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콘텐츠의 진화

최진순 기자의 '온&오프' <17>

어제 일어난 일을 오늘자에 싣는 신문의 미래는 있을까?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경우 자사 웹 사이트에서 다루는 콘텐츠의 80%가 탐사, 평가 등 분석적인 뉴스이다. 이는 신문의 지면과 인터넷 뉴스룸이 심층적인 콘텐츠를 생산, 가공하는 준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처럼 화려한 비디오 콘텐츠는 신문이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콘텐츠 변화상 중 하나이다. 작품성 있는 사진을 육성과 함께 여러장 제공하는 포토슬라이드(Photo Slide)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문 기자들의 블로그 서비스는 저널리즘과 브랜드의 품격을 강조하는 선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신문이 보여주는 콘텐츠의 다양한 흐름들은 시장과 독자들의 태도에 주목한 결과이다. 웹 세대(Web Generation)은 미디어 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동시에 스스로 제작자가 되고 있다. 역동적인 UCC 시장에 근접하려는 신문기업의 노력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부터 수익배분까지 전체적인 업무 변화를 이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현재 신문산업 환경은 뉴스 소비자 또는 이용자 중심의 문화를 맞이하고 있고, 비디오가 주도하는 콘텐츠 유통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특히 (마케팅 측면에서) 콘텐츠의 전문성과 심층성은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의해 신문 콘텐츠의 진화는 자연스럽게 궤도에 오른 상황이다.

우선 ‘나’로 콘텐츠의 주체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기업 및 기관, 부처, 국가를 다루던 데서 이제 친구, 애인, 선후배, 부모 및 가족, 직장 상사, 취미, 동호회 등 ‘나의 뉴스’로 신문이 다루는 콘텐츠의 초점이 바뀌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결혼과 기념일’을 주제로 한 섹션을 UCC화 했다.




   
 
   
 


또 인터넷 등 쌍방향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한 신문 지면의 쇄신이 일어나고 있다. 증시 시황면을 없애고 지역 경제나 무역 정보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흐름은 지난해부터 트렌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또 날씨, 지도, 교통 정보는 실시간 업데이트와 상호 정보소스들이 결합해 입체적인 콘텐츠로 제시되고 있다.

무엇보다 독자들의 층위를 세분화하고 조밀하게 타깃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정된 독자들 또는 특정한 주제나 동기로 묶을 수 있는 그루핑(Grouping)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미 캔사스주의 로렌스 저널-월드(The Lawrence Journal-World)는 40~60대 여성세대를 위한 부머걸(boomergirl) 섹션을 오픈했다.

또 일본 아사히신문은 아스파라(aspara) 프로젝트를 통해 13~18세 여학생이나 60대 이상의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주말에 발송하고 있다. 종전에 단순히 부유층, 청소년, 남성-여성 대상의 광범위한 타깃, 정치-스포츠 등과 같은 큰 주제별 분류에서 더욱 세분화하는 추세다.

최근 신문이 다루고 있는 새로운 콘텐츠는 명백한 흐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3E(Experience, Edu, Emotion)로 정의해볼 수 있다.

첫째, 독자의 경험을 소중히 다루는 것이다. 신문지면은 독자의 경험담-여행기, 취업기, 다이어트 기록 등을 마치 임상실험처럼 다룬다. 이를 비디오 콘텐츠로 제작하기도 하고, 입체적으로 서비스하는 것은 웹의 몫이다. 이럴 경우 독자들은 해당 신문(브랜드)과 더욱 친숙해지고 지면과 웹은 생동감을 더한다.

둘째, 지식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다. 지식정보의 보고로서 신문 콘텐츠의 위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NIE다. 또 행정, 정책으로서가 아니라 유아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에 적합한 생활상의 실용정보 및 평생교육 차원의 정보를 제공한다. 웹은 이러닝과 검색의 편이(DB)로 다가선다.

셋째, 한 건의 기사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신문은 오래도록 활자매체로서 사랑받았는데, 그것은 독자의 정서를 윤택하게 할만한 콘텐츠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쌍방향 영상 매체의 시대인 21세기는 신문기사를 다양한 기법으로 전환시킬 것을 주문한다. 멀티미디어 뉴스 생산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신문의 콘텐츠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가지게 되면서 신문의 역할도 재정의되고 있다. 신문은 독자들의 삶을 조력하는 동반자로서, 가족으로서 더욱 친근하게 설정되고 있다. 예컨대 출산, 육아, 학교교육, 특기교육, 직업(진로와 적성), 여가 및 레저에 이르기까지 라이프사이클 콘텐츠를 내놓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신문들이 독자들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실행방법을 도와주는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 웹 사이트는 더욱 친절하게 관련 서비스를 제시하는 쪽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저축, 재테크 등 실질적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정보 제공은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신문의 콘텐츠가 보다 독자의 시각에서 다뤄지고 있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과거의 신문 콘텐츠 대부분은 국가, 정부, 기업, 거시담론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현대 신문 콘텐츠는 상품, 정책, 이슈 등이 ‘나’를 위해 어떻게 작동하는가로 바뀌고 있다.

얼마전 20년이 넘은 한 전문 일간지의 관계자를 만나서 이 신문이 처한 위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전히 이 신문의 지면과 웹은 기업을 위한 창구로 쓰여지고 있다. 기업이 생산해낸 상품의 선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시각으로, 소비자의 관점에서 출발한 콘텐츠가 지면을 채워야 한다”

이를 위해 오늘날 한국의 신문은 콘텐츠의 전환기에서 뉴스조직과 기자들의 책임과 역량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종전의 뉴스 생산과 유통 패러다임에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기 전까지는 많은 데스크와 기자들은 현재의 출입처와 기사 흐름, 조직관계에 주력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형 신문과 그 콘텐츠가 독자-이용자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시 독자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에너지’의 원천임을 자각하게 된다면, 현재의 조직, 업무, 콘텐츠 패러다임의 전면적 혁신은 피할 수가 없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오늘 신문의 위기는 콘텐츠와 저널리즘의 진화 과정에서 극복돼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 미디어연구소 최진순 기자 /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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