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기자쌤이다!"… 지역소멸 막으러 온 슈퍼히어로들

[김성후의 The Journalist] (20) 경남신문 '기자쌤이 간다'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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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푸르른 가을 하늘이 눈부신 금반초등학교로 경남신문 로고가 박힌 흰색 SUV 차량이 들어왔다. 매달 한 차례 경남신문 취재진은 창원에서 2시간가량 운전해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함양군 휴천면의 이 학교를 찾고 있다. 전교생 35명의 초등학교에서 취재진은 3월부터 특별한 수업을 하고 있다. 이날은 7번째 방문. 아이들한테 ‘큰기자쌤’이지만 2년차 막내인 진휘준 기자가 차에서 먼저 내렸다. 영상팀 김용락 기자, 이솔희 PD가 트렁크에서 촬영 장비를 꺼내는 동안 운전석에 탄 성승건 사진기자가 시동을 끄고 하차했다. 이하림 PD는 다른 취재가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경남신문 창간 80주년 기획 ‘작은학교 출근 일기-기자쌤이 간다’ 취재팀이 8일 경남 함양군 휴천면 금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포즈를 취했다. /김성후 선임기자

2교시 끝나고 중간놀이 시간에 맞춰 도착한 덕분인지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나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또 보네요.” 환하게 웃는 아이들 덕분에 취재팀 표정도 덩달아 밝아지고 발걸음도 가볍다. 조그마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받은 2층 도서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는데, 몇몇 아이들이 졸졸 따라서 왔다. 이솔희 PD가 DSLR 영상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 촬영 준비를 하자 네댓 명이 주위에 몰려들어 카메라 렌즈에 얼굴을 들이밀며 장난을 친다. 소형 짐벌 카메라를 왼손에 쥔 김용락 기자는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진휘준 기자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4~6학년 8명이 참여한 특별 수업 주제는 허수아비. 추수철을 맞아 벼가 익어가는 논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면 좋겠다고 성승건 기자가 아이디어를 냈다. 허수아비 몸체와 스티로폼, 얼굴을 그릴 고무공은 학교에서 준비했고, 아이들은 집에서 헌 옷가지와 모자 등을 가지고 왔다. “허수아비에 대해 아는 사람?” 수업이 시작됐지만 아이들은 집중하지 못했다. 막대기로 만든 허수아비 몸체를 만지며 떠들어댔다. 웃음을 날리지만 진 기자의 얼굴엔 곤혹스러운 기색이 나타났다. 하지만 언제 긴장했냐는 듯 곧 중심을 잡는다. 지난 몇 달간의 수업 경험은 이런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발현되나 보다. 팀당 3명씩, 3팀으로 조를 나누자 아이들이 우르르 나와 허수아비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느라 왁자지껄했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금반초에서 허수아비를 만들고 있는 아이들을 경남신문 취재팀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

“자, 이거 스티로폼으로 공을 감싸면 하얗게 되잖아. 거기에 눈코입 그려서 얼굴을 만들면 돼.” 큰기자쌤이 설명하자 아이들은 매직펜을 들고 서로 그리겠다고 난리다. “내가 그릴 거야!” “왜 너만 그리는데!” “아니, 나도 그려보고 싶다고.” 큰기자쌤이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중재하지만 소용없다. 급기야 작은 싸움이 나서 울고, 씩씩거리고…. 수업을 참관하던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다른 조에선 얼기설기해도 허수아비 형체가 조금씩 만들어진다. “이거 약간 김밥 같지 않냐.” “테이프 플리즈!” “도라에몽 닮았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담느라 성 기자와 김 기자, 이 PD는 제각각 분주하게 움직였다.


큰기자쌤과 아이들의 대화, 몸짓, 그리고 사이에 오가는 교감을 포착하려 애쓴다. 세 사람 중 성 기자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여러 가지 표정이 있잖아요. 아까도 학생들 싸울 때 다양한 표정이 있었거든요. 그런 걸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상팀은 큰기자쌤이 수업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하는데, 김 기자가 진 기자를 근접해서 촬영하거나 아이들 인터뷰 중심으로 찍는다면 이 PD는 전체적인 모습이 나오도록 찍는다. 김 기자는 “휘준 기자는 기획 기사로만 생각했는데, 제가 영상팀도 같이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며 “카메라가 있으면 학생들이 더 좋아할 거고, 수업 장면을 영상으로 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0년에 입사한 김 기자는 사회부에서 일하다 작년 6월 디지털뉴스부 영상팀으로 발령났다.


