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도전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A조 조별리그에서 1승 2패 승점 3으로 3위에 그치면서 32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예견된 참사였다. 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의 선임부터가 제대로 된 절차 없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사실 2021년이 한국 축구 인사 시스템 붕괴의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한 그해 1월 이후부터 축구협회는 더욱 비정상적인 행보를 보였다. 축구협회는 1월27일과 7월13일 각각 정관을 개정했다. 여기서부터 커다란 문제가 시작됐다.
축구협회는 정관 제7장 분과위원회 제52조(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개정하면서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기능을 대폭 축소했다. 당시 기자가 단독 취재해 보도한 바로는 기존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남녀 국가대표와 15세(U-15) 이상 연령별 대표팀의 관리를 목적으로 설치한다’는 내용이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남녀 국가대표와 18세(U-18) 이상 연령별 대표팀 운영에 대한 조언 및 자문을 목적으로 설치한다’로 교묘하게 바뀌었다.
결정적으론 ‘관리’에서 ‘조언과 자문’으로 수정된 것이다. 이는 해당 대표팀의 감독 선임과 해임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에서 대표팀 운영에 대한 조언과 자문을 하는 제한적인 권한으로 축소됨을 의미했다. 각급 대표팀 감독이 잘못된 운영과 판단을 하더라도 해임과 같은 직접적인 견제가 이뤄지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인사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2022년 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16강행(1승 1무 2패)을 이끈 파울루 벤투 감독은 그보다 4년 전인 2018년 여름 상대적으로 철저한 인사 시스템을 통해 선임된 지도자다. 그 과정을 주도한 인물이 김판곤 당시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었다. 호남대를 나오고 국가대표 스타 출신도 아니었던 한국 축구의 비주류 인사 김판곤 위원장은 돌이켜보면 인사 시스템 개혁에 가장 적합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김판곤 위원장은 벤투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기준을 갖고 평가했다. 예를 들면 월드컵 본선 경기 전술적 대응 점수, 미디어 대응 능력, 전략적 접근의 성공 여부 등이다. 벤투 감독으로부터 프레젠테이션 발표까지 들은 사실은 잘 알려진 일화다. 경력과 영상 검토, 포트폴리오 점검, 동반 스태프 면면 확인, 면밀한 인터뷰 등 까다로웠던 선임 과정에 대해 김판곤 위원장은 훗날 한 단계 톤을 낮췄다.
하지만 그는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 부임 이후 실천하고자 했던 5가지 목표 중 하나는 감독 선임 프로세스 구축이었다. 공정성, 투명성, 객관성의 원칙 아래 대표팀의 경기 철학에 맞는 감독을 임명하는 게 목표였다”며 한국 축구 인사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는데 앞장섰던 김판곤 위원장은 정몽규 회장의 3연임 성공 후 그해 여름 도쿄올림픽 현장 파견 명단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2022년 1월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뽑힌 A대표팀 지도자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었다. 이미 정관이 바뀌어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유명무실해졌고 김판곤 위원장도 떠난 뒤 뽑힌 인물이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후보군을 추리는 등 표면적으로 절차는 진행됐지만, 조언과 자문 권한만 있던 국가대표전력강화위는 이미 있으나 마나 한 조직에 가까웠다.
클린스만 감독은 정몽규 회장과 직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인물이란 말까지 나돌았고, 선임은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협회 수뇌부의 선택이란 비판도 쏟아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름값으론 역대 최고 수준이었지만, 재택근무 논란을 비롯해 무전술 등 비판에 시달렸다. 애초에 지도자 커리어가 부실했던 데다, 실제 한국 축구를 이끌고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된 후 5개월 만인 2024년 7월 한국 축구는 또다시 무너졌다. 공정한 절차 없이 축구협회 특정 인사의 개입 논란이 불거지며 번갯불에 콩 볶듯 축구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 것이다. 홍명보 감독 얘기다. 선임 과정의 공정성 논란에도 끝까지 버틴 홍명보 감독은 북중미 월드컵에 나서 12년 만에 다시 실패한 국가대표 감독이란 불명예를 썼다. 선수 시절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그는 지도자로선 2차례(2014·2026년) 연속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한 세계 유일의 감독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축구협회의 클린스만 및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 의혹과 관련해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단순한 절차상 하자를 넘어 실제 형사처벌이 가능한 업무방해나 업무상 배임 혐의가 입증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창 공정하고 체계적인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가던 2021년 축구협회의 정관 개정은 한국 축구를 나락으로 만든 시발점이 된 모양새다. 단순히 홍명보 감독의 부족한 역량과 정몽규 회장의 오판을 넘어 큰 틀로 보면 공정한 인사 시스템의 부재가 한국 축구를 지금의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국 축구에도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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