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오스트리아 빈을 출발해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를 향해 달리는 기차에 올랐다. 계절은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가고 있었다. 날씨는 쾌청했고 차장 밖 바람은 시원했다.
비단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나이를 먹었더라도 기차를 타고 낯선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사내에겐 은근한 로망이 있다. 옆좌석에 아름다운 여자가 앉았으면 하는. 그러나, 그런 반가운 사건(?)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일어나는 법.
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 국경 인근에서 승차해 옆자리에 앉은 사내는 190cm가 훌쩍 넘는 근육질의 독일 사내였다. 연인을 만나러 류블랴나로 간다고 했다. 커다란 텀블러에 담긴 단백질 음료를 맥주처럼 벌컥벌컥 마시는 호쾌함이 보기 좋았다.
가벼운 인사를 나눴으니 남자들끼리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니 한국 시골 풍광과 판박이인 슬로베니아의 숲과 강이 탑승객을 반겼다.
짤막한 슬로베니아 여행을 계획한 건 흥미롭게도 브라질 소설가 때문이었다. 파울로 코엘료(79). 21세기 초반, 그가 쓴 소설이 한국에서 뜨거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상 열풍’에 가까운 인기였다.
<연금술사>가 메가히트를 치자,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들이 줄지어 한국어로 번역됐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그중 하나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줄거리를 중언부언하는 건 생략한다. 그런 건 인공지능(AI)에 물어보면 나보다 더 친절하게 알려주니까.
다만, 이것 하나는 말해야겠다. 소설 속 주인공인 스물네 살 처녀 베로니카는 스스로 죽기를 결심하고 유서를 쓴다. 근데, 이런 비극적 설정과는 무관하게 유서의 내용은 재밌다.
‘슬로베니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들이 거의 없다. 이런 국제적 무관심은 온당치 못하다’ 운운….
앞길이 구만리 같은 사람이 죽으려는 이유치고는 싱겁고도 황당하지 않은가?
코엘료는 이 작품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 보편성과 개별성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근데, 이런 설명도 지면 낭비다. 이것 역시 더 궁금한 게 있다면 AI에 물어보면 될 일.
3~4시간쯤 달렸을까. 기차가 류블랴나에 도착했다. 코엘료의 소설 속에서 이 도시는 다소 음침하고 우울하게 묘사된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이 다수 등장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같고.
그런데 웬걸. 류블랴나역(驛) 앞 관광안내소에서 만난 직원들은 더없이 밝고 환한 웃음으로 여행자를 반겼다. 시내 관광 지도를 펼쳐 내가 찾는 숙소의 위치를 상세하게 알려준 것은 물론, 자기들이 커피와 함께 먹던 과자도 한 조각 건넸다.
호두가 섞인 달콤한 간식이었는데, 그게 슬로베니아 전통 디저트인 포티차(potica)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한 나라의 수도답지 않게 조용하고 한가로운 도시 류블랴나. 20분 남짓 호스텔을 찾아가는 길이 즐거운 산책처럼 느껴졌다.
이탈리아의 성당이 웅장함과 미려함으로 관광객을 유혹하고,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과 시청이 거대한 첨탑을 닮은 위용으로 이방인을 주눅 들게 한다면, 슬로베니아의 건물과 조형물은 소박함과 아기자기함으로 여행자를 감동시킨다.
숙소 근처에서는 위압감이라곤 느껴지지 않게 조각된 귀여운(?) 용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광장이라기보단 ‘작은 공터’라고 불러야 할 듯한 곳에선 예쁘게 조각된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에 손을 씻었다. 야트막한 집들에 얹힌 빨간 기와가 일상에 지친 눈을 편안하게 해줬다.
해 질 무렵엔 다시 그 ‘공터’로 나가 동유럽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슬로베니아 사람들의 유쾌한 춤을 구경했다. 낡은 아코디언 소리가 정겨웠다. 노천카페에 앉아 용이 그려진 캔맥주도 마셨다. 키스하는 청춘 남녀들이 여기저기 넘쳐났고, 어디서도 ‘죽으려고 결심한 여자’는 볼 수 없었다.
“다시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디부터 가보고 싶은가?”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슬로베니아”라고 답할 것 같다. 왜냐? 거기라면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도시 서울과 달리 유유자적 느리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듯해서다. 지하철도 없고 네온사인도 없는 류블랴나.
그런데 여기서 의문 하나.
파울로 코엘료는 ‘죽고 싶은 여자 베로니카’가 사는 도시를 왜 하필 슬로베니아로 설정했을까? 거긴 죽음의 그림자보다 삶의 빛이 더 힘을 발휘하는 나라 같았는데….
이걸 AI에 묻고 싶진 않으니, 누군가 답을 안다면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 경북매일을 거치며 ‘쓰는 자’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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