‘기자쌤이 간다’는 진휘준 기자가 준비한 기획이다. 아직 수습기자일 때 김용락 기자에게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틀이 잡혔다. “작년 4~5월쯤이었어요. 휘준 기자가 작은학교에 선생님으로 가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좋다고 했죠. 그런데 당장은 힘들고 내년에 신년 기획이나 창간 기획으로 1년 동안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조금씩 준비하더군요. 교육청 출입하는 선배들 조언 듣고 직접 학교를 찾아가고….”(김용락)

금반초 교무실 앞 게시판에 걸린 경남신문 기획 '기자쌤이 간다' 종이신문. /김성후 선임기자

◇‘선생 김봉두’처럼 직접 수업하자
진 기자는 지난해 3월 경남신문에 입사했다. 대학 2학년 때 지역신문 기자를 해야겠다고 맘먹었다고. “고등학생 때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대학 다니며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기자로 연결된 것 같아요.” 왜 지역신문이냐고 묻자 “지역 언론의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막내의 말에 선배들이 농담 삼아 한마디씩 했다. “약간 거짓인 것 같습니다.”(김용락), “요즘 엄청 후회하고 있다는 소리로 들립니다.”(성승건) 말은 그렇게 하지만 패기롭게 기획을 시작한 후배 기자를 응원하는 마음이 가슴 깊게 자리했을 터다.


진 기자는 지역 소멸 관련 기획을 고민하다 학교를 생각해 냈다. 너무 뻔한 얘기 말고, 재미있게 뭘 할까 하다 학교를 떠올렸다고 했다. “소멸 지역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취재하면 참신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학교를 통해 소멸 지역 아이들의 감성과 일상을 조명하면서 마을 이야기도 담고, 작은학교 통폐합 등 현행 담론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 소멸을 마주할 소재로 작은학교를 떠올렸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했다. 그러다 서울의 잘나가는 초등학교 선생이 강원도 산골 학교로 발령받아 생기는 일들을 담은 영화 ‘선생 김봉두’가 생각났고, 직접 수업하면 재밌겠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처음 기획안에 ‘선생 김봉두’ 언급이 있었어요. 그때 ‘선생 진봉두’로 기획 제목을 달고 휘준 기자를 그렇게 불러야 하나 그런 농담도 했어요. 하하하.”(김용락)


작은학교는 지역 소멸의 징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경남에서 ‘입학생 0명’ 초등학교가 18곳에 달했고, 초등학교 10곳 중 4곳이 전교생 60명 이하인 작은학교다. 경남의 작은학교 밀집 지역은 정부가 지정한 경남도내 인구 감소 지역 11곳과 대부분 일치한다. 함양의 경우 작은학교 비율은 69.6%에 달한다. 진 기자는 왜 함양 금반초등학교로 출근하게 됐을까. “함양이 우리나라 정중앙에 가깝게 위치함에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지역이라 지역 소멸을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금반초등학교가 면소재지와 멀찍이 떨어져 있고 주변이 논밭으로 둘러싸여 작은학교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기에 적합하다고 봤다.

금반초 학생들이 손수 만든 허수아비를 논에 세우러 진휘준 기자를 따라 논둑길을 걷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

◇교장실에서 선생님들에게 기획 취지 설명
기획을 구체화한 건 올해 2월 초. 진 기자가 작은학교 기획안을 당시 이현근 사회부장에게 보고했고, 경남도교육청을 출입했던 이 부장은 학교 섭외를 도와주는 등 적극 나섰다. 창간 80주년 기획으로 확정되자 진 기자는 2월 중순 금반초등학교에 기획안을 보냈고, 2월 하순 학교를 직접 찾았다. 교장실에 모인 선생님들에게 월 1회 일일교사로 출근해 아이들의 1년을 조명해 보고 싶다는 기획 취지를 밝혔다. 진 기자는 “3월부터 12월까지 열 달간 매달 한 차례 원하는 수업 시간을 비우고, 아이들의 초상권에 대해 학부모들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며 “백종필 교장선생님이 선뜻 나서주셔서 가능했다. 선생님들도 취재 취지에 호응해 운동회 아이템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경남신문 취재진은 매달 주제를 잡아 수업을 진행한다. 진 기자가 기자쌤으로 변신해 아이들과 소통하고, 다른 취재진은 사진과 영상을 담는다. 수업 주제는 진 기자가 기획한 아이템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던진 아이디어를 논의해서 발전시키거나 학교 선생님들과 상의해서 정한다. 3월19일 첫 수업으로 ‘인터뷰 글쓰기’를 했고,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기’(4월), ‘학교 운동회 겸 휴천면민 체육대회’(5월), ‘학교에서 기르는 산양과 하루’(6월), ‘아이들의 여름나기’(7월), ‘여름방학 돌봄수업’(8월), ‘허수아비 만들어 세우기’(9월) 등으로 이어졌다. 대학 시절 수년간 키즈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서 아이들을 대하는 데 능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교단에 서니 완전히 달랐다. 진 기자는 “3월 첫 만남 땐 긴장한 탓에 어영부영 수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그런 긴장감도 아이들과 봄과 여름을 보내며 시나브로 사라졌다. 아이들은 취재진을 진짜 쌤처럼 따르고, 취재진은 아이들을 삼촌이 조카 대하듯 한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까요. 아이들이 잘 지냈으면, 잘 컸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요. 한 달에 한 번 오지만 두루두루 친하지 못한 얘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다른 아이들하고 잘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하죠.”(이솔희). “아이들 쉬는 시간쯤에 도착하거든요. 체육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큰기자쌤!’ 하고 달려오면 기쁘죠. 기자들은 대개 환영을 못 받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항상 저희를 환영해 주죠.”(김용락)

