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임명 의결을 거치지 않고 자동 임명된 것을 두고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오태규 이사가 지난해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자문 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 추천권자인 민주당도, 임명권자인 방미통위도 적극적으로 검증에 나서지 않는 사이 ‘즉시 임명’ 가능한 14일 기한이 지나면서 자동으로 임기를 시작해 버렸기 때문이다. 오 이사는 24일 현재 임기를 시작한 30명의 공영방송 3사 이사 중 임명권자의 직접 임명을 거치지 않은 유일한 이사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자체 공모를 거쳐 선정한 방문진 이사 후보자 명단을 방미통위에 통보한 건 지난 8일. 직후 오 이사 후보가 지난해 5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선대위 산하 글로벌책임강국위원회의 실용외교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방문진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위원회 등 선거관련 조직에서 자문이나 고문 역할을 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방문진 이사가 될 수 없다. 다만 당사자인 오 이사 후보는 부위원장 등 직책을 받고 참여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방미통위는 15일 민주당이 추천한 이사 후보자들을 임명하면서 오 이사 후보는 보류했다. 결격사유 여부에 대해 사실확인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사실상 민주당에 공을 넘긴 셈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1주일이 지나도록 오 이사 후보가 실제 부위원장으로 임명돼 자문 역할 등을 했는지 사실확인 여부와 그에 관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방미통위 역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추천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임명’한다는 규정에 따른 마지막 날인 22일, “명확한 결격사유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자동 임명되는 것으로 하되, 결격사유에 해당함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확인되면 당연퇴직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 이사 후보의 결격사유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은 채 “향후 유사사례 발생 시, 방미통위는 이번 결정을 준용해 처리해 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오 이사는 이날 자정을 기해 방문진 이사에 자동 임명됐다.
검증이 안 돼서? 검증을 못해서? 애매한 방미통위
방미통위는 입장문에서 ‘결격사유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 ‘명확한 결격사유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 오 이사가 부위원장 직함으로 당시 민주당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본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이것만으론 알 수 없다. 현재로선 오 이사에게 결격사유가 없다는 걸 뒷받침하는 건 본인의 주장뿐인데, 결과적으로 당사자의 강한 부인이 사실확인을 무력화한 셈이다.
이날 방미통위 회의에선 “당사자나 추천권자의 소명 부족으로 결격사유 의혹 해소가 안 되는 경우, 결격사유로 판단해서 기간 내에 위원회가 임명 거부 의결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고민수 상임위원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 원칙까지 들며 “검증의 책무를 지고 있는데 저희가 검증을 하지 못했다면, 결격사유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피추천인에게 불이익한 행위를 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방미통위의 검증 책무는 인정하면서도 기한 내 검증에 실패하면 자동 임명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자동 임명, 부실 추천과 검증 회피 합법화 통로로 전락할 수도”
정치적 후견주의를 타파하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실현하겠다며 민주당이 주도한 방문진법 등 방송 관련법 개정. 그런데 그 법이 시행된 결과로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자문 이력이 의심되는 인사가 공영방송 이사가 됐고, 이사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오 이사는 자동 임명된 당일인 23일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임시 의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앞서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와 정부 출범 후 국정기획위원회에서 활동한 인사를 각각 KBS와 EBS 이사에 추천하려다 철회한 일도 있었다.
이를 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21일 낸 성명에서 “지난 윤석열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를 비판했던 명분들은 대체 다 어디로 갔는가. 자기 진영 인사는 설사 흠결이 있더라도 눈감아주는 것이 ‘민주당식 언론개혁’인가”라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24일 성명을 통해 “민주당은 검증되지 않은 후보를 추천하고도 교체와 소명을 외면했고, 방미통위는 결격 여부를 판단해야 할 행정기관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단순한 인사 검증 실패가 아니라 새롭게 출범하는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당성과 개정 방송3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중대한 사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언련은 특히 “이런 선례가 굳어진다면 앞으로 추천 정당과 후보자가 법정 시한 동안 침묵하거나 자료 제출을 미루는 것만으로 결격사유 심사를 무력화할 수 있다”며 “자동 임명 조항이 정치적 독립을 지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부실 추천과 검증 회피를 합법화하는 통로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영방송 3사 이사회는 아직 11명이 공석이다. 국민의힘이 KBS, 방문진, EBS에 각각 2명씩 추천해야 하고, KBS 임직원과 시청자위원회 추천 몫 5명도 남아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특별고문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바 있는 국민의힘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그때 민주당과 방미통위는 어떤 입장을 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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