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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수 YTN 영상취재2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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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다’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바닥에 대고 눌러서 자국을 내다’라는 해설이 나온다. ‘어떤 대상을 촬영기로 비추어 그 모양을 옮기다’라는 뜻도 있다. 때문에 찍는다는 표현을 비속어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취재원들은 불쾌하거나 언론에 보도되기를 꺼릴 때 주로 “찍지 마”라는 말을 한다.
카메라 기자인 나는 얼마 전 방송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내뱉은 말을 듣고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찍지 마!”라는 말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말했다. ‘봉은사 좌파 주지’ 발언으로 뉴스의 초점이 된 때였다. 공인인 여당의 원내 대표가 내뱉은 이 짧은 말 한마디는 그가 언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카메라 기자는 화면으로서 사실을 입증하는 저널리스트다. 현장 그대로를 화면에 담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전달자이기도 하다. 누가 찍으라고 해서 찍고, 찍지 말라고 해서 찍지 않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공적인 장소에서의 공인의 행동은 이미 사생활 보호의 영역이 아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해 사진기자들을 향해 “성질이 뻗쳐서 정말. 찍지 마. ××”라고 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이 발언은 많은 패러디를 양산했고 급기야 공식 사과로 이어졌다. 집권 정당을 대표하는 원내대표가 파파라치도 아닌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에게 찍지 말라고 한 말은, 그래서 쉽게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취재원의 설명이나 해명을 듣기를 청하지만 못 듣는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사회 지도층이나 유력 정치인, 재벌가 인사들이 더더욱 그렇다.
이들이 뉴스의 초점이 됐을 때 기자들의 취재가 이어지고 카메라가 집중되는 것은 해명을 필요로 하는 공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취재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꺼려지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말 때문에 뉴스의 초점이 된 공인이 취재를 꺼려하고 회피한다면 더 이상 공인이기를 포기하는 게 아닐까.
국민들은 재벌 총수가 세금을 포탈했다든지, 사회 지도층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든지, 유력 정치인이 이권이나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든지 하는 의혹이 불거진다면 의당 궁금해한다. 이는 명확히 규명되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해명을 요청한 기자에게 ‘찍지 마’라는 말로 응대하는 것은 기자가 아닌 국민에게 던지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길 바란다.
발언이 나온 배경에 특정 언론사와의 감정이 결부되었을 때에도 위험하다. 이번 여당대표의 ‘찍지 마’ 발언을 들은 카메라 기자들은 같은 사 기자들로 공교롭게도 관련 보도를 많이 한 방송사였다. 또한 통상 국회에서의 영상취재는 일정이 많아, 풀 개념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취재하는 기자는 출입 기자 전체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별 언론사나 개별 기자를 대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야기를 하기 싫다면, 혹은 해명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찍고 안 찍고’의 문제는 기자가 판단할 사안이지, 공인인 취재원이 결론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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