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가 한국당 되면 되나, 중립이 돼야재"

안병길 부산일보 사장 배우자, 정당 공천 지방선거 출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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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낮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1층. ‘안병길 사장은 결단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로비에 자리한 전대식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에게 한 ‘아지매’가 다가가 이게 뭐냐고 물었다. 사장 배우자의 지방선거 출마 얘길 듣던 ‘아지매’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부산일보가 한국당이 되뿌면 되나 중립이 돼야재. 안 된다. 안 된다”고 말했다. 때마침 지부장에게 알은 체를 하며 지나치던 사측 관계자에게 “이런 X같은 일이 어데있노?”라는 말이 튀어나갔다. “말씀을 심하게 하시네. 어디서 오셨어요?” “여기 살아요, 여기!”


전대식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이 지난 18일 낮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1층에서 사장 배우자의 지방선거 출마와 관련해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전대식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이 지난 18일 낮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1층에서 사장 배우자의 지방선거 출마와 관련해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장 배우자가 정당 공천을 받고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공정보도 훼손’에 대한 부산일보 기자, 시민사회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노조위원장이 ‘1인 시위’를 시작한 첫날 풍경이다.


전 지부장은 이날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사장 배우자도 출마할 수 있고 정치인은 편향이 기본이라 본다. 하지만 언론은 공정성이 생명이다. 중립적 심판을 맡아야 할 언론사 사장이라면 (배우자를) 설득해서 (임기 후인) 4년 뒤 나가게 하든가 사장이 사퇴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사측에서 ‘민주당이나 정의당 공천을 받았어도 이랬겠나’라는 말을 하더라. 민주당이면 여당이고 정권인데 더 세게 해야 하지 않나”라고 반박했다.


현재 4층 편집국 앞 게시판은 노조와 한국기자협회 부산일보지회, 기자들의 연명 성명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사장의 결단으로 부산일보의 공정성과 신뢰를 지켜달라는 게 요지다. 여기엔 부산일보 막내 세 기수 기자 10명이 이름을 걸고 밝힌 입장도 포함됐다. 이들은 지난 16일 “우리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벌써부터 부산일보를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신문’으로 판단한다”며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수백 명의 언론인이 70년에 걸쳐 쌓아온 부산일보 신뢰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바로 위 네 기수 기자 19명도 지난 17일 연명 성명을 통해 “언론사의 사장은 성역 없는 비판과 감시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공직자만큼 또는 더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된다”며 “다 가지려고 하지 말라. 24일 정식 후보 등록 전까지 사장은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안 사장은 배우자 출마와 관련한 구성원들의 우려에 대해 “설득·만류도 소용이 없었다. 아내의 꿈을 포기하라고 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본인 힘으로 혼자 하고, 회사에 폐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허락했다”며 “지면제작에 부당지시 한 적 없다. 마음껏 공정보도하라. 현실화되지 않은 우려로 대외투쟁·정치쟁점화하는 건 도움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노조와 부산일보 기협에선 ‘23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날 부산일보 사옥 앞에서 언론노조 소속 지부장, 지역시민단체가 한 데 모여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연대집회가 예정됐다. 6년 만에 편집국회도 열려 이번 일을 논의한다. 이날 안 사장의 배우자 선거캠프 개소식이 있고 24~25일은 지방선거 후보 등록일이다. 변곡점이 되는 시기. 후보 등록이 되면 그때부터 노사는 퇴로 없는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안 사장의 배우자는 지난 2012년, 2015년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 떨어졌지만 이번 선거에선 해운대구 제1선거구 자유한국당 시의원 후보로 지난 1일 공천을 받았다. 현재 활발히 선거운동 중이다.


전 지부장은 그간 이뤄진 사장의 ‘편집권 침해’에 대한 구성원의 불만이 이번 사태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인물면’의 ‘사장면’화, 사장 배우자 지지의사를 밝힌 모 화백에 대한 갑작스런 인터뷰 기사, 단협이 보장한 편집국장·노조의 인사제청·추천권 무시 등을 편집권 침해 사례로 거론했다. 또 “원래 살던 곳과 다른 곳에 출마하며 ‘남편이 부산일보에서 일한다’고 소개하는 걸 현직 의원이 본 경우도 있다. 예비후보 과정에서 이미 사장을 팔고 있는 것”이라며 사장이 말한 출마 전제조건이 이미 어겨지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전 지부장은 “사장 선임해임 권한을 가진 대주주 정수장학회가 용인하지 않았다면 가능할 수가 없다. (이대로라면) 결국 재단 문제까지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부산일보 ‘제3의 편집권 독립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부산일보는 지난 1988년, 2007년, 2011년 등 정수장학회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편집권 훼손’을 두고 투쟁을 벌인 바 있다.


안병길 부산일보 사장은 22일 본보와 통화에서 일련의 진행상황에 대해 “거기에 대해선 입장을 밝혔고 다른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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