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남성에게 스토킹을 당했다. 성적으로 모욕하는 글을 온라인에 올리고 정자를 기증하겠다며 아이를 낳으라는 영상을 유포했다. 2019년 8월 스토킹이 시작됐고, 2년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유튜브에 신고해서 채널이 삭제되자 돈을 달라고 요구했고, 경찰에 신고했더니 보복하겠다며 협박했다. 수감된 뒤에도 1년5개월 동안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괴롭혔다.
끝없는 집착에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살려면 소송을 걸어야 했다. 고소는 두 번을 넘어 세 번이 되고 민사소송까지 모두 일곱 차례나 반복됐다. 어느 날 갑자기 스토킹 피해자가 된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에게 소송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지난 6년간 고소와 수사와 재판과 판결의 골짜기를 지나왔다. 피해자로 살면서 마주한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경찰은 사건을 맡네 안 맡네 미루고, 검찰은 가해자 이감을 이유로 이 검찰청에서 다른 검찰청, 또다른 검찰청으로 떠넘기고, 재판은 공판 기일이 잡히지 않아 지지부진했다.
◇피해자 대하는 사법시스템 고발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곽 기자는 “이런 어이없는 일들을 겪고 나니까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수사와 재판을 지켜본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학벌이 좋고, 인맥이 탄탄하고, 유력 언론사 기자라는 뒷배가 있는 너도 이런 일을 겪는데 다른 피해자들은 어떨까. 그들의 질문은 곽 기자가 자신의 스토킹 피해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기록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됐다.
곽 기자는 피해자의 자리에서 경험한 일들을 책 <탁월한 피해자>로 펴냈다. 왜 책을 쓰려고 했을까. “기자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피해자들은 대체 어떤 지옥을 겪고 있는 걸까? 사건을 겪는 내내 저를 사로잡았던 문제의식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피해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리고, 이 사회가 피해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5월12일 서점에 깔린 이 책은 초판을 소진하고 중쇄를 찍었다. 그는 “타인의 피해에 공감하기 쉽지 않은데, 서로 연대한다는 의미에서 많이 읽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들’, ‘판사들’, ‘검사들’, ‘경찰관들’을 따로따로 한 챕터씩 써서 책에 넣었다. 형사사법 시스템이 피해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신랄하게 고발했다. 곽 기자는 “피해자가 신고하면 국가에서 다 해주는 줄 알았는데, 피해자가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저는 취재하는 게 직업이라 정보를 알아내는 거죠. 의견서와 탄원서를 쓰고 증거나 양형 자료가 될만한 자료들을 갖고 대응하지만 보통의 피해자들은 어떨까요? 대부분 중간에 포기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미치지 않고 버티기 위해 썼다”
큰 병에 걸렸거나 불행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묻는다. 왜 내가? 스토킹 피해와 소송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을 때 곽 기자도 그랬다. “하느님이 하필 나를 찍어서 이 고통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원망했다. “그때 마음을 다잡고 의미를 부여했어요. 내가 사회에서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 이 고통을 다른 피해자들을 돕는 데 쓰겠다.”
처음에는 소명의식이 있었다. 다른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판례를 만들어보겠다는 마음. 그런데 소송이 길어지니까 나중에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쓰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미치지 않고 버티기 위해 썼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버티게 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자신은 사건을 겪은 피해자가 아니라 잠입 취재하는 기자라며 다독였다. 피해에 몰입하면 견디기가 어려우니 자신의 사건과 거리두기를 했다.
곽 기자는 책 구상 단계에서 피해자 보호에 소극적인 형사사법 시스템을 논픽션 형식으로 쓰려고 했다. 그러다 그간 나온 기사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 중요한 건 나의 이야기야!’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난 6년간 고통과 슬픔, 좌절, 분노의 순간들을 일기 형식으로 메모했다. 책을 쓰겠다고 맘 먹은 이후에는 스마트폰 노트 앱에 중요한 것들을 다 적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스토킹 일기’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공개 범위를 제한해서 올렸다. 그렇게 모은 취재 메모가 수백 개에 달했다. “수년 전 일을 어떻게 책에 세세하게 담았냐고 궁금해하는데, 초고가 있었던 셈이죠. 그 메모들이 초벌 원고가 됐습니다.”
기자인 그가 언론에 제보한 건 3·4차 사건 검찰 구형 때문이었다. 3차 고소는 가해자가 교도소에서 동료 수감자의 성적 행위를 묘사하고 음란물 그림이 담긴 편지를 보낸 사건이고, 4차는 가해자가 고소에 앙심을 품고 곽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음란 소설을 작성해 블로그에 올린 후 조선닷컴 기사에 댓글을 달아 URL을 유포한 사건이다. 병합 기소된 두 사건은 올해 3월 변론이 종결됐고,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검찰 공소장 변경
곽 기자는 2년 구형에 좌절했다. 매일 눈물 바람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졌다. 의사는 입원하는 방법도 있다고 권유했다. 화병으로 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뭔가는 해야 했다. 그는 공소장을 뜯어보다가 가중 처벌의 근거가 되는 누범이 적용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검찰에 공소장 적용법조 누락에 관한 진정서를 보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언론 제보를 고민하고 있을 때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와 원다라 한국일보 기자를 만났다.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선 원 기자의 도움으로 대구MBC 변예주 기자와 닿았고, JTBC ‘사건반장’에 연결됐다.
