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54) 잠잠한 기다림

백두대간의 시작점이라 불리는 백두산 천지에 다녀왔습니다.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의 날씨는 시시각각 변했습니다. 천지를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전망대를 빼곡히 둘러싼 관광객들 사이를 비집고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눈앞에는 하얀 운무가 짙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온몸을 덮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오늘은 어렵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있는 그대로 천지의 장엄함을 느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마치 하늘이 열리듯 희뿌연 운무 사이로 천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보일 듯 말 듯 모습을 감추던 풍경이 차츰 시야에 들어오더니 마침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맑게 갠 천지도 아름다웠지만,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은 희미한 구름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그 짧은 순간입니다. 변화무쌍한 현실 앞에서 조급함보다 잠잠한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천지가 조용히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금세 모습을 숨기려는 천지를 가만히 바라보며 작은 소원을 빌었습니다. 전망대 한편의 ‘조선’ 비석을 바라보며, 언젠가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에 올라 그 곳에서 펼쳐질 또 다른 모습의 천지를 마주할 날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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