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80년 역사 신뢰 상처

신동아 편집장, 취재원 맹신 사실 확인 소홀
검증 시스템 미작동…취재윤리도 일부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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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진상보고서' 전문이 실린 신동아 4월호의 표지  
 
1931년 11월1일 창간된 신동아. 이번 미네르바 오보 사건은 78년의 역사를 가진 신동아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는 팩트 확인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면서 17일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날 신동아 4월호에 게재된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 진상조사 보고서의 핵심은 신동아가 미네르바를 사칭한 K씨에게 속았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송 모 편집장이 알고 지내던 취재원을 맹신, 사실 검증과 확인을 소홀히 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오보 사건의 첫 단추는 지난해 11월8일 송 편집장과 10년여 동안 알고 지낸 대북사업가 권 모씨가 편집장에게 미네르바 인터뷰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K씨를 미네르바라고 믿은 권씨는 송 편집장을 직접 만나 인터뷰 할 것을 권했다.


송 편집장은 처음 인터뷰를 추진하려 했으나 K씨가 거부하자 기고문으로 대신키로 하고 11월14일 이메일로 K씨 기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이 기고문은 K씨에게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누리꾼 'M'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은 것이었다.

진상조사 결과, K씨는 다음 아고라에 올라있는 미네르바 박 모씨의 글과 자신의 이전 글을 섞어 기고문을 작성해 누리군 M을 통해 신동아팀에 전했다고 조사위에 밝혔다.

◇중개인 권씨 기고문도 수정=기고문을 정리한 후배 기자가 “원고를 정리한 사람이 여러 명인 것 같다”고 하자 편집장은 몇 가지 사실을 추가한 내용을 첨가해 원고를 정리했고, 그 원고를 권씨에게 보냈다.

권씨는 기고문 가운데 ‘일본이 160조 달러를 IMF에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는 문장 중 160조 달러는 10조엔(약1060억 달러)이라며 정정할 것을 송 편집장에게 전달했고 기고문에 반영됐다. 그 기고문은 2008년 11월18일 발간된 신동아 12월호에 실렸다.


기고문 게재 과정에서 송 편집장은 K씨가 기고 내용을 직접 작성했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기고문을 실은 이후에도 K씨의 신원 확인을 위한 별도의 취재를 하지 않았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신동아가 2월호에 K씨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을 때도 신원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이 2009년 1월8일 미네르바 박씨를 구속한 뒤 송 편집장은 박씨가 가짜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1월14일 K씨와 만났다.

편집장은 K씨와 1차 인터뷰를 한 뒤 출판국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기자들과 함께 다음날 새벽까지 인터뷰를 했다. 신동아팀이 이날 확인한 것은 그의 실명뿐이었다.


인터뷰 이후 일부 주요간부들이 IP, ID 문제 등을 의문점을 제기했으나 최 모 출판편집인과 황 모 출판국장은 인터뷰 게재를 주장했다. 당시는 신동아 미네르바에 대한 진위 논란이 거셌던 상황이었다.

일부 의문점을 정리하는 선에서 인터뷰 기사 게재 결정이 났고, 1월 19일 발매된 신동아는 2월호는 ‘미네르바는 자신을 포함한 금융계 7인 그룹’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신동아는 K와의 인터뷰를 싣기에 앞서 K외에 나머지 6명의 신원을 확인하거나 추적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 미네르바가 구속된 상황에서 또 다시 엄정한 검증 없이 K의 인터뷰를 실은 셈이다. 조사위는 또 최소한 K의 컴퓨터와 그가 언급한 '작업장'의 위치를 확인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단계별 기사 검증(게이트 키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보고체계도 흔들렸다. 신동아팀이 K씨로부터 미네르바를 사칭했다는 자백을 받은 것은 2월13일 새벽 1시경이었지만 발행인에게 보고된 것은 사흘이 지난 16일 오전 10시경이었다.

◇편집장, 사내 정보 외부 유출=기고문 인터뷰 게재와 취재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도 드러났다.

신동아팀은 2월12일 K씨와 만날 때 신동아와 관련이 없는 중개인 권씨를 데리고 나갔고, 송 편집장은 사내 정보를 권씨에게 지속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여러 기자들이 각계 취재원들로부터 들은 미네르바 관련 얘기들을 편집장에게 보고하면, 송 편집장은 이를 권씨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진상조사위는 K씨에 대해 1976년생으로 출생지는 ‘00’이라고 밝혔다. 그는 조사 초기 수도권의 I대 중문과를 졸업했다고 말했으나 K씨가 I대를 입학하거나 졸업한 사실이 없음을 조사위는 확인했다.

K씨는 또 자신이 2000년 H창투를 시작으로 C투자증권의 한 지점에서 영업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중에 K씨는 H창투를 다닌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그가 C투자증권에 다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신동아 미네르바 관련 주요 일지
▲2008년 11월17일 신동아 미네르바 기고문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 온다…’ 담은 12월호 출간
▲2009년 1월8일 서울중앙지검 “30세 박모씨를 7일 긴급체포해 인터넷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해 수사”
▲2009년 1월10일 검찰, 미네르바 박모씨 구속영장 발부, 박씨 “신동아와 접촉한 사실 없다”
▲2009년 1월19일 신동아 “미네르바는 7명으로 구성된 금융계 그룹” K씨 인터뷰 담은 2월호 출간
▲2009년 2월17일 동아일보 1면, 신동아 3월호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 사과, 진상조사 착수”
▲2009년 3월17일 신동아 4월호 진상조사보고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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