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의 진실과 언론의 신뢰
검찰의 BBK 수사결과 발표가 있은 뒤 며칠 후 대학생 10여명과 차를 마시며 즉석여론 조사를 해 봤다. 검찰의 발표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5점 척도 (매우 신뢰한다, 다소 신뢰한다, 그저 그렇다, 다소 불신한다, 매우 불신한다)에 맞춰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결과는 나를 놀라게 했다. 신뢰한다는 쪽은 단 한명도 없고 ‘그저그렇다’에 몇 명 손들고 대다수가 불신한다는 것이 아닌가. 요즘 대학생들은 보수편향이 우세하다. 가령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폐지 반대가 많이 나온다. 대선 후보 가운데서
미디어의 선택과 수용자의 선택
하루 24시간 중 미디어접촉 시간은 얼마나 되나? 수면시간을 제외한 16시간 정도가 잠재적으로 가능한 시간이지만, 아마도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느낌을 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6년 미디어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TV시청시간은 1일평균 2시간 12분이고, 라디오청취시간은 49분이고, 신문 열독시간은 평일 22분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은 1일 평균 1시간 44분이라고 한다. 여기에 평균적인 유선전화나 휴대전화의 전화이용시간을 포함해도 대략 1일 5시간 전후 수준이 현재 우
기자의 양심
벨기에 태생의 저널리스트 알라인(Alain Hertoghe)은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한 프랑스 신문사에서 해고됐다. 그는 당시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양심을 지지해주는 것이야말로 신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의 양심이 언론사 내부에서 어떤 것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양심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을 뜻한다. 그런데 인간은 인식과 행동을 통해 세계와 결부되며 스스
김경준·이명박·이회창 보도와 옴부즈만
김경준이 귀국했다. 이미 그를 ‘대선뇌관’으로 규정지은 지 오래인 우리 언론은, 그의 미소 띈 얼굴을 1면에 커다랗게 내고 관련 기사를 몇 면에 걸쳐 보도하는 등 그야말로 난리 와중이다. 5년을 주기로 등장하는 이런 인물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우리 같은 일반 국민들은 정말 헷갈린다. 검찰이 무사공정, 신속하게 수사한다고?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이 나라에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씨는 김경준의 귀국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회창 씨는 두 번씩이나…
정신 나간 방송위원회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대단한 모욕에 해당하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고 또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무시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고 언어의 혼탁과 우리 정치문화의 수준을 가늠해 보곤 했다. 그럼에도 이 경우에는 정말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방송위원회가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이 동시에 보는 지상파 방송에 중간광고를 허용하다니...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방송위원회의 ‘정신’에 어긋나 있다. 저간의 사정은…
미디어의 자기 대변?
미디어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가 자기를 대변하기 위하여 나서는 양상이 최근에는 두드러진다. 그것을 일부에서는 상업적 기반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진 때면, 비난과 변명만 있었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은 없지 않았나 싶다. 당장 여러 신문에서 오르내리는 방송의 중간광고허용 건이나 KBS의 수신료인상안에 관한 건 등은 미디어들이 자기의 입으로 직접적으로 이해문제를 다룬 사안들이다. 중간광고는 방송부문의 정책과 규제를 담당한 방송위원회
대선과 포털
포털사이트가 올해 대통령 선거의 이슈 메이커로 부상하고 있다. 요지부동의 포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정치권의 셈법이 작용하고 있어서이다. 인터넷 트래픽 조사기관인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6월 기준 8대 포털뉴스의 시장 점유율은 91%를 넘었다. 이중 국내 포털 양강인 네이버뉴스와 미디어다음의 시장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이런 포털이 미디어 전쟁으로 표현되는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그런데 현재 포털은 뉴스를 제공해온 언론사와 오랜 갈등을 겪고 있다. 갈등의 본질에는 포털이 TV 뉴스 시청
신문학자가 줄어드는 이유
요즘 우리 학계에 신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면, 우선 신문이 ‘지는’ 분야, 오래된 미디어라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자 역시 ‘뜨는’ 분야, 새로운 미디어에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고, 그런 의미에서 신문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또 하나는 연구용역을 주는 곳이 별로 없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연구용역을 두고 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연구용역이란
미디어는 메시지다
문명사학자 맥루헌이 거의 반세기전에 천명한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는 명제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사는 오늘날에도 무한한 지혜의 단초를 제공한다. 미디어가 바로 메시지라는 명제는 동일한 내용의 정보를 접하더라도, 그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메시지의 실체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똑같은 문장으로 구성된 기사를 종이신문으로 읽는 것과 포털로 읽는 것은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뭐가 다른가라고 갸우뚱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명제를 제
디지털 융합시대 방송의 의제설정 가능성은?
