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감정도 무뎌진다고 한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다. 한승주 국민일보 논설위원은 이 통념에 반기를 든 사람이다. 마흔여덟에 방탄소년단(BTS)을 마음에 품었고, 8년 가까이 그 애정을 유지하고 있다. 33년간 문화부와 산업부 등을 거치며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관심을 가져왔는데, 이젠 그가 어떤 존재에 열광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BTS는 저에게 방탄 막 같은 존재였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슬프고 어려운 일들이 겹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BTS를 좋아하게 되면서 모든 걱정과 근심, 슬픔이 튕겨져 나가는 느낌이었어요.”
한 위원이 BTS에 빠진 건 2018년이었다. 표를 구했다는 친구의 연락에 우연찮게 간 시상식장에서 그는 BTS의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무대를 장악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고 아이돌에 대한 편견도 그날 산산이 부서졌다. 그해 12월 대학생 딸과 함께 가게 된 또 다른 시상식장에서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BTS에 강하게 끌리고 있었다.
특히 그에게 다가왔던 건 BTS의 화려한 성공 서사보다 그 뒤에 숨겨진 “꼬질꼬질했던” 시절의 고백이었다. 그 역시 1994년 입사 이후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선배들의 거친 말과 이해하기 어려운 질책 속에 어렵게 기자 생활을 이어갔고, 직함을 단 이후에도 숱한 고비를 겪었다. 그래서 더 BTS의 성장담에 공감이 갔다. 방향을 잃은 채 달리고 있었는데, BTS의 음악이 그에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줬다.
BTS에 ‘입덕(어떤 분야에 푹 빠짐)’하게 된 이후 한 위원은 열정적으로 그들의 공연을 보러 다녔다. 2019년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2021년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왔고 올해 한국에서 있었던 서울 광화문과 경기도 고양, 부산 공연도 모두 챙겨봤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콘서트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관중을 사로잡았던 곳. 그 공연장에서 열리는 BTS 콘서트를 꼭 보고 싶었다. ‘피켓팅(치열한 예매)’을 거쳐 입성한 웸블리, 그날 한 위원은 기자가 아닌 한 명의 팬으로서 노래와 응원 문구를 열심히 따라 외쳤다.
더 감동적인 순간은 따로 있었다. 멤버들이 앵콜을 준비하기 위해 무대 뒤로 들어갔을 때였다. 팬들이 다 같이 ‘에필로그: 영 포에버’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BTS 초창기 곡이기도 하고 청춘의 불안과 희망을 담은, 오래된 팬들에겐 의미가 큰 곡이거든요. 그런데 공연장에 있는 다양한 국적의 팬들이 한국어 가사로 함께 부르는데 정말 감격적이더라고요. 그 순간만큼은 국가를 뛰어넘는, 깊이 연결된 공동체 같았어요. RM이 무대로 돌아와선 ‘이 노래는 반칙이지’ 말하고 멤버들도 울먹이는데, 제가 그 곳에 있었다는 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최근 한 위원은 BTS의 곡에서 제목을 따온 책 <소우주>를 출간했다. 기자이자 BTS의 음악에 위로받은 한 사람으로서 BTS와 팬클럽 ‘아미’가 함께 만들어온 연결의 순간들을 기록한 책이다. 그가 BTS에 푹 빠진 건 멤버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미라는 공동체 덕분이었다. 언어도 국가도 다르지만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그들의 가사와 영상을 번역하고, 생일 카페를 차리며 질서와 연대를 만들어가는 팬들의 모습을 그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했다. 웸블리 공연도 그중 하나였다.
“BTS도 우리가 특별한 건 특별한 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거든요. 상을 받았을 때도 ‘우리 아미가 상 받았어요’ 이렇게 얘기해줘요. 사람들은 BTS를 음악이나 기록, 경제효과로 얘기하지만 사실 그들이 남긴 건 사람과 사람 사이 형성된 연결의 경험인 것 같아요. 제가 BTS를 좋아하며 목격한 건 그래서 스타의 성공이 아니라 연결의 탄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빠진 ‘작가의 말’에 한 위원은 이런 문장을 적었다. “이 책이 BTS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다정한 입문이, 오래 함께한 사람에게는 반가운 기록이 됐으면 합니다.” 그의 소우주는, 여전히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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