4월15일 저녁 대구MBC 뉴스데스크와 JTBC ‘사건반장’에 보도됐다. 취재가 시작되자 검찰은 누범을 누락했다며 그날 공소장을 변경했다. “변 기자가 검찰에 처음 통화했을 때는 누범 기간이 아니라고 했다는 거예요. 다시 전화했더니 누범을 누락했다고…. 제가 누범이라고 보낸 진정서도 읽지 않은 거죠. 그냥 진정서라고 쓴 게 아니고, 1페이지 제목에 ‘공소장 적용 법조 누락에 대한 피해자 진정서’라고 적었어요. 법조인들 검토를 받아서 낸 건데 이렇게 대하면 다른 피해자들은 어떨까요. 저는 적어도 피해자가 낸 서류는 법원과 검찰에서 다 읽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믿음마저 무너진 거죠. 너무나 실망스러웠어요.”
원 기자와 변 기자, 방송사 PD와 작가는 서로 다른 회사라는 벽을 넘어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토킹이나 악성 댓글, 성희롱 이메일에 노출돼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곽 기자는 한국기자협회가 법률 지원이나 가이드라인 마련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곽 기자는 공소장 오류가 보도되고 언론의 역할을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이 시스템에 절망하고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언론을 찾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약자를 돕고 싶다는 기자의 꿈을 오래 잊고 살았다는 것을. “레거시 언론은 망하고 있다고들 하고, 기자들은 ‘기레기’라 멸시받고 입지도 좁아지고 있죠. 제 사건을 겪고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밈(meme)의 위력을 실감했어요. 기자 생활 24년 만에 깨달았어요. 우리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우리가 해야만 할 일이 있다는 걸.” 3·4차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누범을 반영해 징역 3년6개월을 재구형했고, 6월2일 1심 재판부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곽 기자는 소속이 다르고 언론사 논조가 달라도 기자들 사이에 동료의식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책 <탁월한 피해자> 감사의 말에서 “동료 언론인들의 응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단행본 12권, 주말엔 작가생활
“주중엔 기사를 쓰고 주말에 책을 씁니다.” 곽 기자는 프로필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생활 19년째다. 2008년 11월 미술 에세이 <그림이 그녀에게>를 시작으로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어릴 적 그 책>, <나와 그녀들의 도시>, <나의 다정한 AI> 등을 냈다. 이번에 펴낸 <탁월한 피해자>는 12번째 단행본이다. 어떻게 책을 많이 냈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일기를 쓴다고. 거의 매일 기록해요. 책 읽고 기록하고, 여행을 가도 기록해요. 기록이 있어 할 수 있는 거죠.”
그에게 글쓰기는 위안이다. 기사는 객관성이 중요하고 자신을 지우는데, 글쓰기는 자신의 존재가 살아나고 치유의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없는 글쓰기만 평생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주말에 책 쓰는 작업이 주중에 회사원으로 살면서 지워져 있던 자아를 살려내는 것 같거든요.” 기자로 일하며 맺은 책과의 인연은 질기고 깊다.
2010년 문화부에서 출판 말진으로 일했고, 2017년 9월 미국 연수에서 돌아오고서 출판팀 붙박이로 일하고 있다. 2021년부터 출판팀장을 맡아 매주 독자들에게 ‘편집자 레터’라는 편지를 쓰고, 책 읽고 리뷰 기사 쓰고, 칼럼 필자 원고 받고, 후배들 기사 데스크 봐서 출고하는 일을 6년째 하고 있다.
곽 기자는 2003년 1월 기자가 됐다. 대학에서 공부한 고고미술사학에 재미를 붙여 대학원에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던 그해 조선일보에 취직했다. 서울 시내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보낸 수습 기간 6개월, 경찰서를 출입하던 주니어 기자 시절은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선배들한테 야단맞는 게 일이었고, 무엇보다 내일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모르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매일 울면서 다녔어요. 기자 일이 너무 안 맞는 것 같았어요. 사표를 내고 귀향하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완강하게 반대하셨어요. 강하게 컸습니다. 꾸역꾸역 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헤아림, 취재의 밑바탕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기사를 묻는 건 무례할 수 있다. 24년을 기자로 살았는데 의미 있는 기사가 어디 한둘이겠나. 몇 년 사이에 쓴 기사들로 압축했더니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인터뷰를 꼽았다. 2022년 5월22일 새벽 귀가하던 김진주씨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돌려차기를 당하고 수차례 짓밟힌 채 방치된 사건. 전신마비가 왔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한 김씨는 500일간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가해자는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2024년 3월 자신의 투쟁기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를 펴냈다.
곽 기자는 책이 언론사에 배포된 그날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피해자인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출판사에 요청해 김씨를 만나 인터뷰했고, 인터뷰 기사는 조선일보 3월8일자 1~2면에 걸쳐 실렸다. “진주씨 책은 내가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책이었어요. 출판팀은 시사적인 쟁점이 있는 책보다는 교양서 위주로 다루거든요. 리뷰도 하지 않고 단신으로 썼을 책인데…. 나도 피해자니까 진주씨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어요. 제 발제에 편집국 간부들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어요.” 두 사람은 이 인터뷰를 계기로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넘어 친구가 됐다. “진주씨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 위인이라는 게 있구나’, ‘위인이 태어난다면 이렇게 태어나기도 하는구나’ 생각이 들어요.”
스토킹 피해를 당한 지난 6년간, 많은 게 달라졌다. 기자로서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성하게 되고, 취재 경쟁 속에서 많은 걸 잃어버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피해자의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을, 죽을 것 같던 고통을 견디며 묵묵히 기록했다. 시나브로 곽 기자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까, 헤아려 보는 마음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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