의제설정 기능은 매스 미디어의 대표적인 기능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기존의 소수의 정보공급자와 대다수의 정보수요자의 구도가 아닌 다수의 정보공급자와 다수의 정보 수요자 내지 모두가 잠재적인 정보 공급자이자 수요자인 상황에서 의제설정 기능이 과연 가능하며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디지털 융합시대에서 의제설정 기능은 그 주도권이 인터넷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먼저 이 같은 의문에 답하자면, 여전히 매스미디어의 의제설정
북한 뉴스도 변화해야 산다
한국 언론은 지난 1개월간 역사적인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대통령 선거와 신정아 사건에 몰입했다. 권력의 향배와 비리의혹 사건도 언론이 다뤄야 할 소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정치에 개입하고 선정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는 비판으로 언론의 신뢰도만 금이 가고 있다. 더구나 남북관계를 다루는 관련 뉴스도 양과 질에서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이런 가운데 남북관계의 새 틀을 짜는 남북정상회담은 21세기 한반도를 대변하는 표제어로 부상한지 오래다. 2000년 첫 정상회담 이후 남북교역 규모는 14억 달러, 인적…
우리에게 대중지를 허하라
우리나라 신문의 이상한 점은 모두가 권위지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대중지라는 타이틀을 기꺼워하지는 않더라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도대체가 모두가 정론지(正論紙)요 ‘최고의 신문’이다. 영국의 경우, 다양한 권위지와 중급지, 대중지들이 매일매일 천만이 넘는 독자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영국의 중급지와 대중지는 자기네 신문이 그렇게 분류되는 것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신문 시장의 세분화는 다양한 독자들을 신문이라는 매체로 끌어들이는 효과적 유인으로 기능한다. 물론 우리에겐 스포츠신문이 있었다. 그러
“무엇이 됐다”는 뉴스의 시대착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1960~70년대 공항출입 기자를 경험했던 한 선배가 생전에 식사자리에서 구수하게 들려주던 공항 특종 무용담이 생각난다. 당시 공항 출입 기자들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외모의 외국인의 입국을 먼저 보도하기 위해 특종 아닌 특종 경쟁을 했다는 것이다. 무려 2미터가 넘는 벽안(碧眼)의 서양신사 모씨가 오늘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는 식의 기사들이 당시 공항출입 기자들의 단골 특종기사가 됐다는 얘기. 요즘의 공항출입 기자의 특종은 어떤 것일까. 오랜 세월에 걸쳐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또는 출국하는 사람들
인터넷시대의 방송, 존재의 가벼움
방송은 라디오시대 때나 TV시대 때나 매스미디어로서의 대중조작의 위험성으로 인해 항상 우려와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소수의 정보공급자에 의해 대다수 대중이 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구조와 행태는 소위 게이터키퍼인 방송에 의해 여론이나 대중문화가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만큼 까다로운 규제나 가치척도가 방송부문에 적용되어 왔다. 2007년 상황은 어떠한가? 이번에 아프칸 인질사태와 학력파동을 다루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전자의 경우, 초기의 정부의 어설픈 대응만큼이나 방송의 대응도 어
“우리 도와준 언론이 어디 있어?”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후 이명박 대선후보의 최측근인 이재오 최고위원은 2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를 도와준 언론이 어디 있습니까. 유독 특정언론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구요”라고 했다. 또 한 패널이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줄서기 비슷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몇몇 언론은 줄서기가 아니라 줄서놓은 걸 깨버렸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한 미디어 비평매체는 “일부 언론들이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경선 후보를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