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맞고 있다. 온라인 괴롭힘은 일상이고, 광장에서, 심지어 국회에서도 기자들은 폭력을 경험한다. 위협이 반복되면 취재는 위축되고, 언론의 견제·감시 기능은 쪼그라든다. 이런 현실을 진단하고 개선할 방안을 살펴본 3주간의 기획을 마무리한다. <편집자 주>
국회에서 기자를 폭행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기자회견장에서 질문하려던 기자가 소속을 밝히자 말문을 막고 떠난 홍준표 전 대구시장, 성 비위 의혹을 묻는 기자를 몸으로 밀치고 ‘헛소리 한다’며 고함친 이준석 전 개혁신당 대선 후보 보좌관. 이들 주장의 공통점은 정치인에게 이른바 ‘취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 SNS와 유튜브의 확대로 정치인은 점점 불편한 언론을 거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언론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곧 ‘취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은 기자를 무시하고 나아가 특정 언론사를 배제하고 때로 공격하며, 끝내 언론 자체를 혐오해도 된다는 인식으로 뻗어나가는 시작점인 셈이다.
기자에 “예의 지키라”… 취재 막는 핑계
대선을 일주일 앞둔 5월27일 이명선 뉴스타파 기자를 밀치며 윽박지른 이 전 후보 측은 기자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기자회견을 끝내고 이동하는데도 따라와 취재 규칙을 어겼고 답을 거부한 질문을 반복해 잘못했다는 것이다. 이 전 후보 측 조영환 보좌관은 “상대가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정치인은 무조건 답해야 하느냐”며 뉴스타파의 사과 요구도 거절했다.
이 전 후보 측은 기자가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이는 언론과 취재의 속성을 잘못 이해한 주장이다. 김창숙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일반적인 대화라면 존중이 기본이고 한쪽이 원치 않으면 멈춰야 한다”며 “하지만 시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언론과 정치인의 문답은 다른 차원”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은 공인으로서 언론에 답할 사회적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취재는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활동인 탓에 자연히 갈등과 긴장이 예견돼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취재윤리가 강조돼 오긴 했지만 기자가 지켜야 할 예의는 왜곡되거나 혼동되기도 했다. 취재원에 대한 예의는 병원이나 재난, 참사 현장에서 지켜져야 한다. 공권력을 취재하는 기자가 집요하게 노력하는 건 여전히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취재 규칙이 따로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김 연구위원은 “도어스테핑처럼 정치인 취재는 질문이 사전에 조율되지 않고 시공간 제약이 덜한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기자회견이 끝난 뒤 질문하면 안 된다는 이 전 후보 측 주장에는 “단지 시간과 공간의 ‘형식적’ 취재 제한이 아니라 결국 말하고 싶은 홍보성 취재만 허용하고 불편한 질문은 거부한 ‘내용적’ 제한이어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이 전 후보 측에 명태균씨와의 관계와 성 상납 의혹에 대해 전화와 문자, 팩스 등으로 한 달 동안 서른 차례 넘게 질문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결국 공개적인 기자회견을 찾은 것인데 이곳에서마저 질문을 막으면 언론의 질문과 취재 기회, 즉 접근권 자체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 취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정도를 넘어 입막음이 된다는 것이다.
불편한 질문하면 출입처에서 배제
하지만 취재 일선의 기자들이 느끼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치인이 기자회견에서 부실한 답변을 하더라도 기자들이 다시 따져 묻는 ‘꼬리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다른 기자가 앞선 기자의 질문을 뒤이어 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 다른 주제의 질문을 던지면 화제는 이내 전환된다.
국회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정치적 상대방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에선 기자가 질문하는 자체만으로 지지자들에게 편파적이라고 찍혀 공격당할 수 있다”며 “국회 현장에 보내지는 말진 기자는 특정한 주제를 깊게 취재하기보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로 하루하루 기사를 쳐내야 하는 ‘의무 방어전’에 내몰리는 배경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불편한 질문을 반복하면 아예 출입처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5월23일 기자협회보 좌담회에서 권규홍 아주경제 기자는 “대통령실을 처음 출입할 때 브리핑에서 몇 가지 질문을 했더니 타사 선배 기자들이 와서 ‘질문이 너무 세다’면서 주의를 줬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취재가 어려워진다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이기주 MBC 기자는 2022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을 보도한 뒤 대통령을 가까이서 취재할 수 있는 풀(pool) 취재단에서 수개월 동안 배제돼야 했다. 풀단에 들어갈 언론사 순번은 출입기자단이 직접 짜지 않고 대통령실이 일방적으로 정한다. 대통령실 직원들은 이 기자의 취재 전화에도 제대로 응대하지 않았고 인사도 잘 받아주지 않았다.
이 기자는 “대통령실이 풀단에서 MBC 순번을 건너뛸 때 출입기자단이 항의하지 않았다”며 “대통령실의 폐쇄적인 분위기 탓에 밉보이면 취재가 어려워지니 연대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대통령실이 저를 출입 정지하라고 기자단에 요구했는데 결과적으로 징계가 없었던 건 기자단이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무관심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언론 ‘접근권’ 막으면 법적 책임
윤석열 정부에서 취재 배제는 수시로 일어났다. 윤 전 대통령은 비속어 보도 이후 MBC를 전용기에 태우지 않았다. 임기 중 네 번의 기자회견에서도 비판적인 언론에는 질문권을 주지 않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촬영 허가까지 받은 뉴스타파를 회의장에서 일방적으로 퇴장시켰다. 12·3 비상계엄 이후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이 기자회견을 열면서 비우호적인 언론의 출입을 막았다.
