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편집국회' 연 부산일보 기자들

안병길 사장 "진퇴 요구 과하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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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기자들이 지난 2011년 이래 6년 만에 편집국회를 열고 사장 배우자가 정당 공천을 받고 지방선거에 출마한 데 대한 대응방안 모색에 나섰다. 노조와 기자협회, 부산일보 기자들이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입장표명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가운데 ‘편집권 독립 훼손’에 대한 우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국기자협회 부산일보지회 등에 따르면 부산일보 기자들은 지난 23일 오후 1시 본사 4층 편집국에서 편집국회를 열었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편집국회에는 기자 50~60여명이 참석했다. 고연차·간부 기자를 제외하면 필드에서 뛰는 기자 대다수가 참여했다. 기자협회가 현 상황에 대한 의견개진, 공정보도가 담보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 향후 대응을 어떻게 할지 등 주요 논의사항을 제시했고, 이에 대한 기자들의 자유로운 발언이 따랐다. (관련기사 : "부산일보가 한국당이 되면 되나, 중립이 돼야재" )


지난 23일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1층에서 언론노조,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지역시민단체 등이 부산일보 사장 배우자의 지방선거 출마와 관련해 안병길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연 모습. (언론노조)

▲지난 23일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1층에서 언론노조,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지역시민단체 등이 부산일보 사장 배우자의 지방선거 출마와 관련해 안병길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연 모습. (언론노조)


이날 편집국회에 참석한 한 기자는 “전체적인 상황 판단과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비슷했다. 사장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란 의견이 많았다”며 “소수에선 현실적으로 노조의 공정보도위원회 활동 강화와, 편집국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을 얘기하기도 했는데 ‘내부적으로 아무리 공정보도를 위한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고 해도 밖에선 그렇게 안 봐주지 않겠나. 그렇게는 변하는 게 없다’는 걸로 되돌아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산일보지회 관계자는 “어제(23일) 나온 의견을 모아서 정리하고 (대응) 방향을 결정하려 한다. 해결방안이 딱 나온 건 아니다”라면서 “창사 이래, 또 전국적으로도 이번에 쟁점이 된 원인 자체가 워낙 드문 사례라 회사 차원을 넘어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신중하게 보려 한다”고 말했다.


특정 사안을 두고 기자들이 직급에 상관없이 의견을 나누는 이 자리는 지난 2011년 이후 6년 만에 마련된 것이다. 당시 부산일보 대주주인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대외투쟁, 이 과정에서의 노조위원장 해고 건 등을 지면에 게재하려던 편집국장을 사측이 대기발령 조치하는 사태가 발생하며 구성원들이 결집했고, 사장실 점거와 사장 퇴진 등으로 이어진 바 있다.


편집국회가 열리기 전까지 부산일보 내외에선 안병길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던 참이었다. 안 사장의 배우자 박문자씨는 지난 2일 해운대구 제1선거구 자유한국당 시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았고, 이에 대한 노조의 문제제기 후 사장의 입장문, 기자협회·기자들 연명 성명, 언론·시민단체의 기자회견 및 결의대회까지 사태가 이어져왔다. 특히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노조)는 지난 22일 성명을 통해 그간 사례를 제시하며 ‘편집권 독립 훼손’에 대한 우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박 씨의 선거 홍보를 돕는 모 화백은 자기 블로그에 ‘부산일보 대표의 부인인 박문자 후보와 조율하여 올린 선거홍보물을 내리라 마라 하는 것인가’라며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며 “글대로라면 부산일보의 누군가가 ‘개입’했다는 뜻인데, 이는 입장문에 올린 ‘개입 등 일체의 오해 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사장의 당부를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 임원급 간부는 박 씨의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클릭, 오해 받을 짓을 일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또 안 사장이 배우자에게 출마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고 입장문에서 밝힌 “철저히 혼자 해 낼 것, 나한테 기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 것, 회사에 폐가 되는 행동은 일체 하지 말 것”이란 약속이 예비후보 선거운동기간 이미 어겨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몇몇 제보에 따르면 박씨가 이미 예비후보 시절 지역구를 돌며 ‘남편이 부산일보 사장’이라며 얼굴을 알린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박씨가 과거 부산일보 보도에 개입한 정황’, ‘사장이 지방선거 공천에 영향을 주는 한국당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노조는 보도개입과 관련해 “박씨는 2016년 12월 중순 사상구의 모 유치원 교사의 원생 폭행 사건기사가 부산닷컴에 실리자 기자에게 전화해, 인터넷 기사 삭제 및 지면 게재 여부 등을 물었다. 그러면서 ‘부산일보와 자신의 관계’를 언급하는 발언을 했다”며 “이는 단협에서 금지하는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이자 편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했다.

전대식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이 지난 18일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모습.

▲전대식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이 지난 18일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모습.


