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포기' 의혹,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다?
언론보도로 살펴본 '노 전 대통령 발언' 논란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2012.10.24 14: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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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3일 오전 수행원들과 함께 백화원 영빈관 정상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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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설’은 정수장학회 언론사 지분 매각 계획과 함께 대선 정국 양대 태풍의 눈이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제기로 시작된 이 주장은 지루한 여야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와 남북정상회담 공식 대화록 열람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정 의원과 새누리당 쪽이 주장의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결과에 책임진다면 대화록을 공개하거나 열람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지금까지의 공방 과정은 치열한 듯 보이나 언론보도를 통해 되짚어보면 양측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팩트는 ‘공식 대화록 존재’ 뿐정문헌 의원의 주장은 8일 국정감사장에서 처음 나왔다. 애초 주장의 요지는 크게 3가지다.
①2007년 10월 3일 오후 3시 백화원 초대소에서 남북정상이 단독회담 개최 ②북한통일전선부가 녹취된 대화록이 비밀합의 사항이라며 우리측 비선라인과 공유 ③이 대화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겠다는 발언 등이 포함 등이다.
종합하면 당시 남북 정상간에 비밀스러운 단독 회담이 열렸으며 북한 쪽이 녹취한 대화록을 남측에 전달했는데 여기에 문제의 발언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①은 남북 정상 사이 비밀·단독회담은 없었으며 그 시각에는 배석자를 두고 공식회담이 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②는 당시 우리 측 배석자(조명균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가 녹음을 했으며,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회담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북한 측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은 없다는 게 김만복 전 원장의 입장이다. ③에 대해서 당시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러자 정문헌 의원은 ①에 대해서는 “회담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②는 “북한측 녹음기록과 우리 측의 메모를 토대로 대화록이 작성됐다” ③은 “노 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결국 애초 주장에서 ①과 ②는 사실이 아니거나 부정확한 것으로 정리됐다.
남겨진 정확한 ‘팩트’는 비밀 대화록은 없으며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공식 대화록이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주장은 ‘익명’·출처도 ‘불명’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팩트’인지는 주장이 엇갈린다.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출처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밖에 이 발언이 사실이라는 추가 증언은 언론보도를 통해서 전해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동아일보)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한 관계자” “여권 고위 관계자”(조선일보) 등 모두 익명이었다.
‘NLL 포기’ 발언이 사실이라는 증언은 아니지만 정황으로 제시된 것은 김장수 새누리당 의원(당시 국방부 장관)의 조선일보 인터뷰다. 김장수 의원은 이 인터뷰에서 10·4 정상회담 뒤 열린 국방장관 회담에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노무현 대통령도 NLL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는 “김 부장이 그런 말은 했으나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말했다는 것인지 회담 전인 11월1일 민주평통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을 한국 언론에서 봤다는 것인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평통에서 “NLL이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문제”라는 요지로 말한 바 있다.
발언의 존재를 부인하는 증언은 이재정 전 장관, 김만복 전 원장, 백종천 전 실장 등 당시 배석자가 실명으로 내놨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도 대화록을 직접 확인했으며 그런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또 ‘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다른 정황은 회담의 결과 나온 10·4 남북공동선언에 남측이 NLL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NLL 포기를 공언했다면 실행이 시도됐어야 하는데 이후 과정에서도 결과물이 없다는 것은 발언이 사실이 아니거나 최소한 진의가 아니었다는 해석이다.
결국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은 일부 팩트가 흔들렸거나 근거가 불명확하고, 하지 않았다는 반론은 비교적 근거가 명시적이고 투명하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대화록 열람” VS “이중잣대”이쯤되자 일부 언론들은 ‘여야 합의에 따른 공식 대화록 열람’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18일자 사설에서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회담록을 보고 확인하면 금방 끝날 일”이라며 “국회 의결 또는 협의를 통해 기록원 또는 국정원에 회담록이 있는지 여부를 빨리 확인하고 그 내용도 검토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도 16일자 사설에서 “문건을 국정원이 갖고 있다면 법률에 따라 국회 정보위원회가 국정원에 요구해 여야 대표 의원이 함께 열람하는 방법이 있다”며 “NLL 포기 발언 논란을 더 이상 끌고 가면 야당은 뭔가 진상을 감추려는 듯이 비치고 여당은 이걸 선거에 이용하려는 것으로 의심받을 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상회담에서 오간 대화의 기록을 공개할 경우 “어느 나라가 대한민국과 외교 협상을 하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공개된다면 이후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가 집권 뒤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역대 정상회담 기록도 공개?지금까지 논란이 있었던 정상회담의 내용을 모두 공개할 수 있느냐는 반문도 나온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대한 논리대로라면 2010년 한·일 정상회담 당시 논란이 됐던 독도문제 발언이나 2008년 한·미 정상회담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약속설 등도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관련 문서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08년 초 이명박 정부 인수위 시절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의 대화록을 유출했을 때 집권 여당은 물론 언론들도 “국기(國基)를 뒤흔든 충격적 사건”이라고 비판했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방북 보고서를 유출한 김 원장을 엄정하게 사법처리하고 국정원 대수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게 당시 동아일보 사설의 한 구절이다.
장용훈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는 “일부 언론들이 대화록을 공개하라는 것은 외교의 기본을 외면하는 일이며 이중잣대”라며 “근거가 있든 없든 누가 의혹을 제기하기만 해도 기록을 내놓아야 한다면 역대 대통령 정상회담이나 외교 협상의 기록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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