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표가 죽을까 봐’ 지지를 접는 셈법은 이미 익숙하다. 새삼스럽지만 6·3 지방선거의 풍경도 그랬다.
이번 옥천군의회 선거에서 지역구 7석은 더불어민주당 4석, 국민의힘 3석으로 갈렸다. 옥천은 기초의회의 다양성을 넓히겠다며 도입된 중대선거구제 시범 지역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거대 양당의 완벽한 분점, 진보·군소정당 0석이었다. 제도 취지가 정확히 거꾸로 뒤집힌 셈이다. 지난 지선에서 최다 득표로 군의회에 입성했던 진보당 현역 의원조차, 지역 기반인 안남면에서 과반(53%) 지지를 받고도 읍에서는 6.86%에 그쳐 낙선했다. 새로 획정된 선거구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 결과는 선거를 40여일 앞두고 주민 생활권과 어긋나게 선거구가 재편됐을 때 어느 정도 예견됐다. 기존 3개에서 2개로 통폐합된 선거구의 새 경계는 실제 주민 생활권과는 따로 놀았다. 같은 아파트 단지의 동(棟)이 서로 다른 선거구로 쪼개지는 일까지 벌어졌고, 생활권이 다른 면 지역들이 인구수에 맞춰 한데 묶였다. 읍 마을 한두 곳 인구가 면 단위 전체와 맞먹는 데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행 뒤 읍 인구가 2000명 넘게 늘며 그 비중은 더 커졌다. 읍이 이렇게 절대적인 곳에서 읍과 여러 면을 한 선거구로 묶으니, 후보들은 표가 몰린 ‘읍 표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중대선거구제가 계속된다면, 면 지역은 자연스레 또 뒷전으로 밀려날 테다. “선거구 획정부터 면 소외가 걱정됐다”는 한 당선자의 말은, 이들조차 이 구조를 불편해한다는 증거다.
이는 지역 저널리즘이 가장 무력해지는 지점과도 교차한다. 민주당 ‘가번’ 공천으로 당선된 모 후보의 사례가 그렇다. 그에게 전과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지역 언론이 보도하자, 그는 공약 검증 인터뷰와 정책 질의를 포함한 일체의 취재를 거부했다. 정당 기호와 중앙당의 간판 뒤에 숨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20%가 넘는 득표율로 무난히 군의회에 입성했다. 검증에 응하지 않아도 당선되는 구조 앞에서, 후보자의 해명 의무는 사실상 소멸했다.
문제는 이것이 옥천만의 풍경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같은 날 고양특례시에서는 시장 선거 득표의 96.8%가 양당으로 쏠렸고, 기초의회 다양성을 보장하겠다며 도입한 ‘3인 선거구’마저 양당이 의석을 나눠 가졌다. 소수정당 후보는 1.28%의 득표율에 갇혔다. 대구에서는 진보정당 기초의회 의석이 또 0석에 머물렀고, 서울시장 선거의 진보정당 후보는 1.03%를 얻는 데 그쳤다. 사표 방지 심리를 극대화하는 승자독식 구조가 전국에서 똑같이 작동한 것이다. 그러니 옥천 바깥에서 종종 듣는 “옥천도 별수 없이 또 양당이냐”라는 냉소는 번지수가 틀렸다. 이것은 지역 주민의 무지가 아니라, 질문을 거부해도 당선되는 정치권력과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함께 빚은 결과다.
물론 이 복합적인 책임에서 진보·소수정당과 언론도 자유롭지 않다. 많은 진보정당이 선거 때만 지역을 호명할 뿐, 평소에는 여의도 중심의 거대 담론에 머문 채 정작 지역의 일상과 현장을 비워 두지는 않았는가. 언론 역시 공천 셈법과 승부표를 받아쓰는 관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물론 지역 언론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거를 ‘누가 몇 석을 가져갔나’로 환원하는 보도는, 제도에 지워진 주민의 목소리마저 함께 가린다. 그 책임에서 우리 모두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보수의 텃밭’이라는 경북 안동에서 허승규 녹색당 후보가 36.86%의 득표율로 당선된 사건이 더욱 남다르다. 그는 연이은 낙선에도 8년 넘게 지역을 떠나지 않았고, 지난해 안동·경북 북부를 휩쓴 대형 산불 현장과 주민자치 현안에 천착해 ‘녹색당은 몰라도 허승규는 안다’는 신뢰를 스스로 쌓았다. 풀뿌리 정치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 그것도 이토록 보수적인 지역에서 녹색의 깃발을 꽂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지방선거는 끝났고 당선인들의 현수막이 내걸렸지만, 우리는 정말 ‘동네 일꾼’을 잘 뽑았을까. 거대 양당제로 인한 지역 정치의 문제를 넘어서는 힘은 아래로부터의 집요한 연결에서 나온다. 제도의 몫도 분명하다. 결선투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처럼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가 있어야, 유권자도 사표 걱정 없이 소신껏 표를 던질 수 있다. 소수정당은 밭두렁과 마을회관으로 더 깊이 들어가 ‘동네 정치’의 싹을 틔워야 하고, 언론은 정당 간판 뒤의 질문 회피를 폭로하는 동시에 여전히 싹트고 있는 풀뿌리 대안을 지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제도가 가린 주민 주권을 기록으로 복원하는 것, 2026년 6월의 척박한 성적표를 받아 든 현장에서 돌아보는 저널리즘과 정치의 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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