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직접 보면 ‘막막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아요.”
8월26일(현지 시각) 대규모 홍수가 휩쓸고 간 네팔을 취재한 기자들은 현장을 이렇게 전했다. 마을을 채웠던 수백 채의 건물은 물살에 떠밀려 가거나 흙더미에 파묻혔고, 곳곳에서는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이 애타게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8일 기준, 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1400명에 달하고 5500여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다. 기록적인 홍수 피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한국 기자들도 현지 곳곳에서 상황을 전하고 있다.
기자들은 현장에 접근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도로 곳곳이 유실되고 교량이 끊어진 탓이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가장 가까운 피해 현장이자 취재 거점인 비두르 지역까지 최소 3시간이 걸린다. 홍수 이전에는 1시간3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던 곳이다.
이동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실제 현장에서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은 줄었다. 이도성 JTBC 기자는 육로로 갈 수 있는 가장 큰 피해 지역인 베트라와티를 취재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출발했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가 지나 있었다. 이 기자는 “피해 지역은 통신이 안 된다. 뉴스 시간에 맞춰 생중계를 하기 위해선 다시 이동해야 하니 막상 현장을 오래 취재할 수가 없었다”며 “길이 막혀 있거나 인터넷이 끊기는 곳도 많아서 중계 포인트를 잡는 것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 기사 처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홍수 참사 다음날인 8월27일 비두르를 찾은 정윤주 연합뉴스 기자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기사를 송고할 계획이었는데 인터넷은커녕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 데스크에 상황을 보고하는 것도 불가능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결국 카트만두로 복귀를 결정했지만, 이동 중에도 통신이 잡히지 않았다. 정 기자는 “차창 밖으로 휴대폰을 내밀어도 인터넷이 안 됐다. 빨리 기사를 올려야 하는데 보고조차 못하니 식은땀이 났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카트만두에 가까워지고서야 연결됐고, 정 기자는 이동 중인 차량 안에서 기사를 송고했다.
생중계 연결이 필요한 방송기자에겐 이런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오곤 한다. 김철희 YTN 기자는 “피해 현장에 있다보면 통신 신호가 갑자기 약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면서 “최대한 방송실수가 일어나지 않게끔 노력은 하지만, 중계 도중에도 전파가 약해져 화질 저하가 일어나기도 한다. 촬영된 영상을 한국으로 보낼 때도 통신이 느리면 영상 화질이 나빠진다. 그러면 숙소로 복귀해 다시 영상을 재송출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자들이 찾은 현장 곳곳에는 실종된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이명익 시사IN 기자가 찾은 카트만두 칸티 어린이병원에는 수해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의 사진과 발견 장소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물속에서 발견된 시신이 많아 부패가 진행되면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게시된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이 기자는 “이 모습을 보니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가 희생자를 발견하면 성별과 추정 나이, 인상착의 등을 가족에게 공유했던 것이 생각났다”면서 “수천명이 실종된 상황에서 가족들이 희생자를 얼마나 절실하게 찾고 있는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남병진 한국일보 기자는 대홍수로 인해 상류에서 떠내려온 시신이 다수 수습되는 치트완 지역을 찾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곳에서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시신 사진을 확인하며 가족을 찾고 있었다. 남 기자는 “재난 현장인 만큼 시신을 직접 보는 것까지는 각오한 터라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면서 “시신이라도 찾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사진을 들여다보는 가족들의 모습이 더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남 기자는 “현장에 한국 기자들도 많이 왔지만 외신들도 많았다”면서 “아마 한두 명과 인터뷰를 한 게 아니었을 것 같다.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를 계속해서 설명해 달라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취재 도중 기자들도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정윤주 기자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집을 복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물에 떠밀려온 나무 토막을 치우는 것뿐”이라면서 “현실이 막막하고 험난하니까 인터뷰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같이 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긴급구호대의 수색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기자들 또한 어느새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게 됐다. 한국인 실종자 수색을 위해 현지에 파견된 해외긴급구호대(KDRT)를 취재하고 있는 김철희 기자는 “원래 취재원과 감정을 공유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긴급구호대가 고생하는 모습을 계속 취재하다 보니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됐다”며 “실종자가 한 분이라도 돌아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현장을 지켜봤던 것 같다”고 했다.
참사 직후 네팔로 향했던 기자들은 일주일 넘게 현장을 오간 뒤 하나둘씩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현지 취재를 마친 기자들은 서울에 있던 동료들의 도움 덕에 무사히 취재를 할 수 있었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남병진 기자는 “선배와 동기들이 기사 작성에도 도움을 주고, 취재 스팟을 찾아서 알려주기도 했다”면서 “이런 도움 덕분에 무사히 취재를 끝낼 수 있었다.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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