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게 일상화된 시대다. 어떤 곳이 나를 반기고, 누가 나를 배척할지 어림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내가 어디 기자인지 밝히는 것은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도 한다. 물론 늘 그렇지는 않다. 경향신문 기자라고 밝히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라 지레짐작한 것과 달리 기자들이 보도를 잘해줘야 한다는 격려와 함께 내 손에 쥐어지던 음모론 전단은 꽤나 생소하고 묘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애정은 때때로 인상 깊다. 작년 제21대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취재했다. 후보자의 하루는 정신없는 이동의 연속이나, 매 장소에서 하는 것은 비슷하다. 당시 김 후보의 대표 유세 운동 중 하나는 큰 절이었다. 별다른 거 없어 보이는 취재를 마친 후 마감을 하는데, 장면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큰절하는 김 후보에게 어떤 지지자 한 명이 피로회복 음료를 쥐여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믿고 응원하는 마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표현 앞에서 애정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이 앞에 최소한 지켜야 할 선도 분명하다. 내 편의 애정을 당연한 자원처럼 소비하는 순간 잃게 될 진심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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