사장과 한국당 인사의 만남에 대해선 “믿고 싶지 않은 제보도 있다. 사장이 3월 중순 해운대구 모처에서 6·13국회의원 보궐선거 해운대을에 출마한 한국당 김대식 후보를 만났다는 것”이라며 “김 후보는 한국당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이번 지방선거 후보 공천에 영향을 주는 인사로 알려진 사람”이라고 부연했다.


노조는 사장이 입장문에서 밝힌 “지면 제작에 그 어떤 부당한 지시를 한 사실도 없다”, “어떤 언론사보다 공정보도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지 않나”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사장 관련 행사·동정 기사와 사진이 지면에 자주 등장해 본보가 사보로 전락했다’는공보위 제작편집위원회의 지적, 지난해 4월 문학상 기사에 실린 사진처리를 놓고 사장이 격노했다는 후문, 사장실의 ‘하명 취재’에 대한 기자들의 부담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지금껏 공정·객관보도, 독립정론지 위상을 흔든 것만으로도 사장은 엄중히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안 사장은 지난 23일 편집국회 등을 통해 사태 발발 후 두 번째로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안 사장은 “제 아내의 출마 그 자체로서 취재 일선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기자 여러분들게 자괴감과 실망감을 안겨드리고 조직과 기사에 대한 불신감을 초래하게 돼 유감”이라며 “이런 사태를 예견했기 때문에 출마를 극구 만류하고 설득했지만 끝내 막지 못했다”고 했다.


안 사장은 “여러분들은 저에게 아내 후보 사퇴를 설득하거나 아니면 제가 물러나라며 양단간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며 “자존심에 멍이 들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저의 진퇴까지 결정하라는 것은 너무 과하지 않으냐는 게 솔직한 저의 심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내 갈등이나 분쟁은 사내에서 우리 끼리 해결해야 된다. 이미 몇 년 전 경험한 대로 사태를 외부로 가져나가거나 외부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문제 촉발의 책임이 저에게 있다. 그렇다고 불씨를 키워 회사가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져서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노조가 앞서 내놓은 성명에 대해선 “사실관계에 맞지 않거나 과대포장한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노조와 공보위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장이 마련된다면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과정에서 사측이 막내기자들의 글을 사내 게시판에서 제거한 데 대한 비판도 불거졌다. 앞서 부산일보 막내기자 세 기수 10명의 기자들은 연명 성명을 게시하며 “우리는 신뢰받는 부산일보에서 일하고 싶다. 하지만 시의원 공천이 확정된 그날부터 부산일보를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신문’으로 판단한다”며 “존경하는 선배(사장)의 책임 있는 결단을 기다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수백 명의 언론인이 70년에 걸쳐 쌓아온 부산일보 신뢰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호소하는 것”이라며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부끄럽지 않게 의정활동을 펼칠 기회는 4년마다 찾아온다. 그러나 존경받는 선배로 기억될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 선배들이 지켜온 자긍심과 기자정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부산일보 사옥.

▲부산일보 사옥.


성명서가 제거되기 전 사측으로부터 해당 게시물과 관련해 ‘회사 이미지 실추’와 징계 등을 거론하는 말이 나오자 그 위 네 기수 기자 19명은 “회사 이미지 훼손이 걱정됐다면 사장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지 말았어야 한다. 사장 부인의 출마와 공천이 알려진 순간 부산일보의 위상은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성명서와 관련해 “문제를 바로 잡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는 수단”이라며 “공정보도를 열망하는 막내 기자들의 의견에 말도 안되는 사규를 들어 징계를 운운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회사 지시에 반하는 내용’이면 언제든 뜯어버릴 수 있는 근거가 사규라면 이참에 노조를 통해 사규 개정을 정식으로 요구하겠다”고 부연했다.


안 사장은 이에 대해 입장문을 통해 “막내 후배들의 글이 새내 게시판에서 제거된 데 대해 여러분들이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이는 업무처리 과정에서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아 발생한 사태이며 사내 언로 차단 등 어떤 의도도 없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고 해명했다.


안 사장의 입장문과 지역 정가 분위기에 대한 복수 기자들 의견 등을 통해보면 박씨의 24~25일 지방선거 후보등록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안 사장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제 아내는 후회하고 있다. 부산일보 구성원들께 너무 미안해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다"면서도 "후보가 되기 전이라면 당장 포기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한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공천된 공당의 후보이고 선거가 코앞에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실제 박씨는 언론노조, 부산일보 노조, 지역 시민단체, 전국신문노조협의회 등 80여명이 모여 사장결단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던 지난 23일 선거캠프 개소식을 열었다. 박씨는 지난 2012년, 2015년에도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졌지만 이번엔 공천을 받았다.


전대식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은 부산일보사옥 1층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1988년 선배들의 파업으로 편집국장 3인 추천제 도입 등 편집권 독립의 시스템을 마련했다"며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사장 배우자 출마로 다시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부산일보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기본은 편집권 독립과 공정보도 의지에서 완성된다"며 "이런 기본적인 가치가 사장과 배우자 탓에 도전받고 있어, 사원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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