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이어 AI에도 주도권 넘길건가"… 해외언론 글로벌 연대

[지속 가능한 AI 저널리즘] (1) AI와 언론사의 연대 'S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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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이 미디어 산업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안 그래도 독자 감소, 주요 수익 급감 등 생존에 위협을 느끼던 언론은 2022년 챗GPT로 대표되는 AI 등장 이후 또 다른 위기를 직면했다. 이제는 ‘AI 시대’라 불리는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서 독자를 붙잡고, 광고·트래픽 위주의 수익 구조를 재정비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AI 기술, 관련 이슈로 이를 따라가기에도 숨 가쁜 상황, 그 사이 언론은 저널리즘, 일자리 문제 등 AI로 인해 뉴스룸에 새롭게 제기된 질문에 대한 답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AI의 등장을 위기로만 볼 수도 없다. AI로 효율적인 취재가 가능해지면서 이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가 나오고 있고, 언론사의 비즈니스 혁신을 이끄는 가능성의 영역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혼돈의 기로에서 세계 언론은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다. 본보 기자 3명이 6~7월 영국, 미국, 독일, 노르웨이 등 각국의 뉴스룸을 찾은 이유다. 세계 언론은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AI가 일으킨 거대한 파고는 세계적인 유력 언론조차 피해갈 수 없었고, 해외의 언론인들은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온 미래를 경험하고 있었다. 언론 현장에서 나온 고민과 해법을 담아 ‘지속 가능한 AI 저널리즘’의 조건과 대안을 탐구한 이야기를 3주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SPUR(Standards for Publisher Usage Rights·언론사 사용 권리 기준)는 BBC·FT·가디언·스카이뉴스·텔레그래프 등 영국 5개 매체가 주축이 되어 2월 창립한 비영리 언론 연합이다. 이후 벨기에 미디어 그룹인 Mediahuis, 프랑스 CMA Media, 미국 AP통신이 창립 회원으로 합류해 현재 8개 언론이 SPUR의 운영 전반을 담당한다. 이달 기준 SPUR에는 13개국 37개 언론 및 관련 단체가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포털 검색과 소셜미디어 중심의 유통 환경에서 언론은 이미 뉴스에 대한 통제권을 상당 부분 잃었습니다. 뉴스 유통과 수익화가 플랫폼에 종속된 상황이 된 것이죠. 그렇기에 인공지능(AI)이 콘텐츠 유통 방식을 다시 바꾸고 있는 지금이 중요합니다. 언론이 협력한다면 우리 콘텐츠가 독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더 강한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버틀 SPUR(Standards for Publisher Usage Rights·언론사 사용 권리 기준) 프로젝트 책임자는 90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내내 ‘연대’와 ‘협력’을 강조했다. AI 기업과의 파트너십에서 언론이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언론 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6월22일 영국 런던에서 만난 데이비드 버틀 프로젝트 책임자는 미디어 콘텐츠 라이선스 전문가로, SPUR의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7년 동안 플랫폼 전략 총괄 이사를 지내며 빅테크 기업들과의 파트너십 및 AI 라이선스 계약을 총괄했다. 이후 2024년 컨설팅사 DJB Strategies를 설립해 글로벌 미디어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플랫폼 전략과 AI 저작권 문제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데이비드 버틀 SPUR 프로젝트 책임자가 6월22일 영국 런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버틀 책임자는 미디어 전략 컨설팅 기업 DJB Strategies를 운영하며 글로벌 미디어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플랫폼 전략과 AI 저작권 문제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김한내 기자

‘AI시대 뉴스 주도권 찾자’ 비영리 연합

그가 이끄는 SPUR는 AI 시대 콘텐츠 공급망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비영리 언론 연합으로, 올해 2월 출범했다. AI 기업이 언론 콘텐츠를 무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정당한 대가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일종의 ‘표준 계약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에 ‘뉴스를 위한 나토(NATO)’라고도 불린다. BBC·FT·가디언·스카이뉴스·텔레그래프 등 영국 주요 언론이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이후 미국 AP통신과 프랑스 CMA미디어 등이 합류하면서 8월 현재 13개국 37개 언론사와 관련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SPUR는 6월12일 첫 결과물로 ‘콘텐츠 사용 측정 표준(Telemetry Standard)’을 공개했다. 이는 AI가 답변을 생성할 때 특정 언론사의 데이터를 얼마나, 어떻게 활용했는지 측정하는 장치다. AI가 언론사 콘텐츠를 활용하는 과정을 검색·참조·인용·표시·참여 등 5단계로 구분했다. 데이터 활용 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사용료를 산정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일종의 공통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버틀 책임자는 SPUR의 측정 표준을 사용하는 언론이 많아질수록 콘텐츠에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준점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 내부 작동 메커니즘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량을 산출하는 방식이어서 AI 기업이 자사의 서버 로그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으면 이 표준을 활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언론의 공동 대응이 중요합니다. 대다수 언론이 로그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AI 기업과는 계약하지 않는다는 ‘공동 전선’을 구축한다면, 빅테크 기업 역시 기존의 폐쇄적인 태도를 고수하기 어려워질 거에요.”

