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정파성에 떠나는 독자들

[신문의 길을 묻는다] ②자사 이기주의 벗어나라
지면 사유화 신문위기 부추겨
특정 세력 기대 일방 목소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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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지면을 펼칠 때마다 묻어나는 ‘뻔한 뉴스’에 피로감을 느낀다.
우리 신문이 정치적 정파성이나 자사이기주의 등에 덧씌워진 ‘상업주의’에 매몰돼 있기 때문인데 자사만이 보여줄 가치나 철학은 물론 나아가야 할 지향점마저 퇴색돼, 합리적이고 건전한 비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런 사이 독자들은 신문을 외면하면서, 신문의 존재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있다. 일부 신문들은 정파성을 충성도 높은 독자들을 잡기 위한 방안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대부분 독자들은 이를 식상해 한다. 그리고 고리타분한 정치기사나 사회기사보다는 온라인에서 연예기사나 스포츠기사 등 말랑말랑한 연성뉴스를 찾게 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조사한 ‘2012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신문 기사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이유로 국민 이익보다 자사 이익을 우선시 하는 ‘자사 이기주의’가 79.5%(대체로 그렇다+그렇다)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어 ‘정치적 편파성’(75.4%), ‘부유층과 권력층 입장 대변’(74.0%), ‘선정주의’(72.6%) 등이 뒤이었다.


▲정치, 안보, 노동 등 일부 사안에만 국한됐던 정치적 편파보도가 최근 자사 이기주의와 맞물려 확장되고 있다.

반면 기자들의 ‘전문성 부족’은 39.6%에 불과했다. 신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기자 개인보다는 뉴스생산 관행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신문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독자들의 뉴스소비 패턴이 급속히 모바일·인터넷 등의 플랫폼으로 이동함에 따라 자초한 측면이 크지만, 잘못된 뉴스생산 관행이 위기를 부추겼다고 신문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신문의 정파성은 ‘여론 다양성’ 차원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무조건 싸잡아 비난만 할 수 없다. 문제는 정파성을 내세울 때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팩트와 근거가 충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일각에선 보수·진보신문 간 상호 ‘헐뜯기’가 신문의 신뢰도 하락을 부추긴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 신문사 간부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나쁜 관행도 있었지만 최소한 좋고 나쁜 기사, 훌륭한 기자와 그렇지 못한 기자에 대한 기자사회 안에서의 공감대가 있으면서 자정기능을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기자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토대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등을 거치면서 정부와 보수신문 간 갈등이 첨예해 지고, 여기에 신문산업 위기까지 겹쳐지면서 보수·진보신문 간 승자가 없는 ‘마이너스섬 게임’을 펼치게 됐다. 이후 공수만 바뀔 뿐 서로 ‘생채기’를 내기 바빴고, 독자들은 이런 뉴스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실제 2005년 ‘황우석 사태’ 때 MBC PD수첩이, 2008년 ‘촛불시위’ 당시엔 조중동 보수신문이 ‘광고 불매운동’의 대상 매체가 됐다. 하지만 두 사건의 공통점은 진보·보수 모두 광고 불매운동에 맞설 땐 ‘언론자유 탄압’을, 반대로 지지할 때는 ‘소비자 주권’이란 프레임을 각각 내세웠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입장에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독자들은 지면에서 떠났고, 기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진보 혹은 보수신문이란 꼬리표 때문에 문전박대받기 일쑤였다.


한 신문사 중견기자는 “콘텐츠 생산 등 신문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미디어플랫폼 이동을 간파하고 기민하게 대응했을 것”이라며 “정파성과 자사이기주의에 함몰되면서 그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합리성이 결여된 정파적인 보도가 과거엔 정치, 안보, 노동 등 일부 사안에만 국한된 데 비해 최근엔 자사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지면 물불 가리지 않고 무한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요 신문사들이 대주주로 있는 종합편성채널과 관련한 기사다. 한겨레는 지난달 20일자 ‘방통위, 종편에 또 특혜 논란’기사에서 “지상파 광고 총량제를 도입하면서 종편 규제 대거 완화, 시간당 17~20% 자율편성 허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반면 이날 동아일보는 ‘지상파 인기예능 한편에 광고 32개서 48개로 늘어나’, 매일경제는 ‘방통위 지상파만 빨대 쥐여 줘’, 조선일보는 “지상파 年2000억 추가 수익, 영세 방송은 고사”라는 기사로 자사가 1대 주주로 있는 종편을 옹호했다. 적어도 한쪽의 논리가 궁색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신문 산업 위기와 맞물려 독자들에 대한 ‘신뢰성 회복’보다는 ‘상업성’을 우선시 하는 기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신문사 관계자는 “신문 산업 위기 탓에 기자들도 경영논리에 지배당하면서 신뢰성을 등한시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특히 온라인 부문에서 이런 현상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콘텐츠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저널리즘의 기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신문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에 대항하기 위해 속보 대결로 ‘맞불’을 놓기 보다는 심층기사나 기획기사 등 ‘긴 호흡’의 기사를 통해 독자들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언론학과 교수는 “진보나 보수를 지향하는 신문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기가 내고 싶은 목소리’만 전달하는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신문이 심층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지식사회를 견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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