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타르… 영하 25도 거리서 푸른 초원 떠올리는 공간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14)

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몽골인들의 자부심이자 상징 그 자체인 칭기즈칸을 형상화 한 조형물.

시인과 소설가, 문학평론가와 출판·문학담당 기자 20여명이 같은 비행기에 올랐다. 3시간30분쯤을 날아 도착한 곳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Ulaanbaatar).


‘제1회 유라시아 문학 네트워크 건설을 위한 한국·몽골 문학 심포지엄’이란 제법 거창한(?) 명칭의 행사 참여를 위해서였다. 돌아보니 벌써 19년 전이다.


몽골국제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나는 ‘인터넷시대 한국 문학이 처한 현실’이란 제목으로 발제를 했는데, 발제문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내용 역시 기억 속에서 증발했다. 분명 시원찮은 주절거림이었을 테니 서운할 이유는 없고. 어쨌건.


눈으로 직접 보기 전 상상 속 몽골은 시선이 닿는 저 먼 곳까지 끝없이 펼쳐진 연둣빛 융단 색깔의 초원, 그 풀밭 위를 뛰어다니는 수백 마리의 야생마, 푸른 초원 곳곳에 들어선 게르(ger)에서 올려다보는 낭만적 별빛, 평화로운 햇살 아래 양의 털을 깎는 순박한 아이들의 나라였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선 이렇게 야경이 번쩍번쩍 빛을 낸다.

그런데, 웬걸. 몽골의 관문 울란바타르 공항을 나서자 가장 먼저 우리 일행을 반긴 건 무시무시한 1월 추위였다. 당시 기온은 영하 25도. 체감으론 영하 40도 아래로 느껴졌다.


그 정도 기온이라면 날숨 뒤 들숨으로 자잘한 얼음 조각이 딸려 들어오는 듯하고, 20~30분 길을 걸으면 드러난 손등과 돌출한 코가 시리다 못해 아파 온다. 내가 사용하던 싸구려 디지털카메라도 일시적으로 작동을 멈췄다.


평소엔 웃어넘겼던 ‘오줌을 누면 땅에 닿기 전 바로 얼어붙는다’는 농담을 ‘진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며 수긍하게 될 것 같은 두렵고도 맹렬한 한파였다. 한국 어느 도시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맵찬 추위를 녹여준 건 몽골 문인과 학자들이 호의 속에서 베풀어준 따뜻한 환대였다. 이전부터 유목민의 손님 접대는 융숭하고 깍듯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알다시피 몽골은 유목민족이 세워서 키운 나라다.


당시는 드라마 <대장금>의 식지 않는 인기가 몇몇 아시아 국가는 물론, 이란 시청자들까지 뒤흔들었던 시기. 그런 세태를 반영하듯 ‘대장금’이라 이름 붙인 울란바타르의 식당에선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한 뻑적지근한 잔치가 준비되고 있었다.


적지 않은 개수의 요리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 대부분이었으나 우리 일행 모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그 가운데서도 아직 잊히지 않는 건 허르헉(horqhog)과 몽골 보드카.


‘허르헉’은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 양고기구이. 뜨겁게 달군 돌을 도살해 손질한 양의 살과 내장 사이사이에 넣어 ‘드라이한 방식’으로 익힌 이 요리는 지난 세기라면 귀한 초청객 여러 명이 찾아오는 결혼식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곁들여 먹은 마유주(馬乳酒) 또한 기가 막혔다.

허르헉을 만들고 있는 몽골의 요리사. 몽골의 유목민들이 집안에 경사가 나거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내던 전통 요리다.

‘보드카’라면 러시아가 몽골보다 더 유명하다. 앞서 언급한 심포지엄에 동행한 술꾼 선배 하나는 입버릇처럼 “러시아 벨루가보다 근사한 보드카는 지구 위에 없어”라고 말하던 사람.


그럼에도 칭기즈칸의 얼굴이 그려진 몽골 보드카 서너 잔을 맛보고는 태도를 바꿨다. 그건 일제강점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거두(巨頭) 회월 박영희(1901~1950년 실종)가 주도한 ‘1차 카프 방향 전환’ 같은 것이었을까?


몽골 시인 서넛과 한국 시인 네다섯이 둥근 테이블에 모여 앉아 끼니때마다 몽골 보드카 두어 병을 권커니 잣거니 마셨던 2007년 1월.


그날 이후 바람에 차가운 칼날이 달려 돌아가는 겨울이 아닌 뜨듯한 훈풍 부는 여름에 몽골을 다녀온 동료 작가와 기자들의 여행담을 수십 번 들었다. 때마다 ‘좋은 계절’에 몽골을 찾은 그들을 부러워했다는 고백도 숨길 것 없다.

칭기즈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보드카. 매서운 몽골의 한파엔 몸을 덥혀주는 보드카 한 잔이 간절하다.

9월이 막바지로 가고 있다. 몽골 초원엔 9월 말부터 눈이 내린다. 곧 내가 맛본 무시무시한 겨울이 온다는 소리다.


그 전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초정밀 위성항법장치로도 찾을 수 없다는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으러 울란바타르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야 할까? 정말이지 그러고 싶다.


[필자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 경북매일을 거치며 ‘쓰는 자’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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