4월 권 원내대표의 뉴스타파 기자 폭행도 기자회견 때 질문 기회를 차단한 뒤 일어났다. 당시 권 원내대표는 임시 출입증을 달고 있는 이명주 기자가 질문하려 하자 권리가 없다는 듯 막았다. 이 기자는 이 때문에 곧장 자리를 떠난 권 원내대표에게 따라붙으며 질문했을 뿐이었다.
이런 배제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1974년 미국 하와이 언론 ‘호놀룰루 스타 불레틴’의 리처드 보레카 기자는 자신의 시청 출입을 금지한 시장을 상대로 취재를 막지 말라는 가처분을 내 승소했다. 법원은 “언론의 자유에는 합리적인 접근권이 포함된다”며 어떤 압도적인 이유 없이는 기자가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공개된 장소와 공식 행사 취재를 막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프랭크 파시 시장은 해당 언론사에 다른 기자를 보내면 다시 출입을 받아주겠다고 했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검열과 다름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권력자는 특정 언론사나 기자를 내치거나 가까이 두는 방식으로 누가 자신을 감시할지 스스로 선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979년에는 텍사스 지방검사가 특정 언론사에만 사전 약속 없이는 취재를 받지 않아 소송을 당했다. 법원은 여러 언론사 사이 취재 접근권에 차등을 두는 것조차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올해 4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만’을 ‘멕시코만’으로 표기한 AP 통신의 취재를 거부했다가 역시 법원에서 취소됐다.
취재거부 넘어 방해하면 ‘업무방해’
국내에서도 유의미한 판결이 있다. 2011년 정부는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에 대한 엠바고 파기를 이유로 부산일보의 모든 정부 부처 출입을 정지했다. 이듬해 부산지방법원은 부산일보에 패소 판결했지만 부산일보 기자가 실제로 기자회견장에서 쫓겨나거나 대통령과 산행 때 배제되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 실질적으로 접근권을 차단했다면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뜻이다.
2023년 홍 전 대구시장은 신공항 사업을 비판한 대구MBC의 시청 출입을 막고 공무원들에게도 응대를 금지했다. 법원은 대구MBC가 공무원들을 접촉할 권리를 홍 전 시장이 중간에서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언론중재법은 언론이 “정보원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대구MBC는 홍 전 시장에게 손해배상과 업무방해죄 고발이 가능하다고 검토를 마쳤지만 취재 제한이 풀리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핀란드 총리실은 2023년 ‘향상된 정부 공보를 위한 지침’을 두고 모든 부처에 언론사에 대한 차별적 접근 배제를 아예 금지했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기자회견과 브리핑 등 공개된 취재라면 모든 언론사와 기자가 접근권을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공개적인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차단하거나 기자를 쫓아내는 행태는 핀란드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불편한 언론을 막거나 쫓는 행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튜브와 SNS를 통한 일방적인 소통에 익숙해진 정치권이 언론을 적대하게 된 결과라고 진단한다. 김창욱 한동대 교수는 “언론이 유튜버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뉴스가치 판단, 사실 확인과 같은 뉴스룸의 ‘편집’ 기능”이라며 “사실 확인이나 검증이 자기 진영과 맞지 않으면 언론을 비난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단체·언론사도 나서야
정치권에 변화를 촉구하는 동시에 광장에서의 폭력도 막으려면 언론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 기자에 대한 공격도 잦은 브라질에서는 11개 언론 관련 시민단체가 연합해 신체와 언어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브라질 언론방어연합’(CDjor)을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해 자국 내 지방선거 기간 SNS를 모니터링해 언론혐오 발언 3만7000여 건을 찾아내고 이를 50쪽짜리 보고서로 정리하기도 했다.
1970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인 ‘언론자유를위한기자위원회’(RCFP)는 미국 내 언론인들을 위해 법률 대응을 대리하거나 법정 의견서 제출, 법률 상담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언론재단 사업으로 기자에 대한 공격 등에 법률 상담을 해주고 있긴 하다. 자율적인 언론단체가 아닌 정부가 출연한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각 언론사도 기자 보호 방침을 분명히 내세워야 한다. 비상계엄 이후 발음이 이상하다며 중국인으로 몰려 온라인 괴롭힘을 당한 한 방송사 기자는 법적 대응을 고민했다가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기자는 “일주일 출연을 빼줬다가 온라인이 잠잠해진 뒤 다시 출연하면 또 공격이 시작된다”며 “피해가 4개월 넘게 지속되고 공격이 일상이 되니 매번 회사에 말하는 게 유난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법무팀의 도움을 받으려 해도 1차적인 자료 준비는 제가 해야 하는데 내가 내 이름을 검색해 가며 일일이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며 “그럼 회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적어도 홈페이지에 한 줄이라도 강한 대응 기조를 명시해 줬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에 대한 음해는 인식하지 못한 사이 언론사의 신뢰까지 떨어뜨리는 만큼 회사 차원에서도 대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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