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안전지대' 없어진 취재활동

국정원 패킷감청, 기자들도 불안감 높아져
지메일 등 인터넷 활동 실시간 감시 가능
휴대전화 도·감청 우려에 대포폰 사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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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의 패킷감청은 인권침해 논란도 불러왔다. 사진은 지난 2011년 3월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열린 공안기구네트워크의 국가정보원 패킷감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 기자회견 모습. (뉴시스)  
 
국가정보원이 내란 예비 음모 혐의 등으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의원이 주로 사용한 구글의 지메일(G-mail) 계정을 광범위하게 수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통신 감청에 대한 기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2011년 시민단체들의 패킷감청에 대한 헌법소원 진행 과정에서 국정원이 지메일 감청을 시인한 바 있지만, 일반 메일에 비해 비교적 보안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지메일이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 재확인된 것이다.

국정원은 이른바 ‘RO(Revolution Organization)’ 조직원들이 공안당국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서버를 둔 구글의 지메일 계정을 이용한 것을 포착하고 이 내용을 수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구속된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해외 지메일 계정 30∼40개와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동안 지메일은 계정 가입 시 개인 인적사항을 입력할 필요가 없고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수사당국의 압수수색 및 추적이 어렵다는 이유로 기자들 역시 이를 이용해왔다. 해킹에 노출되기 쉬운 회사 메일이나 일반 웹메일보다는 지메일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구글사의 지메일 감청을 위해서는 미국 구글사에 협조를 요청해야 하지만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국정원이 직접 지메일의 암호화된 데이터를 풀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통신에 정통한 한 기자는 “https 프로토콜로 암호화돼 송수신됨으로써 외부 공격으로부터 보호되는 것이 지메일의 장점이었지만 만약 패킷감청으로 지메일을 뚫은 것이라면 앞으로 지메일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패킷감청은 이메일, 웹서핑, 게시물 읽기 및 쓰기 등 인터넷상 모든 활동을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는 감청 방식이다.

국정원은 이번 이 의원과 당직자들을 수사하면서 2011년부터 3년가량 감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집행된 통신제한조치 범위나 기간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상반기 152개 통신사업체에 들어온 정보·수사기관의 감청 협조 요청은 3851건(전화번호 수 기준)이며, 이 가운데 국정원 요청 건수는 3714건에 달할 정도로 많다. 이 통계엔 국정원이 직접 수행한 감청은 포함되지 않는다. 국정원은 지난 1998년 패킷 감청 장비를 처음 도입한 뒤 2009년과 2010년에 23대를 구입해 총31대(2010년 기준)에서 점차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국정원은 지난 2010년 인터넷 전용회선 실시간 감청(패킷감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 과정에서 “(수사 대상자들이) 우리나라의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계 이메일(지메일, 핫메일)이나 비밀 게시판 등을 사용하는 등 사이버 망명을 조직적으로 시도한다”며 “메신저나 블로그·미니홈피 등을 이용한 전기통신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포워딩 방식에 의한 감청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도 인터넷회선 감청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패킷감청은 또 컴퓨터를 오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 개인이 접속하는 모든 웹페이지 접속 목록과 이동경로 및 로그인 정보, 해당 웹페이지에 접속한 시간과 기간, 컴퓨터를 켜고 끈 시간 등 정확한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사를 이유로 피의자로 추정되는 취재원과 주고받은 내용들이 광범위하게 드러날 경우 기자들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자들이 취재나 중요정보 교류 때 회사 이메일이나 일반 웹 메일 사용을 꺼리고 지메일을 찾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경찰이 2009년 3월 YTN노조 소속 기자 20명의 9개월 치 회사 이메일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4개월이 지나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경찰은 노조원들의 업무방해 혐의 수사를 위해 법원의 영장을 받아 이뤄진 정상적 절차였다고 해명했지만 이메일에는 취재정보와 개인적인 내용까지 담겨 있어 ‘인권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검찰도 같은 해 광우병의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를 수사하면서 주요 작가의 7년치 이메일을 들여다보고 일부를 외부에 공개하기도 했다. 특히 친구 등 사적으로 아는 사람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까지 포함돼 충격을 불렀다.

이 사건들은 기자나 언론인들 사이에 비교적 안전하다는 지메일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계기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휴대전화 역시 도·감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상파 방송사 한 기자는 “중요 취재원과 전화할 때는 취재원이 일반 휴대전화로 통화하기를 꺼려한다”며 “할 수 없이 대포폰을 구입해 통화를 하는 게 요즘 추세 중에 하나”라고 밝혔다.

과거 참여정부와 조선일보가 ‘전쟁’을 벌일 당시 조선일보는 한때 기자들에게 통화내용을 암호화해 도청을 방지하는 ‘비화기(秘話機) 휴대전화’를 지급했다. 조선일보 한 기자는 “워낙 죽기 살기로 싸울 때라 어찌될지 몰라 편집국에서 기자들에게 비화기 휴대전화를 지급했다”며 “편집국 내부도 도청이 안 되도록 전파차단 공사를 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2005년 안기부 X파일 취재 당시 이상호 MBC 기자도 이상한 경험을 했다. 보도가 임박한 시점에서 한 지인과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려고 번호를 누르자 국정원 교환 전화로 연결됐다. 알고보니 당시 X파일 사건을 취재하던 다른 일부 기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설명은 되지 않지만 도감청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는 고소·고발도 되지 않아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는데도 벌어진 일이라 더욱 그랬다. 이 기자는 “이후부터 전화 통화는 어디선가 다 듣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며 “중요한 내용은 전화로 하지 않고 직접 만나서 취재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미국판 카카오톡’인 무료통화앱 바이버(viber)를 사용하는 기자들도 늘고 있다. 미국에 서버가 있는 바이버는 국내에서의 감청 차단 효과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스파이앱’ 등이 설치되면 단말기를 통한 감청이 가능해 100%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호 기자는 “국가기관이 스스로 언론인 등에 대한 도·감청 등 감시를 중단하리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권력이 선한 의지를 갖고 개혁하기 전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성윤 · 장우성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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