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영화 취재를 하면서 “포스트 박찬욱과 봉준호가 누구냐?”는 질문을 간혹 받았다. 나는 그때마다 나홍진을 언급했다. 그는 장르영화를 만들면서도 자신만의 인장을 뚜렷하게 새길 줄 아는 작가다. 데뷔작 ‘추격자’(2008) 때부터 발군의 연출력을 선보였다. 이후 ‘황해’(2010)와 ‘곡성’(2016)을 거치면서 탄탄한 팬층도 생겼다. 하지만 이번 ‘HOPE(호프)’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인데, 감독의 명성에 비해 다소 아쉽다는 얘기다. 초반 한 시간가량은 정말 놀라웠다. 문제는 중후반부다. 그때부터 편집의 리듬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급기야 서사의 핍진성마저 흔들린다.
특히 액션 장면에서의 편집이 그렇다. 바로 앞까지 주인공을 쫓던 외계 생명체는 교차편집과 컷(cut) 등에 의해 사라진다. 흐릿한 눈으로 봐도 외계 생명체의 속도는 말보다 빠르지만 끝내 주인공을 집어삼키지 못한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성간 비행을 할 정도로 고지능 생명체이며 신체 능력도 인간보다 출중하다.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번번이 가로막는 것은 주인공의 기지가 아니라 편집이다. 편집이 인물을 살려내는 것이다. 장르적 허용이라고 하기에는 이런 순간이 너무 잦다. 개연성의 문제 역시 아니다. 영화가 스스로 세운 세계관을 편집으로 번번이 흔들기 때문에 문제다.
살육 장면도 마찬가지다. 외계 생명체는 인간에 의해 자식이 살해되자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돌연 숭고한 언어를 꺼내 든다. 자식에 대한 복수라고 하기엔 과잉적인 살인을 저지른 외계 생명체에게 희망을 말할 자격까지 부여하는 것이다. 살육의 스펙터클을 마음껏 향유하고, 뒤에서는 그것과 거리를 두는 윤리적·철학적 태도를 취하는 셈이다. 이는 영화가 줄곧 쌓아 올린 이미지와 결말의 메시지가 충돌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이 같은 결말에 관해 ‘3부작이 될 수도, 아니면 더 확장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해명은 영화 속 돌출된 대사들만큼 뜬금없다.
사실 한 편의 영화를 두고 호불호가 갈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호프를 둘러싼 반응은 유독 거세다. 나는 그 이유가 스크린 안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봉 후 김지운, 봉준호, 이창동, 장재현, 황동혁 등 많은 스타 감독이 GV(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액션의 양과 질 모두에서 경이로운 SF”라며 “기괴한 난장판 속에서 대담하게 질주하는 영화 전체가 거대한 크레센도처럼 여겨지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처럼 이름난 인사들이 잇달아 호프를 호평했다. 물론 그들의 진심 어린 감상평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영화에 만족하지 못한 대중의 눈에는 이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영화 홍보 행사에 초청받은 감독들은 그 자리에서 작품의 결점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영향력이 큰 유명 평론가의 호평 역시 개인의 비평적 판단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풍경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다. 영화계의 주요 인물들이 호프를 향해 일제히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일종의 문화 카르텔처럼 비칠 여지가 있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2007)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좋으니까 응원한다’와 ‘우리 편이니까 돕는다’는 전혀 다른 말이다. 둘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 불신이 생긴다.
제작비에 관한 나홍진 감독의 태도도 아쉽다. 기자들의 제작비 관련 질문에 그는 ‘나는 시나리오를 쓰고 그것을 영상화하는 사람’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질문을 뭉갠 것이다. 감독에게 예술적 성취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일 수는 있다. 그러나 영화는 예술이면서 산업이기도 하다. 감독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수많은 스태프의 노동과 막대한 자본이 결합해야 한다. 특히 제작 규모 자체가 화제가 됐다면 비용 역시 물을 수 있는 사안이다. 이런 와중에 투자사는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가 내용을 수정했고, 배급사인 플러스엠은 해당 자료가 “사전에 공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씁쓸한 촌극이다.
요컨대 사람들이 호프에 화가 난 이유는 영화의 단점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스크린 바깥의 풍경에 있다. 자신에게는 허점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내로라하는 영화인들은 앞다퉈 걸작이라고 말하는 광경이 낯선 것이다. 우리가 놓친 장면들을 정말 그들은 보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잘못 본 것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저들은 정말 나와 같은 것을 본 게 맞나’라는 거리감이다. 권위가 감상 위에 올라서는 순간 생겨나는 반발이자 자신의 감상이 부정당하고 있다는 분노다. 이제 대중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낀 만큼 판단한다. 호프 논쟁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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