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가 최근 태국에서 있었던 라이브 방송 중 살해범 자백 사건에 대해 트라우마 전문가로서 자문을 한 뒤, 그 내용이 국내 기자들에게도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살인범의 자백이 생중계될 때: 디지털 라이브 시대의 트라우마 이해 기반 저널리즘> 제하의 칼럼을 작성해 본보에 보내왔기에 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최근 태국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전직 국회의원이 현직 공무원을 총격 살해한 직후,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범행을 자백한 것이다. 화면 속 기자는 당혹감 속에서도 가해자의 위치와 사용 총기, 범행 동기를 집요하게 캐물으며 “경찰을 기다리라”고 권유했고, 이 전 과정은 수많은 시청자에게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송출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Tjfw6Bju0Xw)
이 장면을 지켜보며 동료 언론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침착하게 자수를 유도한 기자의 순발력에 안도했을까, 아니면 여과 없이 중계되는 참혹한 현실 앞에 깊은 불안과 당혹감을 느꼈을까.
언론인의 심리적 외상과 트라우마 저널리즘을 함께 고민해 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시선에서, 이 사건은 현대 디지털 저널리즘이 마주한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 부족과 위기 대응 프로토콜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뼈아픈 사건이다.
기자의 뇌 안에서 일어난 전쟁: 인지 과부하와 기능적 과각성
생방송 중 살인범의 육성을 마주하는 순간, 인간의 뇌는 극단적인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킨다. 편도체가 격렬히 활성화되며 교감신경계는 최고조의 각성 상태에 돌입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도피’나 ‘공포로 인한 마비’가 나타나겠지만, 기자는 ‘방송을 이어가야 한다’는 직업적 자아로 인해 이 에너지를 ‘기능적 과각성(Functional Hyperarousal)’으로 전환시킨다. 공포와 충격을 일시적으로 억누르고(정서적 격리), 사실을 확인하려는 인지적 모드에 매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착각이자 위험한 도박이다. 당시 기자는 ‘수많은 대중을 상대하는 방송 진행자’와 ‘무장한 살인범을 상대하는 위기 협상가’라는 양립 불가능한 두 역할을 동시에 떠안았다. 언론인은 범죄자와의 협상가가 아니다. 훈련받지 않은 언론인이 살인범과의 실시간 대화에 노출될 때, 신경계는 극심한 과부하를 겪는다.
극도의 각성 상태로 진행한 방송이 끝난 후 아드레날린이 급격히 빠져나가면 불면, 침습적 잔상, 공포 같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 덮쳐온다. 더 나아가 “내가 살인범의 확성기 역할을 한 것은 아닌가”, “피해자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은 아닌가”라는 도덕적 상해(Moral Injury)와 직업적 죄책감이 깊은 내상을 남긴다.
‘취재’가 아닌 ‘개입’의 함정: 우리가 갖추어야 할 프로토콜
세계 최대 규모의 디지털 저널리즘 기구인 전미라디오텔레비전디지털뉴스협회(RTDNA, Radio Television Digital News Association)의 생방송 위기 보도 가이드라인 등 국제적인 재난 보도 윤리는 이러한 돌발 상황에서 명확한 원칙을 제시한다.
1. 즉각적인 ‘오프에어(Off-air)’ 전환: 범죄의 직접적 자백이나 실시간 위험을 인지한 즉시 생방송 송출을 중단하고 화면을 대기 상태로 돌려야 한다. 방송을 지속하는 것은 범죄자에게 일방적인 자기변명과 궤변의 무대를 마련해 주는 일이며,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시청자 대중에게 불필요한 대량 간접 외상을 안긴다.
2. ‘취재 모드’를 멈추고 ‘탈에스컬레이션(De-escalation)’ 집중: “머리를 쐈는가”, “어떤 총을 썼는가”, “돈 문제 때문인가”처럼 수법과 원한 관계를 캐묻는 행위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관음증적 호기심 충족으로 흐르기 쉽다. 기자는 수사관이나 프로파일러가 아니다. 기자의 언어는 오직 가해자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추가 피해 없이 경찰에 안전하게 투항하도록 유도하는 최소한의 개입에 머물러야 한다.
3. 사법당국과의 신속한 연계: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진은 즉시 경찰 핫라인에 상황을 알리고, 통제권을 전문 협상팀과 사법당국에 넘겨야 한다.
디지털·하이브리드 뉴스룸,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유튜브, 틱톡, 각종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이 뉴스의 주요 유통로가 된 오늘날, 취재진은 과거 분쟁 지역 전쟁기자가 겪었던 것과는 결이 다른 일상과 디지털 공간에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제 ‘특종을 놓치지 말라’는 낡은 주문 대신, 언론인의 생명과 정신건강, 그리고 공공의 안전을 지키는 구조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1. 기술적 안전장치: 돌발 상황 발생 시 수 초의 여유를 확보할 수 있는 지연 송출 시스템(Tape-delay)과 즉각적인 송출 차단(Kill-switch) 권한이 현장 PD와 기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2. 트라우마 기반 위기 대응 훈련: 강력 사건 및 돌발 위기 발생 시 취재진이 따라야 할 단계별 행동 요령과 언어적 대응법 교육이 뉴스룸 내에 정례화되어야 한다.
3. 동료 지원(Peer Support)과 디브리핑: 충격적 사건에 노출된 동료를 비난하거나 영웅시하는 대신, 트라우마의 영향을 파악하고 상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전문 상담을 연계할 수 있는 피어서포트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카메라 앞의 기자는 무적의 초인이 아니다. 충격과 공포를 느끼는 한 사람의 인간이다. 실시간 스트리밍의 파도 속에서 언론인을 보호하고 저널리즘의 품격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직관에 의존한 임기응변이 아닌 잘 훈련된 원칙과 연대의 안전망을 뉴스룸 안에 단단히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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