서 통신사 사설을 상당 부분 베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파행 발행된 신문을 ‘짝퉁 한국일보’라고 불렀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사측의 조치를 불법적 직장폐쇄로 규정하고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초유의 편집국 폐쇄 사태는 언론계 차원의 반발과 함께 한국일보 기자들에 대한 각계의 성원과 지지를 불러일으켰다.
한국기자협회는 6월16일 성명을 내어 “대한민국 언론 사상 초유의 편집국 폐쇄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고, 기자협회보는 3주에 걸쳐 1면에 한국일보 기자들을 지지하는 릴레이 메시지를 실었다. 17개 회원사 지회장(6월26일자), 전국 10개 시도기자협회장과 지역언론사 소속 기자협회 부회장단(7월3일자) 메시지, 7월10일자엔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보내는 친구, 선후배들의 편지를 실었다. 2012년 입사한 26개 언론사 막내 기수 기자들은 “언론 자유를 위해 소속 언론사의 이념과 성향을 떠나 결연한 마음으로 한국일보 선배 기자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기자들이 쫓겨나 농성 중이던 신문사 건물 로비에는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잇따라 찾았다. 새누리당 이재오·남경필·김용태 의원, 민주당에선 정세균·한명숙·홍영표·배재정 등 20여명의 의원이, 정의당의 노회찬 대표와 심상정 의원,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현장을 찾아 기자들을 격려했다. 학자들, 문화예술인들,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찾아와 힘을 보탰다. 한국일보 노사는 편집국 정상화 방안을 놓고 몇 차례 대화했으나 진척이 없었다.
25일 만에 편집국 열렸지만…
한국일보 편집국 문은 폐쇄 25일 만에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7월8일 한국일보 기자 15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취로방해금지 및 직장폐쇄해제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회사는 기자들의 근로제공을 거부해서는 안 되고, 기자들이 편집국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기사작성·송고 전산시스템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면서 회사가 이를 어길 땐 기자 1명에게 날마다 20만원씩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일보는 7월9일 오후 3시부터 편집국을 기자들에게 개방하고 기사 집배신 시스템 접속 권한을 다시 부여했다. 사측은 그러나 편집국장 대행 체제를 유지하고 서울경제 사옥에 마련된 편집실을 계속 운영했다. 또 차장급 이상 데스크들의 기사 승인 권한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해 송고할 순 있지만, 기사 데스킹과 편집·제작은 장 회장을 따르는 간부 10여명이 전담했다. 이른바 ‘짝퉁 한국일보’ 발행은 계속됐다.
한국일보 사태는 장 회장이 구속되고, 법원이 한국일보에 대해 재산 보전 처분을 내리면서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권순범)는 8월5일 200억원대 배임 혐의로 한국일보 노조에 의해 고발된 장재구 회장을 구속했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법 파산2부(재판장 이종석)는 1일 한국일보 전·현직 직원 201명이 한국일보에 대해 회생절차를 신청한 것에 대해 재산 보전 처분을 내리고 법정관리인을 선임했다.
한국일보는 8월12일자부터 정상 발행됐다. 1면에는 사시(社是) ‘춘추필법의 정신, 정정당당한 보도, 불편부당의 자세’가 대문 사진으로 걸렸다. 그리고 ‘언론의 바른 길,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한국일보의 정상 발행을 독자들에게 알렸다. 6월15일 편집국 폐쇄 이후 58일 만에 한국일보는 기자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한국일보는 9월6일 법원이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하자 인수합병(M&A) 절차에 돌입했고, 1년 만인 2014년 9월18일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동화그룹을 한국일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11월3일 한국일보와 동화그룹은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인 2015년 1월29일 서울중앙지법 파산3부는 한국일보사에 대한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내렸다. 승명호 동화그룹 회장은 2월2일 한국일보 회장으로 취임했다. 승 회장은 1993년 동화기업 대표, 2001년 대성목재공업 대표를 거쳐 동화그룹 회장으로 재임 중이었다. <한국일보 70년사>는 “2015년 2월3일자 1면에 이 작은 인사 소식을 전하기까지 한국일보는 편집국 폐쇄 및 ‘18개월 법정 관리’라는 불확실성의 긴 터널을 버텨야 했다”고 밝혔다.
구속된 장재구 전 회장은 2015년 10월17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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