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심의위, KBS 문창극 보도 '중징계' 예고

'관계자 징계' 결정…최종 징계 수위 전체회의서 확정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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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KBS의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에 대해 중징계를 예고했다. 방통심의위 산하 방송심의소위원회는 27일 회의를 열어 KBS측으로부터 의견진술을 들은 뒤 여야 3대2 의견으로 ‘관계자 징계’를 결정했다. 징계 수위는 추후 전체회의에서 확정된다. 앞서 방통심의위는 KBS와 유사한 문 전 후보자 강연 보도 19건에 대해 ‘문제없음’, ‘권고’ 등을 의결한 바 있어 KBS에 대한 ‘표적심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방통심의위 여야 위원들과 KBS측은 강연의 전체 취지와 해석, 왜곡 여부 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 의견진술자로 참석한 용태영 KBS 보도본부 주간과 해당 리포트를 맡았던 김귀수 기자는 총리 후보자의 역사인식과 세계관은 검증 대상이며, KBS 보도는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중 역사관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발언을 편집해서 보여준 것으로 왜곡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도 “최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역사관을 검증하기 위한 언론의 정상적인 활동”이라며 문제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은 “후보자 강연의 취지와 발언의 진위는 무시한 채 일부 내용을 왜곡 보도했다”며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으로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를 밀어붙였다. ‘관계자 징계’는 주의(1점), 경고(2점) 다음 가는 법정제재로 재허가 심사 때 감점 4점을 받는다.

여당 위원 “강연의 핵심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왜 이상한 사람 만드나”

이날 KBS측은 모두 발언을 통해 “해당 보도가 저널리즘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고, 문 후보자의 반론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또한 “일본 식민지배와 광복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후보자 발언은 한국인의 기본적인 역사 인식과 괴리가 있다는 게 취재팀의 판단이었으며, 그것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발언을 편집한 것은 왜곡이나 편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당 추천의 고대석 위원은 문 씨가 친일파가 아닌데 친일파로 만들었다며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보도라고 주장했다. 고 위원은 “강연 맥락이 중요한데, 일부만 뽑아내서 결과적으로 친일파가 됐다”며 “KBS 보도를 본 사람은 문 씨를 친일파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의 편집이나 기사는 본 적이 없다”고 혹평하며 “나 같으면 이렇게 안 쓴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 추천의 공안검사 출신 함귀용 위원은 한 술 더 떠 문 씨의 입장을 적극 변호하고 나섰다. 함 위원은 “저는 기독교인이라 100% 공감한다”면서 “후보자가 강연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무시하고 일부 발언만 보도함으로써 그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됐다. 어느 사람이든 1시간짜리 강연 중 이렇게 보도하면 이상한 사람 만드는 건 순식간”이라고 힐난했다.

강연 전체 동영상을 여러 번 봤다는 함 위원은 “(후보자가) 강연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하며 “강연 말미에서 언급한 여섯 가지 기도 제목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문 씨의 기도 제목 여섯 가지를 일일이 낭독한 뒤 KBS 기자를 향해 “여기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읽지 못했냐”고 따지듯 묻기도 했다. 강연의 전체 취지를 잘 살려서 요약해야 하는데 KBS가 “후보자의 이미지를 가장 나쁘게 할 만한 말만 넣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용태영 주간은 “강연의 취지는 보도의 핵심이 아니다”라며 “발언을 왜곡되지 않게 하면서 역사관을 핵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워딩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일제 침략마저 하나님 뜻으로 치환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도 동의하기 힘든 역사관이다. 공직 후보자인 만큼 그 역사관을 검증하려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함 위원은 끝까지 신앙인의 관점에서 “교회에서 이뤄진 신앙 간증”이란 점을 강조하며 “우리 민족의 구원의 역사에 대해 강연을 요청받으면 나도 비슷한 맥락에서 강연할 것”이라고 문 씨를 변호했다.

