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학자가 줄어드는 이유



   
  ▲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요즘 우리 학계에 신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면, 우선 신문이 ‘지는’ 분야, 오래된 미디어라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자 역시 ‘뜨는’ 분야, 새로운 미디어에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고, 그런 의미에서 신문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연구용역을 주는 곳이 별로 없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연구용역을 두고 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연구용역이란 학자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연구하도록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수없이 쏟아지는 연구용역 공모 중에 신문 관련 내용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다. 이렇게 신문이 푸대접받고 있는 현실은 요즘 대학들이 ‘업적’ 중심인 것과 연결되면 좀더 심각해진다. 언론학계에서 내는 수많은 저널 중에 신문 관련 주제를 실어주는 저널은 손꼽을 만한 수에 불과하다. 방송이나 인터넷, 광고나 홍보 관련 연구와 비교해 보면 신문 연구자로서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신문관련 연구 용역 ‘가뭄에 콩 나는’ 수준


그런데, 막상 연구를 하려해도 기자나 신문사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난항을 겪게 된다. 아는 사람이 없이는, 소위 ‘끈’이 없으면 기자나 신문사 연구는 언감생심이다. 어쩌면 이것이 신문 연구를 가로막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그래서 기자 출신 학자들이 나날이 많아지는지도 모르겠다. 신문사에 선후배를 두지 못한 입장에서 신문사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할 때, 그들은 분명 특권적 위치에 있는 셈이다. 우스운 것은 기자들 스스로도 사석에서 인정한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 통하지 않고 신문사 연구는 안 됩니다... 학연과 지연, 혈연을 총동원해서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피곤할 일인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을 터, 그래서 정말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지레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한 기자들의 무조건적인 배척과 비협조, 무성의는 연구자로 하여금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오래 전 석사 논문을 준비할 때부터 나는 이 사실을 지속적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최근 전국일간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회신용 봉투를 동봉하고 특정 담당자에게 전해달라고 명기했던 우편설문의 회신률은 5%. 그나마 응답 내용들이 너무나 부실해서 연구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설문지는 단 한 부에 불과했다.

선후배 없이 연구 힘들어,
“아는 사람 통하지 않고 신문사 연구는 안 됩니다”


외국의 경우, 우편으로 문서를 보내면 어떤 형태로든 답이 온다. 심지어 답을 해줄 수 없는 경우라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전화조사 단계. 간단한 사실 확인조차도 기자들은 ‘너무 바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런 것을 왜 알려고 하느냐며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외근이라서, 두 번 세 번 전화해도 자리에 없어서 전화번호를 남기는 경우 회신 전화가 올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인터뷰 단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자 하면 대개가 절대 사양이다. 간혹 만나주는 케이스는 잘 하고 있는 곳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무엇보다 우리나라 신문사 전반의 시스템 부재를 탓할 수 있다. 또 심한 경쟁 상황에서 드러내기 신경 쓰이는 부끄럽거나 비밀스러운 것이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학자들이 하는 연구가 대개 ‘현장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서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부끄럽고 비밀스러워 비협조적?
신문사 전반의 시스템 부족


기자들은 세미나에 오면 학자들이 현장을 잘 모른다는 비판을 하지만, 정작 현장을 잘 알도록 연구 과정에서 긴밀히 협조해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만 바쁘고 자신의 일만 중요하다는 기자들의 착각, 자신과 다른 부류의 사람과는 소통하지 않으려는 기자들의 폐쇄적 집단주의가 저널리즘과 신문 산업의 발전을 위해 무슨 득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학자들의 연구가 탁상공론 수준에 불과하게 보이더라도 없는 것보다 나으며, 기자들만 현장에서 노력한다고 저널리즘과 신문 산업의 발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좀 알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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