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의 정수는 뭔가" AI가 묻고 있다

[이슈 인사이드 | 노동] 이재 매일노동뉴스 기자

기사를 쓸 때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 오해는 마시라. AI로 기사를 쓴다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기업의 몇 년 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를 생성형 AI에 집어넣고 내용을 파악해 보도 가치를 판단하고, 다 쓴 기사를 생성형 AI에 입력해 오·탈자를 확인하는 수준이다. 간혹 AI가 문장이나 표현을 다르게 쓰는 게 좋겠다고 추천할 때가 있는데, 어김없이 한 마디 남긴다. “주제넘게 나서지 마라”고. 아마도 ‘스카이넷’의 블랙리스트 상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까.

6월1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피지컬 AI 얼라이언스 2기 출범식에서 한국 스타트업 RLWRLD의 로봇 AI ‘RLDX-1’이 제품 포장을 시연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여러 기자와 가벼운 논쟁이 있었다. AI를 활용해 기사를 쓰는 것은 비윤리적이냐는 것이었다. 기사를 쓰는 행위가 기사의 문법이라면 비윤리적이고, 작법이라면 질문이 잘못된 것이겠지만, 답을 내긴 어렵다. 오래 가져갈 질문이다.


기자의 AI 활용을 서두로 꺼낸 것은 그 대화의 말미에 누군가 이렇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기사 쓰기에 AI를 활용하는 건 날 대체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과 다름없다.” 맞다. AI를 활용한다는 것은 이제 그 윤리성을 따지기 이전에 먹고사는 문제가 됐다. 언론인은 항상 기술 발달로 대체되기 쉬운 직종으로 꼽히기도 했다.


언론인뿐이랴. 이미 콜센터는 AI가 점령했다. 단순한 기능 대체를 넘어 직무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 그래서 AI 활용은 이제 윤리적인 문제 이전에 실재적인 문제가 됐다. 질문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직무에 AI를 활용해도 되느냐를 따지기엔 늦었다. 이젠 AI가 인간을 대신해도 되느냐를 물어야 할 때다. 그마저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AI와 관련해 일터의 노동자를 취재하다 보면 묘한 차이가 있다. 사무직일수록 AI를 많이 쓰면서, AI로부터의 대체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상대적으로 생산직일수록 직무에 AI를 활용하는 빈도가 높지 않고, 대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아틀라스의 등장에 환호작약하며 AI가 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라고 호들갑 떨었던 언론은 지금 AI로 기사를 쓰는 것에 대한 윤리적 질문에 직면했고, 정작 AI가 투입돼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던 공장노동자는 여전히 AI가 스스로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전망이 옳을지 모르겠다. 다만 연초 아틀라스의 등장 이후 취했던 언론의 비평이, 그러니까 생산직의 피지컬 AI 대체라며 이에 대한 반대는 ‘러다이트’라고 몰아세웠던 비평이 게을렀다는 결과는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써 재꼈던 언론이 지금 더 AI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또 하나, 어떤 것이 진짜 숙련이냐는 질문도 남는다. 자동차 차체에 몇 개의 볼트가 필요한지 외우는 것과, 어느 정도 강도로 조여야 완성도가 높은지에 대한 판단은 다르다. 전자는 AI가 손쉽게 대체할 수 있지만 후자는 그 비정형 지식, 혹은 지혜를 추출하는 것조차 어렵다. 우리는 그런 것을 ‘암묵지’라고 한다. 어떤 직종이 더 이런 암묵지의 영역이 큰 것인지 따지는 것이 AI 대체 가능성을 판단할 척도다.

이재 매일노동뉴스 기자.

육체노동이 지식노동보다 암묵지가 많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직업의 정수에 대한 질문은 던져야 한다고 본다. 어떤 기자가 훌륭한 기자인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쌓은 전문가 기자가 유능한 기자인가. 분야를 따지지 않고 전혀 다른 취재 상황이라도 맥락과 핵심 의제를 파악해 취재원을 찾고 글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자가 훌륭한 기자인가. AI가 던진 질문은 우리가 하는 ‘일’의 대체될 수 없는 본질이 뭔지 묻고 있다. 그 본질은 AI에 기사 작성까지 맡기는 방식으로는 획득하기 어렵겠다.

이재 매일노동뉴스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