성승건 사진기자가 허수아비 얼굴에 눈코입을 그리고 있는 학생을 근접 촬영하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

◇왜 사서 고생하냐고요?
경남신문 창간 80년 기획 ‘작은학교 출근일기-기자쌤이 간다’는 지면과 유튜브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수업을 진행하며 보고들은 내용을 토대로 진 기자가 기사를 쓰고, 영상팀은 동영상과 쇼츠로 제작해 경남신문 공식 유튜브에 올린다. 진 기자는 “기사에 메시지를 담을지 아니면 에피소드 위주로 담을지 항상 고민”이라며 “재미있게 읽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12월까지 연재하는 이 기획은 부산일보 ‘산복빨래방’(2022년 5월), 경남신문 ‘심부름센터’(2022년 7월), 전북일보 ‘청년 이장’(2025년 3월)의 맥을 잇고 있다. 이런 지역 밀착 저널리즘은 지역 언론이 자신의 존재 기반인 지역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자성에서 출발했다. 지자체 자료나 행사, 서울 뉴스 위주로 콘텐츠를 채우면서 지역의 가치와 지역민들 삶은 지역 언론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취재팀이 작은학교 기획을 통해 소멸 지역 학교 아이들의 일상과 감성을 기록하는 이유다. “돈이 안 되는 기획에 5명이 덤빈 건 지역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역언론 본연의 가치 때문입니다.”(김용락)


금반초등학교에서 특별한 하루를 빼면 취재팀은 제각각 업무가 있다. 창원 중부경찰서를 출입하는 진 기자는 여느 기자처럼 발제하고, 현장 취재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마감하며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보낸다. ‘기자쌤’ 취재 준비와 기사는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 마감한다. 발표 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눠 줄 선물도 진 기자가 사비를 들여 구입한다. 왜 사서 고생하냐고 하자 “조금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답하며 이렇게 말했다. “창원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됩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함께 뛰어다니는 선배들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아이들과 어울렸던 기억을 꺼내다 보면 힐링 받는 느낌이 들어요.”


“이 허수아비의 이름은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입니다. 얼굴이 특히 귀여워요. 우리집 논에 참새가 가끔 오는데 막아줬으면 좋겠습니다.” 8일 수업은 아이들이 만든 허수아비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학교에서 10여분 거리 논에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PD는 드론을 띄워 아이들이 허수아비를 들고 논둑길을 걷는 장면을 담고, 성 기자는 아이들이 설치한 허수아비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성 기자는 “허수아비가 3개뿐이라 아쉽긴 한데 생각했던 것보다 사진이 잘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금반초 학생들이 이솔희 PD의 카메라 앞에 모였다. /김성후 선임기자

오후 1시쯤 수업이 끝나고 경남신문 취재진은 취재차에 올라타 함양 읍내로 향했다. 약 15분을 달려 도착한 읍내 한 식당의 작은방에 둘러앉아 소고기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그날 취재에 대한 품평과 10월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오갔다.


“다음 달은 뭐 해요?”(김용락)
“독서의 계절을 좀 살릴까요?”(진휘준)
“안돼! 찍을 게 없어요~.”(김용락)
“소풍 한 번 가자.”(성승건)
“소풍 갑니까?”(진휘준)
“가을 소풍으로 지리산 어떠세요?”(김용락)
“밥만 안 먹으면 어디든 올라갈 수 있습니다.”(이솔희)
“지리산은 11월에 가자. 단풍 들 때.”(성승건)
“좋습니다.”(진휘준)
“그림 예쁘겠다.”(김용락)


이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함양터미널에서 내리지 않고 창원까지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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