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DJ에 화해의 지면

동아-DJ 굴곡진 인연

  • 페이스북
  • 트위치


   
 
  ▲ 김대중 대통령과 김병관 회장의 청와대 초청 만찬을 보도한 동아일보 1998년 3월7일자 1면.  
 
97년 대선 직후까지 우호적…2001년 세무조사 이후 급랭


동아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는 1997년 대선 직후까지는 우호적이었다. 동아는 군사정권 시절 전통적인 ‘야당지’로 분류됐다. 고 인촌 김성수가 한국 야당의 한 뿌리인 한민당에 몸담았다는 인연도 있다. 군부의 검열과 통제가 극심했지만 동아는 그나마 압력에 호락호락하게 굴복하지 않는 ‘근성’을 보였다. 동아 출신의 한 언론인은 “당시 편집국에는 ‘동아는 다른 신문과 다르다’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동아와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었던 DJ의 관계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동아는 숨 막히는 보도 통제 속에서도 DJ와 인연을 쌓아갔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뒤 찾아온 1980년 서울의 봄,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한창 가열될 때 동아는 DJ를 인터뷰했다. DJ는 “학생 시위가 계속되면 군부에 빌미를 줄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군부의 검열에 걸려 기사화되지 못했다. 당시 신문이 DJ를 인터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1978년 말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YS와 재야의 반유신 투쟁을 주도하는 등 정권의 눈엣가시였다.

1987년 신동아 사태도 한 예다. 당시 신동아는 10월호에 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지휘 아래 이뤄졌다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발언을 보도했다. 이에 중정이 인쇄소를 봉쇄하자 출판국 기자 80여 명이 8일간 항의 농성을 벌인 끝에 발행을 관철시켰다. 87년 대선 때는 DJ의 용공 시비를 잠재울 만한 보도도 내보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자 다과회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김대중을 조사해봤더니 공산주의자가 아니더라”고 한 발언을 기사화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으로 DJ가 또다시 용공 시비에 휘말렸던 1989년, 동아는 중립을 지켰다. 검찰과 주장과 DJ의 반박을 균형있게 전달한 것이다. 동아 출신의 한 언론인은 “경쟁지들은 서경원 사건과 DJ를 어떻게든 연결시키려 했다. 동아는 그렇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역대 대선에서도 동아는 DJ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아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4자가 맞붙었던 87년 대선에서도 야권 후보 단일화를 지지하는 논조를 보였으며 97년 대선 DJ와 이회창 후보의 대결에서도 균형을 지켰다. 대선 승리 뒤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중정의 조직적 범행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KT 공작문건을 단독 보도했다.

그해 3월 동아 김병관 회장은 언론사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청와대에 초청을 받았다. 부부동반으로 이뤄진 만찬 겸 인터뷰는 3시간20분 동안 진행됐다. 동아는 이 사실을 알린 당시 기사에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그동안 격무에 시달려온 김 대통령이 모처럼 부담없는 분위기 속에서 만찬을 했으며 이처럼 장시간 대화를 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언론사 중 처음으로 한겨레를 방문해 두고두고 회자된 일을 떠올리면 의미가 각별했다.

DJ는 같은 해 6월 고려대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인촌 기념강좌’를 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 민족이 다 같이 존경하는 김성수 선생의 기념관에서 강의하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며 인촌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DJ는 89년 고려대 학생들이 친일 전력을 문제 삼으며 캠퍼스에 세워진 인촌 동상을 철거하려다 경찰이 출동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사람들이 인촌 선생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동아에 인촌 선생에 대한 기고를 직접 하겠다”고 자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DJ와 동아의 우정은 거기까지였다. 조금씩 긴장관계에 접어들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고 김병관 회장의 부인이 자살한 사건이었다. 동아 출신의 또 다른 언론인은 “동아는 세무조사의 압박 때문에 부인이 자살했다고 확신했다”며 “불행한 일 뒤 DJ정부를 더욱 비판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동아는 서거 정국에서 DJ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DJ와 김병관 회장 모두 고인이 돼서야 ‘화해의 지면’이 펼쳐진 셈이다. 그러나 동아 출신의 한 언론인은 “동아가 다른 경쟁 보수지에 비해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과연 이것이 변화를 의미하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우성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