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울음터로구나.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청나라 건륭제 생일 축하 사신단으로 압록강을 건너 요동벌판에 다다랐을 때 이렇게 외쳤다. 1200리에 걸쳐 한 점 산도 없이 땅끝과 하늘 끝이 맞닿을 듯한 광활한 평야를 보고 난 후였다. 중국기자협회 초청을 받아 한국기자협회 대표단으로 5월25일 생애 최초 북경 땅을 밟았을 때 연암의 ‘호곡장’이 떠올랐다. 5박6일 일정 중 몸소 체험한 작금의 중국은 땅만 넓은 ‘잠자는 거인’이 아니었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쏘아놓은 화살처럼 빠르고, 대륙 곳곳에서 젊은 이공계 인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라의 변혁을 이끈다. 우리가 바라보는 중국은 어떠한가. 혐중과 친중, 아니면 그 사이인가. 이제는 지중(知中)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 때다.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 ‘우리는 건너뛴다’
중국에서 놀란 점은 한국에서 흔히 쓰는 신용카드를 당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인은 무엇인가를 구매할 때 신용카드가 아닌 스마트폰에 깔린 ‘페이 앱’을 꺼낸다. 알리페이나 위챗페이가 대표적이다. 중국 거지도 구걸할 때 QR코드를 인쇄해 온라인 페이를 쓴다는 말까지 돈다.
중국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오프라인 신용카드 결제망이 전국적으로 깔리기 전,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보급됐다. 보통 ‘현금→신용카드→모바일 페이’로 발전하는데 중국은 신용카드 단계를 건너뛰어 버린 것이다.
중국의 이른바 ‘건너뛰기’ 발전 양상은 자동차 시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오랫동안 내연기관 차량 시장을 유지하다 점진적으로 전기차로 전환하는 제조업 선진국과는 달리 중국 완성차 업체 BYD는 최근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만 생산하는 체제로 바꿨고, 신생 업체 역시 전기차 생산에 다걸기 한 상황이다.
5월26일 찾은 중국 전기차 업체 ‘니오(NIO)’ 공장(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한국 방문자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고급 차량의 내부 인테리어와 사양, 기능은 독일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와도 견줄 만했다. 양산형 자동차는 3000만원대로 가격 경쟁력마저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 시연이었다. 자동차가 들어가면 지면에서 다 쓴 차량 배터리를 빼내고 충전이 끝난 것을 넣어주는 식이다. 이러한 스테이션이 전국에 3700여개가 넘는데, 앞으로 4000개까지 늘린다고 하니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를 새삼 실감했다.
이 같은 과학기술 발전 배경에는 인재 육성이 있다. 중국의 이공계 인재는 공대에 진학해 창업하는 것이 일종의 ‘성공가도’다. 중국 교육부가 인공지능(AI)·반도체에서 일할 최상위 인재를 키우겠다며 도입한 ‘강기계획’은 명문대 이공계 학과로 들어가는 대표적인 관문이다. 의대 진학에 목숨을 거는 한국 학생과, 미개척 분야에 도전하겠다며 공대에 진학하는 중국 학생이 묘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새로운 과제 ‘성장과 분배의 균형’
중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딛기 전 중국을 향한 편견은 이랬다. ‘당 중심의 계획경제, 분배보다는 성장 일변도 정책’.
그러나 이런 편협한 사고는 며칠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중국 안후이성의 성도 허페이시에 있는 ‘허페이 루오강 중앙공원(Luogang Central Park)’을 찾은 직후였다. 이 공원의 규모는 1만3000㎡(390만평)가량으로 여의도 면적의 4배가 넘는 광활한 대지다. 원래는 안후이성의 대문, 허페이 루오강 국제공항으로 썼다.
공원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가히 신세계다. 활주로 허리 중간쯤에 있는 도심항공교통(UAM) 전문기업 이항의 ‘UAM 허브’에서는 무인 항공 드론이 상공을 누빈다. 드넓은 활주로 광장에서는 형형색색 운동복을 입은 시민들이 달리기를 즐긴다. 중국 각 지역과 전 세계 30여개 도시의 특색을 고스란히 담은 독창적인 정원, 이색 건축물 앞에서는 방문객들이 추억의 사진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
이제 중국도 전체 인민이 안락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추를 어디에 두느냐가 G2 국가 중국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듯했다.
◇‘전통’ 위에 ‘현대’를 얹다
중국은 전통이라는 굳건한 반석과 기둥 위에 현대라는 매끈한 지붕을 얹은 거대한 집 같다. 과거 춘추전국시대 중원에서는 백가쟁명식으로 다양한 사상이 서로 경쟁하며 문명의 꽃을 피워냈다. 공자를 위시한 유가는 도덕과 예의로써 사회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고, 한비자는 지엄한 법으로 이기적인 인간을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노자와 장자는 인위를 배격하고 자연의 순리가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가르쳤다. 묵자는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을 펼쳤다.
과거 사상의 용광로였던 중국 대륙에는 여전히 인민의 정신적 지주가 돼온 전통이 강물처럼 흐른다. 대표적인 것이 차 문화다. 특히 중국 중남부에서는 커피 대신 차를 수시로 마신다. 중국기자협회와 안후이 뉴미디어 그룹사를 방문했을 때도 멀리서 귀한 벗이 왔다며 고급 녹차를 내왔다.
안후이성의 명산인 구화산에서는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자양제가 난다. 황정이 그 주인공으로 둥굴레의 줄기와 뿌리라고 보면 된다. 여기서는 구증구쇄라는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전기 찜통 대신 아궁이에서 아홉 번을 찌고, 햇볕에 아홉 번 말려 온화하고 순수한 ‘구화황정’을 세상에 내어놓는다.
과거 중국은 중화사상에 입각해 주변국과의 교역을 엄격하게 금했고, 이방국의 문화를 배격했다. 그러나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선진국의 인재를 영입하고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의지가 결연하다.
◇한강은 서쪽으로, 양쯔강은 동쪽으로 흘러 한곳에서
한국과 중국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문자가 그렇다. 중국에 가면 웬만한 한자는 읽고 그 뜻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국이 한자 문화권이었음을 상기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음식 문화도 그러하다. 만두와 두부는 맛과 생김새가 엇비슷하다. 돼지와 오리, 닭요리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역사적으로는 또 어떤가. 두 나라는 유학을 통치 사상으로 삼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 나라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다.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국난을 함께 헤쳐 나갔다.
무릇 친구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찾으려 할 때 교류의 수준이 깊어지는 법이다. 한국과 중국, 더 나아가 일본이 얽히고설킨 과거사를 넘어 손을 잡는다면 동북아시아는 세상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한국이 있지 않나. 그래서 한반도와 전 세계를 기민하게 누비며 국제 소식을 전하는 우리나라 기자들과 그들을 묵묵히 뒷바라지해주는 한국기자협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수천년 간 한강의 강물은 서쪽으로, 양쯔강의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며 한 지점에서 만났다. 이렇듯 한중간 우애와 교린은 숙명 같은 것이다. 양국 기자협회가 상호 협력을 더욱 강화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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