콘텐츠 보상 기준 만들어 오픈소스로 공개

AI 기업 간 경쟁 구도가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 역시 언론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과거 구글이 검색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던 시기와 달리 지금은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주요 AI 서비스가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어 언론의 요구를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는 “SPUR가 원격 측정 표준을 오픈소스로 공개한 것도 더 많은 언론이 동일한 기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특히 AI의 ‘실시간 검색’ 기능에서 언론 콘텐츠의 가치가 가장 커질 것으로 봤다. AI는 학습이 끝난 이후의 최신 정보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최신 뉴스에 대해 답변하려면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을 통해 외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불러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은 언론 기사다.


버틀 책임자는 “언론사가 실시간 검색 크롤링을 차단하면 AI 서비스의 유용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AI 기업으로서는 원격 측정 표준을 받아들일 유인이 생긴다. 이런 점에서 저널리즘 콘텐츠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가장 큰 기회도 바로 RAG 영역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시간 검색 영역에서 이 측정 표준을 도입하는 것이 SPUR의 일차적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미 AI 기업과 개별 파트너십을 맺은 대형 언론사들 역시 이러한 연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SPUR에 참여하고 있다. FT와 가디언은 각각 오픈AI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만 SPUR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이후 합류한 CMA미디어와 AP통신 등 여러 언론사 또한 오픈AI, 퍼플렉시티 등과 개별 계약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SPUR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SPUR가 회원사의 상업 계약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틀 책임자는 “회원사가 AI 기업에게 얼마의 대가를 받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유하지 않는다”면서 “SPUR는 기술적인 표준을 만드는 일에만 전념한다”고 설명했다.

이념·정치성향 떠나 AI 대응 공동전선 구축

SPUR가 정파성과 이념을 넘어선 연대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SPUR는 출범 직후부터 진보 성향의 가디언과 보수 성향의 텔레그래프가 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추구하는 가치도, 주요 독자층도 확연히 다른 두 언론이 ‘AI의 위협’이라는 공통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버틀 책임자는 이에 대해 “SPUR 회의에 참여하고 활동하는 주체는 편집국이 아닌 상업·비즈니스 부서이기 때문에 정치적 견해차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무엇보다 AI가 가져올 미디어 생태계의 위협은 개별 대응이 아닌 협력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는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협력이 가능했다”면서 “진보 매체나 보수 매체, 혹은 공영방송만 따로 모여서는 SPUR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정파성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도 AI에 대한 공동 대응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AI 기업에 맞서려면 결국 언론사의 대응 역시 글로벌한 노력이 되어야 합니다. 국내에서 정치적 성향이 다른 언론사끼리 손을 잡기 어렵다면, 차라리 국경을 넘어 글로벌 미디어 연합체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국제 연합 전선이야말로 AI 기업을 상대로 훨씬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SPUR에 가입하세요. 이곳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뉴스 데이터 가치따라 차등 보상… SPUR ‘측정 표준’ 제시

SPUR의 목표는 언론이 AI 기업과의 협력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표준 계약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그동안은 AI가 기사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가져다 쓰는지 투명하게 검증할 기술적 수단이 없었다. 이 때문에 언론사들은 기사 활용도와 관계없이 AI 기업에 일정 기간 모든 데이터를 넘기고 고정된 액수를 받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해 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PUR는 ‘콘텐트 사용 측정 표준(Telemetry Standard·그래픽)’을 개발했다. 이는 AI가 답변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언론사 데이터를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측정하는 기술이자, 언론계에서 활용 가능한 공통 기준이다. 측정 표준은 AI가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따라 △검색(Retrieval) △참조(Grounded) △인용(Cited) △표시(Displayed) △참여 (Engaged) 등 5단계로 세분화했다.


첫 번째 단계인 ‘검색’은 AI가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자료를 수집한 단순히 수집·저장해 둔 상태를 뜻한다. 2단계인 ‘참조’는 수집된 기사가 AI 답변 작성을 위한 핵심 참고자료로 사용됐으나 명시적 언급은 없는 상태이며, 3단계 ‘인용’은 AI 답변에 콘텐츠의 출처가 표기됐음을 의미한다. 반면 4단계 ‘표시’는 답변에 콘텐츠의 출처가 언급됐으나 사용자가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지 않는 등의 이유로 그 출처를 확인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 5단계 ‘참여’는 사용자가 AI 답변의 출처 링크 등을 클릭해 언론사 홈페이지 등에 접속한 것으로, 언론사 자체 트래픽과 독자 유입으로 이어졌음을 뜻한다.


이러한 추적 체계가 정립되면 언론사는 AI 기업에게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차등적인 비용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데이터베이스 수집에 그친 검색 단계에는 기본 단가를 적용하고, AI가 기사 내용을 요약·인용해 답변을 완성했지만 출처가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은 참조나 표시 단계에는 높은 대가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독자가 언론사 사이트로 이동하지 않고 AI 답변만 확인한 채 떠나는 이른바 ‘제로 클릭(Zero-Click)’ 현상으로 인해 언론사가 입은 트래픽과 광고 수익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측정 표준은 6월12일 초안이 공개됐고, 글로벌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이달 중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오픈소스로 제공돼 SPUR 회원사 여부와 상관없이 전 세계 모든 언론사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런던=김한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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