억지성 주장도 쏟아졌다. 함 위원은 “예수가 음탕한 여자에 대해 ‘죄 있는 자 먼저 돌로 쳐라’라고 한 것을 두고 앞에 말을 자르고 ‘돌로 쳐라’만 보도하면 전체 취지와 다르지 않겠냐”고 KBS를 질타했다.

김성묵 부위원장도 단재 신채호 선생이 대한매일신보 주간 시절 쓴 논설 가운데 “한국인 중 놀고먹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을 인용하며 “신채호 선생도 KBS가 보도하면 친일파가 될 수도 있다는 거냐”고 말하기도 했다.

김 부위원장은 KBS 보도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 제공이란 측면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만든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라며 “부분적 진실이나 의도적 왜곡도 중요한 오보이므로 ‘관계자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KBS 보도 이후 SNS 상에서 후보자에 대한 비난여론이 강하게 일었고, 서경석 목사 등  보수인사 482명이 KBS를 규탄하는 성명을 낸 것을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함 위원도 “한 개인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보도에 대해 심의규정에 따라 공정성과 객관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내가 본 강연 내용 전체와 방송 내용이 너무나 괴리됐다”며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으로 ‘관계자 징계’를 주장했다.

“공직 후보자 검증은 정상적 언론활동…취재 자유 억압 우려”

반면 야당 추천인 장낙인 위원은 “최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역사관을 검증하기 위한 언론의 정상적인 활동에 대해 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과연 정당한가. 자칫 언론의 검증과 관련해 취재보도의 자유를 억압할 우려가 있다”면서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박신서 위원도 “언론 본연의 ‘워치독’ 기능에 대해 심의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 상당히 모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공인의 역사인식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전체 맥락이 아닌 대표적 발언을 통해 총리 후보자의 시대정신을 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후보자 스스로가 반론권을 포기하거나 보류했으므로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심의의 형평성 문제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용태영 주간은 올 초 TV조선의 박창신 신부 시국미사 발언에 대한 2기 방통심의위의 심의 결과를 거론하며 동일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TV조선은 당시 박창신 신부가 시국미사 발언을 보도하며 박 신부의 반론을 듣지 않고, 그가 종북주의와 연평도 북한 포격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고 단정해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방심위는 공정성과 객관성은 문제 삼지 않고 동영상을 무단 도용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를 내리는데 그쳤다.

용 주간은 “당시 심의 결과는 기자의 팩트 선택에 대해 언론인으로서 균형감각에서 나오는 판단을 존중해준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KBS는 팩트를 왜곡하지 않았고 영상 출처도 밝혔다. 불과 몇 달 전의 심의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야당 추천 장낙인 위원도 KBS를 제외한 문창극 보도 심의와 비교하며 형평성 문제를 거론했다. 방심위는 지난 6일 KBS 후속으로 문 후보자 강연 내용을 보도한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 보도 19건에 대해 ‘문제없음’, 또는 ‘권고’ 등의 행정지도를 내렸다. 제일 처음 문제를 제기한 KBS 보도에 대해서만 ‘표적심의’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장낙인 위원은 “당시 19건의 보도 역시 70분짜리 강연 중 핵심 내용에 대해 비슷하게 판단했다. KBS가 최초 보도이긴 했지만 마찬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총리 후보자의 역사 인식을 살펴보겠다고 한 것이 공영방송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면 (KBS 보도 역시)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그것과는 다르다”며 일축했다.

“불편부당성 아닌 다양성이 공정성의 핵심 가치”

이날 의견진술 과정에서 용태영 주간은 “공정성은 다양한 잣대가 있을 수 있다”며 신중한 심의를 주문했다. 그는 “공정성과 불편부당성이라는 과거 잣대만 들이대서는 현대 언론이 제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없다”며 “과거엔 시소의 균형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수레바퀴의 수많은 바퀴살과 같은 다양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편부당성 때문에 언론의 기능이 위축돼선 안 된다”며 “언론이 논쟁거리를 적극 제기하고, 다른 언론을 통해 다시 다양하게 검증되면서 최종 결론에 이르는 것이 민주사회에서 구현할 언론의 다양성 기능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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